본문으로 건너뛰기
당진의 기억

당진시대 기사 아카이브

‘포기 않고’ 기사

1993년 창간호부터 오늘까지 당진시대에 실린 기사를 낱말과 분야, 연도로 찾습니다. 제목을 누르면 보관된 본문을 읽을 수 있습니다.

찾은 기사
7건
연도
1995년

7건 · '포기 않고' · 1995년 · 최근 기사부터1 / 1쪽

  1. 1995.09.25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새로운 영농의지 북돋는 데 주력해와- 한국농어민후계자 당진군연합회 방재환 회장

    … 바로 12개 읍면 후계자들이 총출동해 안덕공원묘지 입주반대를 위해 농사포기를 결의한 정미면 수당리 주민들을 대신해 모내기를 한 것과 지지성명을 발표한 것을 들 수 있다. 방회장은 땅을 일구고 사는 농민들만이 느낄 수 있는 고향땅에 대한 애착과 영농까…

    당진시대
  2. 1995.06.19 · 정책·행정 · 당진시대

    79호(1995.6.19)특집기사/당진군 군수후보 토론회

    …:최후보께서는 그동안 출마준비를 하다 처남인 김인섭씨가 출마를 결심하자 포기했다. 또 김인섭씨가 구속된 직후에도 출마할 수 없다는 뜻을 밝혀오다 갑자기 출마하게 됐는데 그 배경은 무엇인가. 또 출마과정에서 나타난 이런 우유부단함이 군살림을 이끌어 가기…

    당진시대
  3. 1995.05.01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아직도 못자리 하지 않은 수당리 사람들 - 정미면 수당리 정순호씨

    … 바쁠 터였다. 그러나 공원묘지반대 싸움이 별 진전이 없어 급기야 농사 포기를 선언한 마당이었으니 내리는 빗소리가 착잡한 마음만 들게 할 뿐이었다. '농사꾼이 농사를 포기하다니....' 땅을 물려준 조상님들이 알면 난리가 날 일이었다. 그해 그해 농사…

    당진시대
  4. 1995.04.24 · 산업·경제 · 당진시대

    서금구의 사람아 사람아-작골농원 정상영, 배용분 부부

    …부! 정상영씨는 중학교를 졸업하면서 아버지의 사업실패로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게 되었다. 감수성이 예민하던 사춘기에 방황하지 않고 집을 다시 세워야 한다는 사명감과 노력하는 자에게 영광이 약속되며 노력하지 않는 자에게 아무런 보상도 없다는 평범한 진리…

    당진시대
  5. 1995.03.13 · 지역사회 · 당진시대

    [주민기자석] 그때가 좋긴 정말 좋았는가?

    … 했다. 김영삼 대통령이 항상 좋아한다 했던 농촌의 젊은 농군은 보이지 않고 외국 유명대학이나 국내 유수기업의 젊은이들만 참석했다. 한마디로 야당시절 비판과 개혁을 외쳤지만 이제 자기보고 잘못한다고 비판하는 것은 싫었던가 보다. 우리들은 흔히 몇사람만…

    당진시대
  6. 1995.03.06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업체탐방 / 「수청건설」

    하청공사 맡지 않고 자재는 당진에서 조달해 수청건설 대표 차재근(39세)씨는 당진국민학교 55회 졸업생이다. 꽤 실력있는 당진국 핸드볼팀 선수였었고, 소년체전에 출전했던 적도 있었다. 대전에서 고등학교를 마칠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8남매의 어려운 …

    당진시대
  7. 1995.03.06 · 문화·교육 · 당진시대

    신용으로 인정받겠다 - 수청건설

    …마칠 때까지 선수생활을 했지만 8남매의 어려운 가정형편 탓에 대학진학은 포기해야 했다. 군 입대를 전후해 순회코치로 활동하기도 했지만 그것이 생활방편이 되진 못했다. 차재근씨가 건설업계에 몸담은 건 7~8년전이었다. 처음엔 난방설비 기술을 배우다가 친…

    당진시대

당진시대 아카이브에 보관된 기사입니다. © 당진시대. 정식판은 각 기사의 원문 링크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