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 한복판, 고층 아파트와 원룸촌 사이 당진외곽순환 도로가 가로지르는 읍내8통은 지금은 도시형 주거지지만, 한때는 논과 밭, 과수원이 펼쳐진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 샘터에서 물지게를 지고, 마을 아낙들은 이곳에 모여 빨래를 했다.

승리봉의 밤동산은 연인들의 데이트 장소이자, 늦은밤 몰래 밤동산을 찾아온 연인들은 동네 아이들의 짓꿎은 장난의 대상이 되는 곳이기도 했다. 여름이면 밤나무 그늘에 모여 앉아 더위를 피했고, 밭을 일궈 생계를 꾸리는 공간이 되기도 했다.

작은 마을에서 도시형 마을로 당진군지와 읍지에는 조선시대 당진현읍성의 북문 밖, ‘북문박(北門外)’이라 불리던 이곳은 일제강점기 이후 ‘이배면’을 거쳐 오늘날의 읍내8통으로 바뀌었다. 읍내8통이라는 행정명은 도시화와 함께 만들어졌지만, 마을 사람들의 기억에는 여러 지명들이 있다.

마을의 가장 오래된 이름은 ‘북문박(北門朴)’을 비롯해 ‘성문골’, ‘장대골’ 같은 이름을 들을 수 있었다. 성문골은 성문 인근 마을을, 장대골은 군사적 시설이 있었던 골짜기를 의미했다.

주민들은 마을을 ‘윗말’과 ‘아랫말’로 구분해 불렀다. 지금의 벽산아파트 아래쪽이 아랫말, 원룸촌 일대가 윗말에 해당한다. 또한 마을을 가로지르던 ‘대천’과 대천 인근의 ‘닭제골’, 마을 아낙들이 빨래하고 장을 담그던 곳이자, 아이들의 물놀이 장소였던 샘터는 마을살이의 핵심이었다.

읍내8통 토박이인 박현국(74) 통장은 “한때 과수원과 논이 펼쳐졌던 농촌 마을이었지만, 지금은 800세대 이상이 거주하는 도시형 주거지로 변했다”라며 “원주민은 모두다 떠나고 현재는 4~5가구만 남아 있다”고 설명했다.

승리봉에 남겨진 기억

읍내8통에 위치한 승리봉 공원은 지형적으로 당진시를 내려다보는 야산으로, 예전에는 ‘밤동산’ 혹은 ‘남산’이라 불렸다. ‘승리봉’이라는 이름은 6.25 전쟁 후 국가 재건과 통일을 기원하는 의미로 붙여졌다는 설이 전해진다. 당진군지와 읍지에는 1960~1970년대에는 주민과 학생들이 이곳에서 국토통일 기원제를 지냈다고 기록하고 있다.

승리봉에는 산신제를 지내던 돌탑, 기우제·풍년제의 흔적, 그리고 신령이 깃들어 있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현재 이곳은 근린공원으로 조성돼 있으며, 일부는 역사교육 공간이나 주민 쉼터로의 재활용 가능성도 논의되고 있다.

박현국 통장은 “이곳에서 밭을 일구던 마을 주민들이 밭에서 토기 등을 손쉽게 찾아 볼 수 있었다”고 말했다. 과거 이곳이 지역의 중요 요충지로 활용됐음을 볼 수 있는 대목이기도 하다.

과거 승리봉 자락의 밤동산은 아이들에겐 놀이터, 연인들에겐 데이트 장소, 어른들에겐 쉼터였다. 이곳에서 나고자란 차승회(89) 어르신은 당시 승리봉 자락 밤동산을 회상했다.

“늦은밤 라디오 하나 들고 밤동산에 오르면 인기척을 들은 젊은 남녀들이 도망가기도 했어요. 그때는 밤동산이 마을의 청춘이었죠.”

또한 마을 아래 자리 잡았던 샘터는 생활의 중심이었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샘에서 식수를 뜨고, 물지게를 지고 오르내리며 마을살이를 했다. 위쪽은 식수, 아래쪽은 빨래터로 나뉘었고, 샘터는 이웃 간 정을 나누는 공동체 공간이었다. 지금은 복개돼 사라졌지만 여전히 그 기억은 선명하다. 당시 사용하던 물지게를 아직도 창고에 보관 중이라는 차승회 어르신은 여섯 살이라는 어린나이부터 물지게를 지고 다녔다고 말했다.

박현국 통장과 차승회 어르신
박현국 통장과 차승회 어르신

근대사의 기억과 그림자

차승회 어르신은 “지금의 인광빌라 자리에는 1950~1960년대 화교학교가 있었다”라며 “1개 반 크기의 학교에 많은 화교 학생들이 다녔던 기억이 있다”고 말했다.

이외에도 일본인이 운영하던 성모병원부근 상록여관을 비롯해 양조장과 천주교 윗편 일제강점기 시설 지어진 신사와 벚꽃길 등을 회고했다.

그러면서 차승회 어르신은 국민학교 2학년이던 시절, 6·25 전쟁 중 민간인이 학살당한 현장을 목격한 기억을 털어놓기도 했다.그는 “현재의 농어촌공사 인근 공동묘지 골짜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총살당한 채 널브러져 있는 장면을 직접 보았다”라며 “죽은 사람들만 널브러져 있어서 너무 무서워 도망쳤다. 잊히질 않는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마을에 바라는 건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함께 살아갔으면 한다”라며 “서로 헐뜯지 않고 서로 좋게 살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박현국 통장은 “땅값이 비싸다 보니까 누구한테도 땅을 조금도 양보하려고 안 한다”라며 “주민들끼리 서로 협조해 가며 마을발전에 참여 좀 많이 해줬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