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회 없어요. 여한도 없고, 미련도 없어요. 그저 다 쏟아부은 시간이었다고 말할 수 있어요.”
오랜 시간, 한 자리에서, 한결같이 사람의 건강을 위해 달려온 이가 있다. 보건진료소를 지키며 수많은 삶을 돌본 뒤, 이제는 공직을 벗어나 마음의 건강을 돌보는 작가이자 리더로 제2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사람. 마그마숲과창 당진지사 배상희 대표의 이야기다.
진심으로 시작한 의료인의 삶
당진 토박이였던 배상희 대표는 계성초, 호서중, 호서고를 거쳐 대전 간호전문대학에 진학했다. 처음에는 100% 취업이 된다는 말에 선택한 길이었지만, 막상 시작해보니 이 일이 자신의 적성에 딱 맞는다는 걸 알게 됐다. 사람을 돌보는 일, 그중에서도 어르신들과 마주하는 시간은 그에게 큰 기쁨이었다.
“어릴 때부터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라서 어르신들을 너무 좋아했어요.”
23살의 나이로 첫 근무지인 보령 삽시도 보건진료소에 발령받았을 때, 가족들은 모두 말렸다. 하지만 그는 싫은 마음 전혀 없이 기꺼이 섬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시간을 보냈다.
그래서인지 배상희 대표는 당시의 많은 일을 생생히 기억했다. 열악한 환경의 섬에 도착한 첫날부터 팔에 낫이 찍혀서 찾아온 아저씨를 촛불로 빛을 밝히고 끓인 물로 소독한 도구로 처치를 해야했던 일, 낚시 바늘이 종아리에 박혀 찾아온 학생, 생선 먹다가 목에 가시가 걸려 찾아오신 분 등 그의 이야기는 끝이 없었다.
‘당연한 일’처럼 최선을 다한 시간
보령의 섬에서 근무를 마친 배 대표는 태안을 거쳐 당진에 왔다. 송악읍에 자리한 본당 보건진료소에서 일했다. 그는 “보건소로 옮겨갈 수도 있었지만, 진료소가 더 좋았다”며 “현장의 최일선에서 사람을 만나는 일이 자신의 천직이었다”고 말했다. 긴 세월 동안 그는 보건진료소라는 작은 공간에서 수많은 생명을 보살피고, 수많은 마음을 안아주었다. 그렇게 흘러간 시간은 그에게 직장의 일이기보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할 일’로 여겨졌던 진심의 시간이었다. 그 믿음 하나로, 그는 단 하루도 후회 없이 의료인의 삶을 살아냈다.
사람을 살리는 또 다른 방법을 찾아서
2010년, 강원도와 충남이 자살률 1위, 2위를 다투던 그때, 충남도에서 ‘생명사랑 행복마을 선정’ 프로그램을 진행했다. 매년 한 마을을 선정해 자살예방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방식이었다. 3~4년간 이 프로그램을 담당하면서 그의 마음속에는 점점 의문이 자리 잡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살 예방의 근본적인 해결책이 아님을 깨달았다. 그는 이 문제의 본질적인 해법을 찾고 싶었다. 걷는 시간에도, 운전 중에도, 머릿속엔 오직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두 단어가 그의 뇌리를 스쳤다. ‘한 가지에 집중하자’, 그리고 ‘만다라’. 그 길로 ‘만다라’를 검색한 그는, 마음자리 그림 마당이라는 뜻의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을 발견했다. 그림을 통해 무의식을 들여다보는 이 프로그램은 그에게 강한 울림을 주었다.
지난 2017년, 생명사랑 행복마을로 선정된 합덕읍 내동리에서 그는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의 일부인 ‘만다라 프로그램’을 직접 진행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그에게 혁신적이었다. 이전 프로그램들과는 다르게, 참여자의 우울 척도가 뚜렷하게 감소한 것이다. 결과를 확인한 그는 “자살예방에 근본적인 해결 방법이 될 수 있겠다고 생각하며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보급한다”는 꿈을 가졌다.
이후 7~8년의 시간 동안 배상희 대표는 지속적으로 연구하고, 여러 논문을 쓰고, 우수 사례로 선정돼 발표를 하고 상을 타기도 하며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의 확산을 위해 애썼다. 하지만 공직 안에서의 한계는 느꼈다. 오랜시간 외로운 싸움에 지치고 ‘상을 받기 위해 시작한 일이 아닌데’ 라며 회의를 느꼈다. ‘이 틀을 벗어나야겠다’ 고 결심한 그는 그 길로 미련없이 공직을 떠났다.
그리고, 진짜 꿈을 그리다
정년 5년을 남기고 지난해 4월 배상희 대표는 자유로운 모습으로 마그마숲과창 당진지사 대표이자 작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이미 그는 2017년 마그마숲을 알게 된 이후 마그마 힐링 지도자 자격을 시작으로 관련 자격증을 취득해왔다. 프로그램의 일부인 화가·작가 코스도 함께 시작했으며, 같은 해 첫 단체 치유 전시회를 열었다. 이후 2019년, ‘아주 특별한 선물: 온 국민 치유와 성장을 위한 만다라’ 개인전을 비롯해 여러 차례의 개인전과 단체전을 이어왔다.
지금의 삶을 이야기하며
그는 “이제 진짜 저의 꿈을 찾았다”고 전한다. 현재도 그는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을 통해 사람들의 심리를 진단하고, 치유하며, 변화와 성장을 돕는 일에 힘을 쏟고 있다. 또한 작가 활동도 꾸준해 이번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인사동 루벤갤러리에서 5인의 작가와 함께 ‘황금빛 찬란한 만다라전(展)’을 준비 중이다.
“사람의 눈에 보이지 않는 마음을 살리고 싶어요”
배 대표는 아직도 ‘사람을 살리는 일’을 하고 있다. 단지, 육체가 아닌 ‘마음’을 살리는 방식으로 달라졌을 뿐이다.
“보건진료소에서 마그마 힐링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사람들의 근본적인 마음의 병을 치료해주고 싶었어요.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순수한 마음이었는데, 그런 저를 바라보는 왜곡된 시선도 있었고, ‘뭘 그렇게까지 하냐’는 말도 많이 들었습니다. 그 수많은 압력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제 안에 중심과 뼈대를 세우고, 흔들리지 않는 철학을 지켜왔기 때문이에요.”
한 사람의 진심은 이렇게 긴 시간을 관통한다. 누구보다 치열했던 1막, 그리고 지금 더 찬란하게 빛나는 2막. 배상희 대표의 인생은 그 자체로 하나의 ‘만다라’다.

» 배상희 대표는
- 보건진료소장으로 33년 8개월 근무 후 퇴직
- 현 김영옥심리체험박물관 이사
- 현 마그마숲과창 당진지사 대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