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9월 22일 정오 가을햇살이 유난히 곱게 내리쪼이는 행담섬 한 구석에서 10여명 남짓 아주머니들이 이 호시절엔 어울리지 않게 머리띠를 질끈 동여매고 ‘데모’를 하고 있었다.
섬사람들은 다 모여봐야 30여명. 육지에서 공부하는 자식들까지 불러모아 봤자 50명도 채 안되는 낙도 행담섬에 파란이 일기 시작한 것은 세계에서 세번째, 동양에서 첫번째로 길다는 서해대교 공사가 시작되면서부터였다.
시행자인 한국도로공사는 이에 그치지 않고 행담도를 통째로 사들여 화려한 위락단지로 개발할 야망을 갖고 있었다. 그리고 하나씩 그 계획을 실현시키기 위해 야금야금 섬을 파먹어 들어가고 있다. 이미 행담섬에선 서해대교 공사와 아울러 고속도로 인터체인지 공사가 시작되고 있었던 것이다.
이날 주민들이 이 ‘대역사의 현장’에 찬물을 끼얹듯 공사중지를 외치며 시위에 나선 것은 2년여 동안이나 끈질기게 요구해온 이주쪾생계대책이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은 채 개발은 점점 가속도가 붙는데다 공사현장의 공해로 당장 살 수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섬엔 물이 귀한 법인디 행담도 물은 참 달고 양도 많었지유. 손님(관광객)들도 물 좋다고 병에 떠가곤 했는디 다리공사하고 레미콘공장이 들어온 뒤부터 물이 변하기 시작했유. 커피를 타면 순두부처럼 앵겨붙고, 머리감으면 머리카락이 뻣뻣해지고 한마디로 사람이 쓸 수 없는 물이 돼버렸지유.”
그래서 공사를 하는 LG건설에서는 집집마다 역삼투압방식의 최신 정수기를 들여 놓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정수기물로 빨래하고 목욕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최근 이곳 주민들은 피부병까지 호소하고 있다. 세수하고 나면 가렵고 마름버짐이 피듯 피부에 이상이 생긴다는 것이다. 실제로 한 아줌마는 각질이 벗겨진 것처럼 얼룩덜룩한 얼굴을 내밀었다.
레미콘공장은 이 섬의 한 가운데에 위치해 있다. 5년전 폐교된 초등학교 자리이다. 섬에선 지대가 높은편에 위치한 레미콘공장을 축으로 주민들의 생계수단인 가건물 횟집과 새마을 주택등이 직선거리로 100m 안팎에 빙 둘러싸여 있는 형국이다.
레미콘공장에서 뿜어져나오는 시멘트 분진이 그대로 주거지로 날아 앉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집집마다 창틀이며 마루바닥이며 허연 시멘트 가루가 묻어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마당에 받아놓은 세숫물 위에도 송화가루처럼 시멘트 분진이 떠 있다.
집 앞뒤에선 다리공사하느라 소음이 끊일 사이가 없다. 이런 곳에서 행담도 주민들은 지금 살고 있다. 관광객들을 맞으며.
그러나 정작 이날 주민들이 분통을 터트린 대상은 다름아닌 당진군이었다. 동네 한가운데에 레미콘공장 허가를 내준 것 하며, 걸핏하면 불법영업한다고 단속 나와 벌금을 때리고 법테두리 밖의 일이라며 도로공사와의 이주쪾생계대책 협상에 전혀 성의를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당진군이 우덜한테 해준게 뭐가 있유. 안산시 어딘가에서는 주민들은 가만히 있는데 시가 나서서 2년 동안이나 도로공사와 협상을 벌여 이주대책을 끝냈다고 합디다.”
그런데 당진군은 중재역할이라도 해달라고 주민들이 호소해야 할 판국이라는 것이다.
“또 레미콘공장 땜에 공해가 막심하니 단속 좀 해달라고 군에 전화한 적이 있는데 주무과장이라는 분 얘기가 거긴 규제지역이 아니라고 합디다.”
대표를 맡고 있다는 한 주민의 얘기다.
주민들의 군에 대한 불만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주민들의 억장을 치는 일이 얼마전에 있었는데 백중사리의 영향으로 수해를 입어 경황이 없던 때에 군에서 고발이 들어왔다며 불법영업단속을 나왔다는 것이다.
“가재도구니 가전제품이니 전부 바닷물에 잠겨 집밖으로 들어 내놓고 있던 형편인데 단속이라니... 법에도 눈물이 있는 겁니다.”
한 아줌마는 군수를 아버지에 비유하며 서운한 심정을 이렇게 토로했다.
“군수면 군민의 아버지인겨. 자식덜이 어떻게 사는지, 죽었는지 살었는지 늘 살펴야 할 사람인디 그건 고사하고 툭하면 불법영업이라고 단속이나 해대고 주민이 백명만 됐어도 이런 수모는 안당했을겨.”
거침없이 쏟아지는 주민들의 불만과 비난의 목소리는 한 주민이 내뱉은 냉소적인 한마디 말에 일시에 묻혀버렸다.
“다 표가 없기 땜에 그려. 요샌 표 없는 곳엔 행정도 안간다대.”
주민이 주인되는 지방자치시대라지만 쾌적한 환경에서 살 권리, 약자로서 행정의 보호를 받을 권리, 그 어떤 권리도 자신들에겐 ‘남의 떡’에 불과함을 섬 주민들은 차가운 공사현장에 천막을 쳐놓고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