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의 핵심은 연기법이다. 연기의 법칙은 조건 따라 상호의존되어 일어나고 변화하고 소멸한다는 진리이다. 따라서 세계는 서로 의존되어 존재하고 변화하며 사라진다. 불교가 한반도에 전래되어 1,700년 동안 정신적 의지처로 역할을 해 온 것 또한 상호의존에 기인한다.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불과 전법으로 인도 중북부에서 자리 잡은 불교가 기원전 250년경 인도 아쇼카왕의 전법으로 서역인 현재의 파키스탄과 이란 남부지역으로 전해진다. 그리고 동북아시아로의 불교 전래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과 전쟁으로 이동하며 번창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기원전 2세기(B.C200년)경 현 중국의 신장 위구르 자치 구역과 간쑤성 서부의 초원지대에 살며 실크로드 무역을 주도하던 월지족은 기원전 170년경 실크로드를 탐낸 흉노족에게 패해 서쪽으로 이동하는데 대부분(대월지)는 중앙아시아로 이동하고 일부(소월지)는 타림분지의 쿠차지역에 머물게 된다. 1~2세기경 고향에서 밀려난 대월지 가운데 쿠샨족이 부족을 통일하고 중앙아시아의 타지키스탄에서 갠지스강 유역을 포함한 인도 대륙과 고향이었던 중국 신장 위구르에 이르는 광활한 영토를 가진 강대한 제국 쿠샨왕국을 건설한다.

이 쿠샨 왕조의 고향이 중국 서쪽의 신장 위구르 지역이고 200년 후 다시 실크로드를 통한 동서무역을 주도하였으므로 중국으로의 불교 전래는 쿠샨왕국을 건설한 월지족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또한 4세기경 쿠샨왕조 소멸기에 고향 지역에 있던 쿠차국 승려 구마라지바는 중국으로 노예로 끌려와 모욕과 고통을 이겨내고 많은 불경을 중국어로 정확히 번역하여 동북아 불교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한다.

고향을 떠나 전쟁과 이동으로 고통을 받으며 생존을 위해 전전하던 민족이 다시 번성하여 동북아시아 사람들에게 크나큰 정신적 선물을 안긴 것이다. 이러한 동북아시아로의 불교 전래의 예를 보더라도 세계는 상호 의존되어 있으며, 그것이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존속해 나간다는 사실이다.

부처님께서는 연기의 진리를 이렇게 말씀하신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고, 이것이 일어나므로 저것이 일어난다. 이것이 없으므로 저것이 없고, 이것이 소멸하므로 저것이 소멸한다.” 이 진리를 세상에 적용해 본다면, 서로를 존중하므로 서로에게 평화가 있고, 서로를 존중하지 않고 무시하므로 서로에게 평화가 없고 갈등과 반목과 폭력이 있다. 서로를 이롭게 배려하므로 서로에게 안락과 번영이 있고, 서로를 이롭게 배려하지 않고 독식하므로 서로에게 안락과 번영이 없고 혼란과 투쟁과 쇠퇴가 있다.

세계는 과거에는 지역적으로 시차를 두고 서로 영향을 주고받아 왔지만, 현대에는 통신과 교통의 발달로 실시간으로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긴밀한 의존관계에 놓여있다. 따라서 세계를 고통스럽게 하는 부정적 영향보다는 세계와 그 안의 모든 존재들에게 이로움을 주고 즐거움을 주는 긍정적 영향이 절실히 요구되는 시대인 것 같다. 그 길은 다들 알다시피 자비, 연민, 존중, 배려, 사랑, 인내, 협력, 지혜 등이 개인과 세상에 충만하도록 노력하는데 있지 않을까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