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운산은 뒤돌아보며 가라
길의 아름다움은 그대 뒤에 있는 법
서해안 고속도로 하행선 개통을 기념해 도로 위에 몸을 실었다. 말이 기념이지 일주일 내내 야근을 하다시피 해 지치고 늘어진 몸과 마음에 휴식을 주기 위해 신문사 직원 모두가 길을 나선 것이었다. 투철한 직업의식인지 맘대로 휴식하지 못하는 일중독인지 내친 김에 가는 여정을 취재기에 담자는 의견들이었다. 우리의 휴식은 그리하여 일을 겸하게 되었다. 경제성 면에 있어서 우리의 두뇌는 이미 습관적으로 천재적이다.
때는 1월11일 금요일 오후 네시 반경. 목적지를 전북 고창군에 있는 선운산으로 정한 우리는 서둘러 길을 떠났다. 붉은 태양이 산을 넘어가려는 석양 무렵이었다.
서해안 고속도로 위에서 만나는 황혼빛 태양은 따뜻하고 친근했다. 이 시간, 만남과 헤어짐으로 얼룩진 사람들의 상처 위에 노을은 따뜻한 온기가 되어 흘러내리고 있다.
당진인터체인지를 지난 것은 4시50분. 잠시 후 서산 군산이라고 쓰인 이정표가 오른편에 나타났다.
도로로 접어들어 얼마 지나지도 않았건만 벌써 마음을 설레게 하는 하늘빛 산의 능선들. 능선들 사이로 뚫린 길의 가느다란 끝을 따라가 다시 능선을 휘돌아 들어갈 때 굽이굽이 이 강산의 매무새가 곱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가까운 산은 초록빛이지만 그 너머는 파란빛, 그 너머는 하늘빛, 그 너머는 연하늘빛, 그 너머는 물빛이다. 하나가 지나가는 동안 또 하나가 다가서는 작은 봉우리들이 끝없이 사랑스럽다.
갈라진 능선 사이를 달리다가 잠시 앞을 가로막은 산 하나가 지나가자 탁 트인 해미목장이 좌우로 넘실댄다. 여기가 서산분기점. 동물들의 이동로로 특별히 만들어진 운산터널은 모처럼 세상이 숨쉴 만한 곳이라는 생각을 갖게 한다.
길의 오른편으로 노을이 깊어가는 동안 노을을 마주한 길 왼편의 큰 산 하나의 얼굴이 발갛게 상기된 모습은 마주 보고 살아가는 우리들의 모습과 닮았다.
대천휴게소에 닿은 것은 5시30분경. 벌써 70㎞를 달려왔다. 45분 가량 저녁식사와 휴식을 취한 후 1시간20분을 더 가자 드디어 선운산IC가 모습을 드러냈다. 쉬지 않고 달려올 경우 당진IC에서 선운산IC까지는 2시간이 소요되는 셈이다. 거리는 190㎞. 우리는 선운산 입구 민박촌에 여장을 풀었다. 민박집은 비교적 깨끗하고 난방이 잘 되었다.
이튿날 아침 간단하게 김밥을 만들어 챙긴 후 느즈막히 산행에 나섰다. 선운산도립공원 주차장에 차를 대놓고 시원스레 뚫린 길을 걸어올라가는 기분이 상쾌하기만 했다. 잎사귀를 다 떨구었지만 단풍나무와 은행나무, 벚나무들이 무성한 그 길은 꽃피는 시절에 참 아름다우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전거를 대여해 주는 곳도 있었는데 단체로 혹은 가족끼리 자전거 산행을 하는 것도 재미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선운사에 도착했다. 구름 속에서 도를 닦는다 하여 선운사라 불리는 이 절은 안개가 끼는 날이 많다 하였다. 많은 말사들을 거느린 본사다. 이날도 30여분이 넘는 스님들이 오래도록 염불을 하고 있었다. 대웅전 문밖에서 잠시 합장을 했다. 아무 것도 아닌 내가 이곳에 섰습니다. 내가 이 산을 걷는 동안 부디 그 큰 깨달음의 한 털끝만큼이라도 만날 수 있기를…
염불소리가 허공처럼 청정한 선운사는 절에 딸린 전통다원 입구에 <참 좋은 인연입니다 designtimesp=22804>라고 써놓은 글귀처럼 느낌이 좋은 곳이었다. 감나무 두 그루에 까치밥으로 남겨진 감들이 쑥스럽게 웃고 있었다.
선운사 대웅전 뒤로는 동백나무숲이 우거져 있다. 3월부터 붉은 동백이 흐드러지는 이곳은 4월에 개화가 절정에 이르며 5월에는 동백축제도 열린다 한다.
산행길로 접어들기 직전 절 위쪽으로 꿈길처럼 이어진 개울과 개울가 벚나무들이 몹시도 그 길을 따라가고 싶게 했다. 그러나 우리는 예정된 코스대로 개울을 건넜다.
산길을 접어들자 겨울인데도 나무향기가 싱그러웠다. 다행히 날씨도 봄날처럼 따뜻했다. 하느님은 이곳에 어떤 아름다움을 숨겨놓으셨을까? 산을 다녀간 수많은 사람들의 소망을 담고 돌산이 높아져 있었다. 작은 돌 하나를 주워 그 위에 올리며 생각했다. 세상에 태어나 이 돌만한 아름다움 하나라도 남기고 갈 수 있다면.
한참을 걸었지만 등산길은 여전히 평지였다. 조금 더 지나서야 알았다. 선운산 산행길은 여느 산의 산행길과는 달랐다. 산책로처첨 높아지는 줄 모르게 이 굽이 저 굽이 돌아서는 동안 어느 새 정상 가까이 이르게 되는 산이었다.
선운산 산길은 또한 길이 예뻤다. 구름이 많은, 안개가 많은 선운산은 길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들이 안개를 품고 있어서 저으기 숲이 깊어보였다. 얼었던 눈이 녹은 탓도 있었지만 때문에 길과 사람들의 어깨만 은빛으로 빛났다. 길은 앞으로도 뒤로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얽매임 없이 잎을 다 떨구고 죽은 듯이 있는 헐벗은 나무들이 순명의 아름다움을 느끼게 했다. 어디선가 개울이 흐르고 있는지 개울물 소리와 걸음을 옮길 때마다 귀에 울리는 바람소리가 가득했다.
참당선원으로 접어드는 메마른 길 반대편에 개울물소리가 유난했다. 개울에 다가가 앉아 보았다. 물소리가 마음으로 흘러들었다. 물의 미세한 흐름을 보았다. 그냥 흐르는 것 같지만 어떤 물길은 잠시 돌아서도 흐르고 잠시 밀리기도 하고 잠시 만나기도 하고 멀리 흩어지기도 했다. 다시 만나 하얗게 부서지기도 하고 또다시 고요하게 멀어지기도 했다.
회색빛 수풀을 벗어나자 길이 훵 뚫리더니 왼편에 투구바위와 사자봉이 나타났다. 바위를 휘도는 동안 그 발치에 쌓인 하얀 잔설과 함께 겨울과 같은 어둠이 잠시 지나갔다. 다시 햇빛이 눈부셨다. 여기에서 오솔길은 끝났다. 하지만 끝은 새로운 시작이다. 선운사를 세우게했던 숭불왕 신라 진흥왕이 퇴위 후에 수도했다는 진흥굴과 한뿌리에서 17개나 되는 긴 줄기가 우산처럼 사방으로 뻗은 장사송이 장엄하게 새길을 열었다. 남편을 기다리다 숨진 여인의 넋이 극락장생했다는 장사송은 장엄하다기 보다 아름다웠다.
왼편으로 버스주차장이 있는 걸로 봐서 이곳까지 차량출입이 가능했다. 그리고 이곳이 산에서 만나는 첫 오르막이다. 도솔암과 낙조대로 길이 갈리는 널찍한 곳. 숨을 가다듬으며 뒤를 돌아보았다. 아, 지나온 산자락의 얼굴들이 보였다. 앞만 보고 걸었다면 볼 수 없었을 숭고하고 맑은 얼굴들이었다. 우리 사람들처럼 뒤에는 머리카락과 같은 수풀을, 앞에는 얼굴과 같은 말쑥한 바위를 이 산봉우리들은 가지고 있었다. 그것이 이 산을 걸을 때 가끔씩 뒤를 돌아다 보아야 하는 이유다. 길의 얼굴, 삶의 얼굴도 그처럼 우리 뒤에 있다. 고개만 돌리면 바로 그곳에.
이 산의 두 번째 오르막. 작은 통나무다리가 나타났다. 몇걸음 가다가 뒤를 돌아다 보았다. 아뿔싸. 멀리 암벽 끝에 잘 생긴 소나무 하나와 절 한 채가 까마득히 앉아 있는 것이다. 그곳 도솔암에서 울리는 ‘지장보살’이 음악처럼 산아래로 흩어져 내렸다.
철계단을 올라가다 돌아보아도 그 광경은 새롭고 아름다웠다. 철계단을 다 오르고 보아도 여전히 새로웠다. 그 반대편으로 가보았다. 절벽 아래로 이어진 아름드리 능선들이 작지만 유장한 산의 넓이와 깊이를 말해주었다. 차마 가파르다고 할 수 없는 이 산의 끝자락에서 우리는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선운산에 대한 찬가를 늘어놓았다.
400여미터밖에 되지 않는 높이에 어쩌면 이리도 많은 이름다움을 감추고 있을까? 힘들지도 않은 산행으로 우리는 너무도 많은 걸 얻었다는 생각에 흡족했다. 참 좋다, 우리 강산.
내려오는 길에 나무 한 그루를 안아주었다. 누구의 영혼인가, 고운 나무에 인사를 했다. 돌탑 위에도 인사를 했다. 인간들의 작디작은 소망들 위에 자비 있기를.... 도솔암에서는 아직도 지장보살이 흘러나오고 있었다. 꽃과 이파리가 따로 피어 평생을 만나지 못한다는 상사화에 이르기까지 지금 산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 소리를 듣고 있었다. 그래서 슬픔과 괴로움을 지닌 것들은 산으로 오는가. 산으로 와서 이곳에 다시 아무데고 거처를 마련하는가.
하산길의 마지막을 장식한 것은 상사화였다. 혹시 이곳에 오게 될 때 등산로 곳곳에 왠 짙푸른 풀들이 땅을 뒤덮고 있거든 그것이 상사화라는 걸 알아주라. 나무들 아래 푸른 융단처럼 깔린 그것이 처참하고 슬픈 상사화의 일생임을 알아주어야 한다. 한겨울에 싯푸르게 돋은 그것이 얼마나 쓸쓸해 보이는지 모른다.
선운사 전통다원에서 차를 한잔씩 하고 총무원 교육원장을 지낸 암도스님의 법문테입을 하나 샀다. <업과 윤회 designtimesp=22821>였다. 스님은 법문 사이에 이 노래를 구성지게 불렀다.
청산은 날보고 말없이 살라 하고
창공은 날보고 티없이 살라 하네
생각과 말과 행위로 업을 짓지 말라는 것, 선업을 쌓으라는 것이다.
기억 속에서 우리는 아직도 선운산을 내려오고 있다.
여·행·정·보
당진IC부터 선운사IC까지 두시간
가는 길에 서산·대천·군산휴게소 있음
선운사 못미쳐 장어집, 민박촌 밀집
풍천장어가 별미, 산더덕구이, 촌닭도 있음
김태숙 실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