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포구가 자리한 한적한 어촌 마을, 석문면 장고항2리에서는 매년 봄철이면 전국에서 온 관광객들로 북적인다. 바로 4~5월이 제철인 실치를 맛보기 위해서다.
장고항2리로 시집와 50년간 살고 있다는 김화자(75) 석문면 장고항2리 노인회 부회장은 “3월 중순부터 5월 중순까지가 실치 제철”이라며 “4~5월에는 실치 축제를 열기도 해서 전국에서 사람들이 많이 온다”고 말했다.
실치는 포로도 만들어 먹는다. 오늘날 뱅어포는 실치로 만든 것이다. 장고항2리 주민들도 봄이면 뱅어포 만들기에 여념이 없다. 장고항2리 토박이인 김연실(88) 어르신도, 김화자 부회장도 뱅어포를 만들었다.
김화자 부회장은 “바다에서 실치를 잡으면서 함께 딸려온 잡어(雜魚)를 골라내고, 깨끗한 물에 포를 만드는 발을 담그고, 발에 일일이 실치를 고르게 편다”면서 “이 발을 햇빛에 잘 말리면 뱅어포가 완성되는데, 이 작업들은 기계로 하지 않고 완전히 수작업으로 한다”고 말했다. 주민들은 포 만드는 작업 과정을 분업화해 일하는데, 하루에도 몇천 장씩 만들곤 한다고.


굴·바지락 캐며 돈 버는 재미
포구가 있는 어촌 마을답게 실치뿐 아니라 굴, 바지락 등 다양한 수산 자원들이 잡힌다. 이러한 수산물들은 주민들의 생계 수단이 됐고, 마을을 지탱해왔다.
바닷가에 자리한 장고항은 조선말 인천의 제물포와의 교역항으로 기능했다. 하지만 이후 배가 접안하기 어려운 지형 탓에 항구로서의 입지가 좋지 않아 포구의 기능이 축소됐다. 1980년대 이후 실치잡이를 비롯해 주변 연안에서 고기를 잡는 배들이 모여드는 작은 포구로 기능했다. 2000년대 장고항실치축제 개최로 당진을 대표하는 관광지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장고항은 2008년 국가어항으로 지정됐고, 사업비 590억 원을 투입해 2021년 12월 방파제, 소형선 부두 및 선양장 등 접안시설과 수산·어항 기반 시설, 주차장 등을 준공했다.

”옛날에 젊을 적에는 여자들은 바다 가서 굴 따고, 바지락을 캤어요. 지금은 나이 들어서 못하죠. 또 사람들이 실치 잡아오면 횟집에서 실치회를 팔고, 뱅어포로도 만들어 팔고 직거래도 하고…. 우리 아들, 며느리 내외도 횟집을 운영해서 나도 일을 돕고 했어요. (김연실 어르신)
“배를 타고 잡는 것으로는 간자미, 우럭, 꼴뚜기, 새우, 멸치도 있어요. 꽃게도 많이 나와요. 하루에 보통 10만 원 정도 일당을 벌었어요. 일을 못하는 사람은 5~6만 원, 잘하는 사람은 10만 원 넘게 버니까 좋았죠. 젊어서는 바께스(양동이)와 자루 가져가서 가득 채워서 어깨에 메고, (양동이를) 밀면서 오느라 죽었어요. 이렇게 하면서 자녀들 학교 보내고 가정 돌보고 그랬죠.” (김화자 부회장)

당진 일출 대표 명소
장고항2리는 일출 명소로도 유명하다. 당진 홍보자료에 빠지지 않는 대표적인 사진이 석문면 일출 사진인데, 사진 속 붉은 해가 떠오르는 바위산이 바로 장고항2리 노적봉과 촛대바위다. 당진8경 중 으뜸으로 꼽히는 노적봉과 촛대바위의 일출은 매년 2월과 10월에 감상할 수 있다. 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전국에서 사진가들이 찾아온다.
현재 노적봉에는 낮은 구릉의 암반 사이로 데크 산책로가 짧게 있어서 잠시 거닐기에도 좋다. 노적봉 해변은 밀물과 썰물에 따라 갯벌이 드러났다 잠기기를 반복한다. 썰물일 때 노적봉 왼쪽으로 돌아가면 해식동굴 용천굴에 갈 수 있다. 천정이 뚫려 하늘이 보이는 해식동굴은 먼 옛날 용이 승천했던 곳이라 ‘용천굴’이라 불린다.
과거에는 노적봉 일대가 학생과 주민들에게 인기 있는 소풍 및 나들이 장소였다. 김 부회장은 “우리 자녀들도 초등학교 다닐 적에 이쪽으로 소풍 가고, 교회에서는 야외 예배를 하러 갔었다”면서 “현재는 근처에 도로가 생기면서 차량도 많이 다니게 됐는데, 이제 어르신들은 걸어서 가지 못하니까 차를 타고 한번씩 둘러본다”고 말했다.

이제는 볼 수 없는 전통 풍습
농어촌마을에는 마을의 안녕과 풍요·풍어를 기원하면서 농악대가 있거나 뱃고사를 지내기도 했다. 장고항2리도 마찬가지다.
25살에 이곳으로 시집온 김화자 부회장은 “시집 오니까 마을에서 울긋불긋한 기를 꽂아놓고 뱃고사를 지내곤 했다”면서 “명절 때는 집집마다 마당에 술상을 차려놓고, 농악대가 들어가서 악기를 두드리기도 했다”며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새벽 기도를 가는데 산에서 뭔가 반짝반짝 불이 나는 것을 봤다”면서 “이곳에 시집와서 도깨비불이 있다는 얘기를 들어서 도깨비불인가 싶었는데, 생각해보니 촛불을 켜놓고 당제를 지내던 것을 본 모양”이라면서 “알고 보니 우리 집 뒷산이 당제를 지낸 곳이라고 하더라”고 덧붙였다.
높지 않지만 당제를 지내 당산이라 불리던 산에는 고목나무도 있었다. 하지만 현재는 사라지고 주민들의 기억 속에만 자리한다. 전통적인 풍습들도 시간이 흐르면서 대부분 사라졌다. 김연실 어르신은 “이후에 마을에 교회가 들어서면서 주민들이 교회를 다니고 하나님, 예수님을 믿으면서 지금은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농사짓고 맨손어업을 하던 주민들은 어느새 70대, 80대, 90대 노인이 됐다. 이제는 경로당에 나와 같이 점심을 먹고, 함께 TV를 시청하면서 대화 나누고 시간을 보낸다. 지난 26일에도 한 무리의 어르신들이 경로당에 모여 함께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이날 인터뷰에 참여한 김연실, 김화자 주민을 비롯해 어르신들은 한마음 한뜻으로 “건강하고 재밌게 사는 게 앞으로 가장 큰 바람”이라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