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아는 국가의 통치체계 중 하나로서 궁궐과 더불어 조선왕조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조선조의 궁궐은 중앙정부 역할을 했고 관아는 지역정부 역할을 맡았으니 우리 역사에서 가장 대표적인 공적 문화유산이라 할 수 있다.

따라서 관아 주변으로 관련 유적들이 많이 분포돼 있어 우리나라의 다수 지자체들이 관아가 포함된 읍성을 문화관광자원으로 정비하고 지역의 랜드마크로 활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수반된 활용 프로그램은 곤장맞기, 병영체험 등에 국한되어 있어 조선시대 읍성과 관아의 역할에 대해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는 한계에 직면해 있다. 이러한 이유는 일제에 의해 왜곡된 조선왕조의 모습을 TV나 영화에서 정제하지 않은 채 조선의 수령들은 백성들을 곤장이나 치고 기생놀이를 하며 백성들을 가렴주구하는 모습으로 표현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러한 수령도 없지는 않았겠지만 조선시대 사또들은 경국대전에 규정돼 있는 수령7사를 기본으로 일정한 법체계에 의해 지방행정 기능을 수행했고 그러지 않을시, 지방의 유향소를 중심으로 향족들의 상소로 중앙정부의 암행어사가 파견되어 그 즉시 탄핵당하였다.

수령7사는 조선의 건국이념을 개창한 정도전의 조선경국전에 처음 등장하며 경국대전으로 이를 체계화하였는데 이상적인 유교국가를 건설하려는 조선왕조의 의지이다. 수령칠사의 내용을 보면 농업과 잠업을 성행시킬 것, 학교를 흥하게 할 것, 송사를 간략하게 처리할 것, 간교하고 교활함을 잠재울 것, 군사 관련업무를 엄정하게 할 것, 호구를 증가시킬 것, 부역을 균등하게 할 것 등이다.

당진시에서 번역 작업한 박지원 군수의 면양잡록과 박시순 군수의 일기를 보면 두 군수 모두 수령칠사를 철저히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노력하는 모습이 보인다.

연암 박지원은 면천군수로 재직하면서 청나라에서 배워온 농업기술을 보급하기 위하여 골정지를 준설하고 건곤일초정을 지어 새로운 농사법, 농기구를 직접 이곳에서 사용하였고 칠사고를 집필하여 수령칠사의 실천적 지침서를 저술하기도 하였다.

또한 이러한 실천적 경험을 국가 전체에 권장하기 위해 과농소초라는 농사서를 저술하여 정조임금에 바쳤다.

조선후기 박시순 면천군수는 수령칠사를 실천하기 위해 밤을 낮 삼아 일한 인물 중 하나인데 수시로 각 창고를 점검하고 비가 오지 않으면 기우제를 일곱 번씩이나 지냈으며 백성들 간의 소송을 형평성 있게 하기 위해 노력하였고, 간교한 자들은 반드시 죄를 물었다.

또한, 박시순 군수는 보름마다 한 번씩 객사에서 망하례를 드리고 직접 양성한 포군을 객사 앞에서 훈련을 한 후 향교에 가서 유생들에게 강론을 하고 시험문제를 출제하였다. 보름 후에는 건곤일초정에서 시험문제를 채점하여 음식과 술을 상으로 내렸다.

이렇듯, 조선의 수령들은 백성들을 위한 민본정치를 위해 불철주야 노력하였던 것이다.

당진시에서는 면천읍성 개발방식을 타읍성과 차별화 하기 위해 과거와 근현대가 단절되지 않고 연계되는 방식의 정비계획을 도입하고 문화체육관광부의 충청유교문화권 여민동락 역사누리 사업으로 180억원을 확보하여 애민관(관아정비), 칠사고교육관(객사정비), 치수공원(골정지) 조성사업, 성안마을 조성사업, 애민로 정비사업을 실시하고 있다.

면천읍성을 찾는 관광객들이 골정지의 아름다운 야경과 군자정의 예쁜 돌다리, 면천 콩국수뿐만 아니라 조선왕조 지방수령의 여민동락 스토리를 잘 이해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탐바꿈하고 관아의 다양한 활용 프로그램을 체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타읍성과 차별화된 면천읍성의 정비 방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