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오는 4월 2일 충남도의회 당진시 제2선거구(송악·송 산·신평) 재선거가 치뤄진다. 더불어민주당 구본현, 국민의힘 이해선, 조국혁신당 한광희, 진보당 오윤희 예비후보가 출마해 경쟁한다. 이번 호에서는 구본현 예비후보를 만나 출마의 변을 듣는다.
송악읍 가교리 출신이다. 학창 시절 구본현은 어떤 학생이었나?
어린 시절 농사를 짓는 부모님 밑에서 5남매 중 막내로 태어나 가교리에서 유명한 개구쟁이로 자랐다. 송악읍 기지초등학교까지 어린 걸음으로 30분을 걸어 학교를 다녔 다. 그러다 아버지의 뜻으로 6학년 중간에 서울로 상경했다. 당시 6학년 반장이 막 됐을 무렵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전 문화원장을 지내셨던 유장식 선생님이신데 제 은사님 이시다. 내가 전학을 간다고 하니 ‘이럴거면 반장을 하지 말았어야지’라며 아쉬워하셨던 기억이 난다.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지만, 부모님은 자식들을 어떻게 해서든 고등 교육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셨다. 그렇게 중고등학교를 서울에서 다니게 됐다. 중학교 시절 당시 판사를 꿈꿨지만, 사춘기를 겪으며 음악이 좋아 공부를 잠시 등한시했고 아버님의 기대를 한 몸에 받았지만 결국 아버님이 원하시는 대학에 진학하지 못한 것 같아 죄송하다. 군대에 입대 했을 때 아버님이 돌아가셨다. 아버님의 유언이 ‘본현이가 공부를 한다고 하면 끝까지 할 수 있게 하라’고 하셨단다. 그때부터 제대하고 한 번도 장학금을 놓친적이 없었다. 이제는 아버님께 죄송하고 감사한 마음을 고향을 위해 일하며 갚고 싶다.
정치외교학을 전공한 정치학 석사다. 정치에 언제부터 관심을 갖게 되었나?
처음부터 정치에 관심은 없었다. 중학교 시절에는 판사가 되고 싶었다. 막상 이유를 생각해 보니 나는 농민의 자식으로 태어났고 당시 농촌과 도시의 빈부격차에 관한 고민을 했다. 도시는 이렇게 많이 발전해서 부자들이 많은데 왜 시골은 가난한 농민들이 더 많은 것인가를 고민했었다. 그리고 죄를 짓고도 벌을 받지 않는 사람들, 죄가 없는 데도 벌을 받는 사람들이 많은 그 당시 사회에 대해 고민이 많았다. 그러다 좀 더 커서는 어지러운 사회에 대해 비판적 시각을 갖고 보게 되면서 자연스럽게 대학을 결정할 때 사회과학 계열의 과를 선택하게 됐다. 그게 바로 인하대학교 정치외교학과였다. 대학에서 정치외교 학문을 배우면서 정치에 대해 배우고 관심을 갖게 됐다. 이후 군대를 다녀와서 대학원을 다니며 정치학 석사를 졸업했다.
삶의 중심이 되는 좌우명이나 인생 철학이 있다면?
인생 철학이라고 한다면 나는 변증법을 좋아한다. 세상의 모든 사건이나 상황들은 결코 독립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는 이론인데 이것을 사회에 비춰봤을 때 우리는 모두 관계 속에서 살아간다. 결코 혼자 독단적으로 살아갈 수 없다. 인생은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 내 좌우명은 ‘사람을 중히 여기자’다. 어머님께서 항상 언덕은 내려다봐도 사람은 내려다 보면 안된다고 하셨다. 사람에 대한 귀천이나 높낮이를 따지지 말고 누구나 귀히 여기며 대하라고 늘 말씀 하시곤 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내 좌우명이 됐다.
그동안 김교흥 의원, 어기구 의원 등의 보좌관을 수 행해 오면서 가장 기억의 남는 에피소드는 무엇인가?
각 국회의원 마다 정치 스타일이 정말 다르다. 그중 어 기구 의원과 함께했을 때 서울 의회에서의 일이 생각이 난 다. 평택시와 도계 분쟁 중이었을 당시다. 어기구 의원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 포함돼 소위원회에 들어가 연육교 예산을 어렵게 따냈다. 당시 정말 어려운 일이었는데 나는 보좌하며 함께 했던 사람이니 얼마나 기뻤겠나. 그러다 보니 빨리 이 기쁜 소식을 언론을 통해 시민분들에게 알려야 했는데 머릿속이 하얗게 돼서 우왕좌왕했다. 그렇게 내가 허당끼가 많다. 그때 어 의원에게 참 혼이 많이 났다. 그래도 정말 정치란 이런 것이구나 그때 많이 배웠다.
당진시청 정책관으로 역임 당시 어떤 정책을 연구하고 성과가 있었나?
김홍장 전 시장으로부터 부탁을 받을 당시 사실 가족 들 때문에 고민이 되긴 했지만, 결정은 빨랐던 것 같다. 그 동안의 경험을 고향의 발전을 위해 일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다. 정책관으로서 있으면서 김홍장 전 시장이 하고자 했던 당진형 주민자치, 마을 교육, 마을 살리기, 학교 밖 교육 등 교육에 대한 정책을 제안하고 함께 만들고자 했다. 또한 행정 개선 TF팀장을 하면서 당시 충남도청에서 시행했던 성과관리 체계를 그대로 가져와 당진형 성과관리 시스템을 만들어 도입시키고자 노력했다.
그동안 보좌를 하는 자리에서 직접 정치에 입문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처음부터 출마의 뜻이 있던 것은 아니었다. 내가 생각하는 당진은 정치 인재가 부족하다는 생각을 늘 했었다. 그래서 나중엔 전문적으로 인재를 키우는 일을 해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주변에서 언제까지 보좌관만 할 것이냐며 물었고, 보좌관을 꿈꾸는 후배들에게 자리를 내주지 않으면 후배들에게 기회가 없다는 것을 깨닫고 어기구 의원에게 말씀드리고 정리를 했다. 그러다 기회가돼 2022년도 도의원 선거에 내 이름을 걸고 출마하게 됐다.
두 번째 도의원 도전이다. 시의원이 아닌 도의원으로 도전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집안의 한 어르신이 도의원이 아닌 시의원으로 출마를 하면 어떠냐고 말씀하신 적이 있다. 하지만 도의원으로 시작했고 도의원이 되고 싶다. 시의원이 절대 우스워서 그러는 것이 아니다. 시의원도 중요한 자리고 도의원도 중요한 자리다. 그러나 각자의 역할이 다르다. 도의원은 광역의원으로 해야 할 역할이 있다. 국가 계획 같은 큰 예산을 충청도에서 진행하면 충청도에서도 각 지자체를 선정해 용역을 세우고 배정을 하는데 여기서 도의원들이 상임위 상관없이 자신의 지역을 끼워 넣을 수 있어야 한다. 그런 차원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이 도의원이다. 나는 국회에서도 지역에서도 경험을 많이 했다. 큰 예산을 지역으로 갖고 오는 것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해야 되는데 나는 그런 역할을 하고싶다.
그동안 가장 가까운 곳에서 정치를 느껴왔을 것 같다. 본인의 정치적 소신을 들려달라.
선거운동을 하면서 드는 생각이 참 나는 얼굴에 철판도 깔고 해야 하는데 숫기가 없다는 것을 느낀다. 어떨 땐 스스로 답답하기도 하다. 하지만 목소리 크다고, 가방 크다고 공부 잘하는 거 아니고 정치 잘하는 것 아니지 않나. 결국 진심은 통할 것이라 생각한다. 온 진심을 다해 진정성을 갖고 시민들에게 다가간다면 알아주실거라고 생각한다. 시민들을 가장 높은 곳에 두고 언제나 함께 가겠다는 것이 내 정치적 소신이다.
자신의 강점과 단점을 뽑자면?
내가 생각하는 단점은 생각이 많다. 어떤 상황에서는 확 치고 나가야 하는 상황이 있는데 생각이 많다 보니 심사숙고형 정치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러다 보니 한번 마음을 정한 것은 오랜 시간이 걸리더라도 꼭 해내야 한다. 그리고 지켜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중하게 생각한다. 이것은 오랜 나와의 약속이자 강점이다.
당진시민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안녕하세요. 구본현입니다. 저는 정치외교학을 공부하고 그동안 의회에서 시청에서 그리고 지역에서 일을 해왔습니다. 그리고 어기구 국회의원과 5년간 일을 해오며 당진의 큰 사업들도 함께 만들어보면서 많은 경험을 쌓아왔습니다. 이제 이 역량을 시민들을 위해서 그리고 당진 발전을 위해서 일하고 싶습니다. 저는 일할 준비가 되어 있고 일하고 싶습니다.
» 구본현 예비후보자는
- 송악읍 가교리 출생
- 인하대 대학원 정치외교학과 졸업(정치학석사)
- 서울 양천구의회 전문위원(전)
- 당진시청 정책관(전)
- 국회의원 보좌관(17, 20, 21대)
- 당진육상연맹 이사
- 참교육학부모회 당진지회 회원
- 기지초등학교 총동창회 사무부총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