합덕읍 운산리에 살고 있는 김 엘마르 씨
합덕읍 운산리에 살고 있는 김 엘마르 씨

<편집자주>

고려인은 19세기 말 한반도에서 러시아로 이주한 한인의 후손이다. 특히 1937년 스탈린 정권의 강제 이주 정책으로 중앙아시아에 정착한 이후, 낯선 땅에서 공동체를 이루며 정체성을 이어왔다.

현재 한국에 체류 중인 고려인은 약 10만 명으로, 이 중 충남 지역에는 약 1만 3000명이, 당진시에는 1100~1200명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이들은 언어 장벽, 복잡한 행정 절차, 의료 서비스 접근의 어려움 등 여러 제도적 공백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합덕읍 운산리에 거주 중인 키르기스스탄 출신 고려인 3세, 김엘마르 씨(45)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우리는 고려인입니다. 우리는 한국의 긴 역사를 함께한, 같은 피를 나눈 하나의 민족입니다. 저는 항상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생각하고 살아왔습니다. 키르기스스탄, 카자흐스탄, 러시아, 그 밖의 나라들에서 사람들이 저에게 ‘너는 어떤 민족이냐’고 물으면, 항상 ‘나는 한국인이다’라고 답했습니다. 그런데 정작 한국에 와보니, 저는 ‘외국인’이 돼 있었습니다.”

역사에 끌렸던 소년

고려인 3세 김 엘마르 씨는 키르기스스탄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그의 집에는 두꺼운 백과사전이 있었고, 그 속에는 문명, 인류, 역사에 관한 이야기가 가득했다. 그는 사전을 읽으며 ‘인간은 어떻게 생겨났을까?’, ‘문명은 어떻게 시작됐을까?’ 질문하며 역사와 인류학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또한 그는 어린 시절, 고려인인 할아버지에게 2차 세계대전 당시 석탄 광산에서 강제로 일했던 이야기, 강제 이주에 관한 이야기 등을 듣고 자랐다. 한국사와 민족성에 대해 “나는 원래 한국인(고려인)이라고 생각한다”며 “자기 민족의 역사를 아는 것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의 역사는 굉장히 극적이고, 인상적인 장면이 많다”고 표현했다.

이러한 관심은 결국 그를 역사와 국제관계사를 전공하도록 이끌었고, 졸업 후에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지식을 전했다.

역사적 조국, 그러나 낯선 시작

엘마르 씨는 “지식을 전달하는 일은 정말 기억에 남는 경험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정리하고 2016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왔다. “한국은 나의 역사적 조국이기 때문”이라는 이유였다.

그는 “항상 한국이라는 역사적인 고향으로 돌아오고 싶었고, 자녀들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길 바랐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합덕에 살던 친구의 소개로 당진에 정착했고,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며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러나 한국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처음 한국에 들어왔을 때는 아무것도 몰랐기 때문에 정말 힘들었어요. 언어도 어려웠지만, 특히 아이들을 유치원이나 학교에 입학시킬 때 필요한 정보가 너무 부족했고, 관련 서류 문제로 많은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엘마르 씨는 비자 발급 과정에서 느낀 아쉬움도 털어놓았다.

“제가 살던 동네에는 키르기스인, 러시아인, 독일인, 고려인, 위구르인, 우즈베크인 등 다양한 민족이 함께 살았어요. 제 학급에도 독일계 친구들이 여럿 있었는데, 90년대 소련 해체 이후 그들은 모두 독일로 이민을 갔습니다. 독일계라는 이유만으로 곧바로 시민권을 받을 수 있었죠. 이스라엘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대한민국은 지금도 자국 동포에게 시민권이 아닌 입국 비자만을 발급합니다.”

조금씩, 천천히 달라지는 시선

엘마르 씨는 한국에서의 생활이 처음에는 힘들었지만, 지금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지내다 보니 많은 걸 알게 됐고, 방향도 잡히고 있어요. 특히 고려인에 대한 한국 사회의 인식이 예전보다 좋아진 걸 느낍니다. ‘중앙아시아 출신 고려인’이라고 하면 ‘우리 한민족이네’라며 반겨주시는 분들도 계세요.”

또한 그는 한국에 처음 도착했을 때부터 지금까지 자신에게 도움을 준 많은 한국인들을 떠올리며 고마움을 전했다.

“도움을 준 분들이 너무 많아서 누구 한 분만 언급하면 다른 분들에게 미안할 것 같아요. 그래서 따로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고려인을 위한 제도적 보호 필요”

하지만 아직도 고려인들이 정착하는데 여러 문제를 겪는 것은 변하지 않았다. 엘마르 씨는 2020년 말 한국에 새로 들어오는 고려인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대한고려인협회에 편지를 보냈고, 며칠 후 노송달 회장의 연락을 받아 협회에 가입하게 됐다. 이후 합덕지역 고려인을 모아 지회 설립을 제안했고, 지부장으로 선출됐다.

협회는 고려인들의 생활 문제, 언어, 건강보험, 임금체불, 주거 문제 등을 돕고 있으며 문화행사나 콘서트도 개최하고 있다. 그는 협회 활동을 하며, 고려인들이 한국에 정착하면서 느끼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 ‘고려인 정착 지원센터’의 필요성을 느꼈다.

당진 전체에는 약 1100~1200명의 고려인이 거주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며 특히 합덕에만 약 800명의 고려인이 살고 있다. 하지만 다문화가족지원센터와 같은 고려인을 위한 공공 지원기관은 지역에 없다. 이에 그는 고려인 정착 지원센터 설립을 위한 노력을 하고 있고, 3월 말 도의회에 청원서를 모아 제출했다.

“고려인들이 받는 비자의 경우 의료보험 혜택을 받기 어려워 병원비 전액을 사비로 감당해야 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한 가족 비자 문제도 여전히 복잡합니다. 언어와 제도를 잘 모르는 입국 초기, 부당한 대우나 임금 체불 문제도 많이 겪습니다. 기본적인 정보를 안내하고, 제도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창구가 절실합니다.”

그는 ‘고려인 정착 지원센터’가 생긴다면, 지역사회와의 소통과 연대가 더욱 활발해지고, 이것이야말로 진정한 사회 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믿는다.

엘마르 씨의 소설 표지
엘마르 씨의 소설 표지

한국의 역사적 사건을 소설로 집필해

역사, 특히 한국사에 깊은 관심을 가져온 엘마르 씨는 최근 한국의 독립운동사를 바탕으로 한 러시아어 소설 <Гонцы в один конец(편도행의 사자들)>을 완성했다.

“한국 역사에서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은 고종 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린 세계평화회의에 이상설, 이준, 이위종 세 특사를 보낸 사건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널리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일본 제국주의에 맞서 싸운 중요한 순간입니다.”

이 소설은 그가 무려 15년에 걸쳐 집필했다. 때로는 몇 년씩 쉬기도 했고, 여러 번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완성도를 높였다. 지난해 말, 인터넷을 통해 출간한 이 소설은 현재 러시아어로만 읽을 수 있으며, 앞으로 한국어로 번역해 출판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