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유해 발굴 현장의 모습은 말 그대로 처참했다. 75년 만에 드러난 유골들은 켜켜이 쌓여 있었고, 세월의 흔적을 보여주듯 부서지고, 깨진 두개골과 뼈들이 서로 뒤엉켜 있었다. 당시 얼마나 끔찍하고 처참한 일이 발생됐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우강면 송산리 전파관리소 관사 옆에서 지난달 3일부터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유해 발굴이 시작된 현장은 현재까지 총 58구의 유해가 나왔다.

2008년 공포리 전파관리소 특정 보도

지난 2008년 당진시대 보도를 보면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진상규명 범국민위원회(범국민위)’가 2006년 펴낸 단행본 <민간인학살 주요사건>에는 당진군과 관련된 세가지 민간인 학살사건이 기록돼 있다. 이 기록에는 우강면 창리 옷밥골에서 일어난 좌익에 의한 희생사건과 함께 우강ㆍ송악에서 군인과 경찰에 의해 좌익 부역혐의자들이 희생된 사건도 기록돼 있다. 기록에 따르면 우강면에서 좌익에 의해 일어난 사건은 1950년 9ㆍ28수복 직전 남로당계 좌익 인사가 마을이장과 의용소방대원 등 친정부 측이라고 판단했던 주민 37명을 창리 야산에서 집단학살한 사건이다.

우강면에서 연이어 일어난 또 다른 사건은 서울수복 직후인 10월초 그동안 좌익에 부역한 혐의를 받은 주민 70여명이 공포리 전파관리소 자리에서 군인에 의해 학살된 사건이다. 그런데 두 사건은 그 이전의 다른 사건과 맞물려 일어난 보복전의 성격이 강했다. <본지 718호 지방좌익희생은 아직도 ‘쉬쉬’ 참고, 2008년 7월7일자>

2005년 발간된 <한국전쟁전후 민간인학살 실태보고서>에는 이 두 사건의 관계가 나타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전쟁 초기 국군이 밀리게 되자 경찰은 그동안 수감 돼 있던 (좌익등) 인사들을 갯벌로 끌고가 살해”했으며 “이 사건이 있은 뒤 인민군이 진주한 후에 발생한 사건 중 하나”가 바로 좌익에 의한 우강면 창리 민간인희생사건이다. 희생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이날 사건 이후 인민군이 철수한 이후에는 반대로 좌익에 대한 우익의 폭력이 자행됐는데 대표적인 것이 수복 직후 우강면 송산리 전파관리소에서 부역혐의로 좌익인사 70여명을 총살한 것”이라고 보고서는 기록하고 있다. 보고서는 또 국군이 진주한 후인 10월초 송악면 한진리 한진 앞바다에서도 경찰과 청년단에 의해 좌익 부역혐의자 다수가 학살된 사실도 기록하고 있다. 그런데 이 보고서에 기록된 좌익희생사건 모두 본보 347호(2000년 11월 27일자)에 보도된 사안을 참고한 것으로 확인됐다. 결국 정부나 사회단체가 관심을 갖는 대형사건 외에 지방좌익이나 좌익부역혐의로 희생된 민간인사건은 좀처럼 진상규명이 안되고 있는 것이다.

보도 이후 25년만에 발굴 진행

우강면 전파관리소 좌익인사 총살사건을 다룬 2000년 본지 기사 이후 25년만에 발굴이 진행되고 있다.

발굴 현장에서는 유골 58구 이외에도 학살당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칼(추정) 6개와 m1 탄피 15개, 카빈소총 탄피 1개, 소총 탄두 3개를 비롯해 유리제품 2개, 허리띠 1개, 신발, 단추 등이 나왔다. 또 피해자들이 신었던 고무신의 흔적도 다수 발견됐다.

특히 이번 현장의 특징은 학살당시 사용 된 것으로 추정되는 칼(추정) 6개가 함께 발굴됐다는 것이다.

한국전쟁민간인희생자 관련 한 전문가는 “다른 민간인학살 현장에서는 볼 수 없는 쇠창이 다수 발견된 것인 상당히 이례적인 일”이라며 “합덕우강지역이 적대관계에 의한 학살이 진행된 곳으로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이 점령한 이후 좌익인사들이 쇠창을 대장간에서 제작해 지주와 부재지주 대리인 등에 대한 학살이 진행된 이후 1950년 9월 수복 이후 이에 대한 보복성으로 이들이 사용한 쇠창을 이용해 학살이 진행된것”이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탄피가 그다지 많지 않게 발견된 것이 그 이유로 들었다.

유해발굴을 진행하고 있는 더한문화연구원 조영선 조사연구팀장은 “과거 위성 사진을 통해 유해가 묻혔을 것으로 예상되는 지역을 조사했고, 조사 과정에서 전파관리소 관사를 지으며 발견된 뼈를 모신 봉분이 있다는 이야기에 뼈를 수습해 안치하고자 발굴을 시작했다”라며 “봉분에서는 뼈가 나오지 않았지만 땅을 1m 깊이로 파고 나서야 유해들이 나오기 시작해 발굴이 진행됐다”고 밝혔다.

조 팀장은 “현재까지 58구의 유해를 발굴했다”라며 “유해 감식 결과 기본적으로 뼈대 자체가 굵고 큰 걸로 봐서 대부분 성인인 것으로 보여진다”고 말했다.

이어 “유해 수습은 6월까지 진행되고 이후 감식과 DNA 분석 등이 이뤄진 후 세종 추모의집에 안치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박근서 자치행정과 시정팀장은 “진실과화해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유해발굴이 진행되고 있다”라며 “예상보다 발굴 유해가많아 시일이 추가로 필요할 것으로 예상돼 당진시에서도 예산을 추가로 확보해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지역의 또 다른 현장도 조사해야

김학로 당진역사문화연구소 소장은 “지역내 곳곳에서 이와 같은 학살행위가 자행됐다는 증언과 진실과화해위원회의 보고서 등이 있다”라며 “아산시의 경우 처음 유해 발굴을 시작으로 시에서 자체 예산을 투입해 총 8회의 유해발굴 사업을 진행했다.

당진시에서도 과거 민간인학살 피해자의 명예와 진실을 밝히고, 용서와 사회통합을 위한 발굴 사업이 진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상연 시의원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과거 지역 곳곳에서 발생했다”라며 “당진시장과 시 행정의 적극적인 의지가 있어야 한다. 당진시가 유해발굴 사업을 지속할 의지가 있다면 시의회에서도 적극 협조할 의지가 있다”고 밝혔다.

박근서 시정팀장은 “지역 내 여러 곳에서 이와 같은 일이 발생한 것으로 알고 있지만 장소를 특정할 수 없고 예산이 수반되는 만큼 장기적인 접근이 필요하다”라며 “현재로서는 우강면 송산리 현장에 집중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진실과 화해 위원회의 보고서를 보면 6․25사변 피살자 명부에 의하면 한국전쟁으로 인한 당진지역 희생자는 총 255명으로 기재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