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왼쪽 두번째부터 김재진 어르신, 류국성 노인회장, 한용우 이장, 조영호 어르신, 윤성숙 부녀회장,이규순 씨, 심상태 씨, 양귀선 노인회 총무, 이순희 부녀회 총무
사진 왼쪽 두번째부터 김재진 어르신, 류국성 노인회장, 한용우 이장, 조영호 어르신, 윤성숙 부녀회장,이규순 씨, 심상태 씨, 양귀선 노인회 총무, 이순희 부녀회 총무

※ 이 기사는 충청남도 지역미디어발전위원회의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해당 기사는 유튜브 ‘당진방송’ 채널을 통해 영상으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송악읍 반촌2리는 도심과 가까우면서도 오랜 전통과 자연 속에 자리한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다. 마을은 오룡산 자락 아래에 펼쳐진 넓은 들판을 품고 있으며, 신흥동·승선이·대택골·주저울 등 네 개의 자연부락이 어우러져 하나의 공동체를 이룬다. 특히 승선이는 면천군 승선면의 면소재지 역할을 했던 곳으로 과거 ‘승선이’는 배를 대고 사람을 태우던 선착장 역할을 했던 곳에서 유래했다고 알려지고 있다.

또한 ‘대택골’은 배가 닻을 내리던 터라 하여 ‘터굴’ 또는 ‘대터굴’이라 불리기도 한다고 전해지고 있다. 『대동여지도』에는 승선천이 현재의 남원천 본류로 표기돼 있어 이 일대가 예부터 수로와 인접한 마을이었음을 보여준다.

오룡산은 마을 북쪽을 병풍처럼 감싸는 완만한 산으로 다섯 개의 봉우리를 지녀 ‘오룡’이라 불린다. 주민들은 첫번째 봉우리를 옥녀봉이라고 부르고 있으며, 지금도 산에서 도토리를 줍고 땔감을 준비하던 시절을 회고 한다. 전통적으로는 볏가리대를 세우고 농악을 치며 대동제를 열던 마을이기도 했으나 이제는 그 전통이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지는 않다고 말한다.

마을에서 나고 자랐다는 김재진(89) 어르신은 과거 반촌리의 생활상에 대해 자급자족에 가까운 작은 시골마을로 기억하고 있다.

김재진 어르신은 “과거 마을 주민들은 보리와 콩, 밀을 경작하며 살림을 꾸렸고, 아이들은 오룡산 밑에 위치한 강습소를 다니거나 먼 길을 걸어 초등학교에 다녔다”며 “송악읍에서 중흥리가 중심지였고, 지금보다 오히려 사람들이 더 많았다” 고 회고했다.

또한 조영호(81) 어르신은 “70여 년 전 반촌리는 대부분이 자기 땅을 소작해 겨우 먹고살던 전형적인 농촌 마을이었다”라며 “우리 동네 앞으로 당진-예산 간 도로가 뚫리던 게 어릴 때였는데 기지시 장터가 활성화되면서 신흥동에 외지인들이 이사와 마을이 커졌다”고 말했다.

주민들이 살아가는 방식, 마을이 이어가는 공동체

현재 반촌2리는 귀촌한 주민과 터줏대감들이 어우러져 공동체를 이룬다. 11년 전 귀촌한 류국성(85) 노인회장 부부의 소감도 남다르다. “땅을 사려고 여러 곳을 다녀봤는데, 가는 곳마다 축사 냄새가 났어요. 그런데 여기만은 냄새가 없더라고요. 알고 보니 가축 사육 금지 구역이었어요. 깨끗한 환경도 좋지만, 무엇보다 동네 분들 인심이 좋고 단결이 잘 되는 게 가장 좋습니다. 이장님이 방송 한 번 하면 모두가 따르니, 텃세 걱정 없이 늙은 막에 참 잘 왔다 싶어요.”

그의 부인 이규순(79) 씨도 “고구마, 감자 등농산물을 수확할 때마다 나눠주니 정이 넘치는 마을”이라며 귀촌생활에 만족감을 보였다.

반촌2리는 외지 출신 여성들의 터전이기도 하다. 윤성숙(65) 부녀회장은 25세에 시집와 4세대를 모시고 살았다. 지금은 마을에서 두부를 직접 만들어 장터에 내놓고, 부녀회 활동에도 적극 앞장서며 마을 공동체를 위해 봉사를 하고 있다.

양귀선 노인회 총무(78)는 21세에 반촌리에 시집와 50년을 살아왔다. “시어머니가 마을의 어른이셨는데, 배울 새도 없이 심부름만 했죠. 하지만 이제는 마을을 함께 꾸려가는 일원으로서 이웃들과 함께 남은 평생 함께 하고 싶습니다.”

80년대에 기지시에서 이사 온 심상태(77)씨는 “처음엔 소통이 안 됐는데, 지내보니 이렇게 협동심 강하고 좋은 분들이 많은 동네가 없다”면서 “애들은 아파트로 가라고 하지만, 나는 끝까지 여기서 살고 싶다. 그만큼 자랑할 만한 동네”라고 힘주어 말했다.

“장터로 살아나는 마을, 협동의 힘”

침체될 수도 있었던 마을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은 것은 다름 아닌 주민들의 ‘함께’라는 의지였다. 그 구심점이 된 것이 바로 2016년 문을 연 ‘반촌2리 주말 직거래장터’다. 한용우(74) 이장은 장터를 열기 위해서는 부지와 1800만 원의 자부담금이 필요했다.

한 이장과 박종규 새마을지도자는 장터 부지로 점찍은 반촌리 853-15번지 땅의 사용 승낙을 받기 위해 논산까지 달려가 순흥 안씨 소절공파 안병록 종친회장을 만났다. 마을의 미래를 위한 진심 어린 설명에 종친회는 흔쾌히 토지 무상 사용을 약속했다. 자부담금 문제는 마을 임원들이 나섰다.

한용우 이장을 비롯해 이은길, 박종규, 구본창, 김호남, 양귀선 씨까지 총 6명이 각 300만 원씩을 기꺼이 내놓았다. 이 돈으로 몽골텐트 6동을 사고, 마을 상표 디자인을 개발하고, 장터에 잔디를 심었다. 여기에 희망마을 만들기 지원금으로 정자와 의자를 설치하고, 시에서는 정자목과 음수대를 지원했다. 모든 것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협력으로 이루어졌다.

2016년 7월 2일, 드디어 역사적인 개장식이 열렸다. 가수 서주경, 박일준 등이 축하 공연을 펼쳤고, 마을 부녀회는 정성껏 음식을 마련해 손님을 맞았다. 인근 아파트 주민들까지 몰려들어 장터는 인산인해를 이뤘다. 매월 첫째, 셋째 주 토요일마다 열리는 장터는 이제 마을의 상징이자 사랑방이 됐다.

“내 가족이 먹는다”는 마음으로 정성껏 키운 농산물, 직접 재배한 콩으로 만든 손두부와 도토리묵, 각종 장류와 와인까지 1~2인 가구를 위한 소포장 상품은 특히 인기가 좋다. 무엇보다 이곳의 가장 큰 매력은 ‘신뢰’와 ‘정’이다. “주고 싶은 만큼 주세요”라며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가격을 정하는 모습은 대형 마트에서는 결코 찾아볼 수 없는 풍경이다.

“계속해 도전하는 주민들”

이러한 경험과 주민들의 단단한 결속력은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이어졌다. 2017년부터 꾸준히 도전한 끝에, 반촌2리는 5억 원의 사업비를 확보하는 쾌거를 이뤘다. 이 소중한 예산으로 주민들의 오랜 숙원이던 마을 공동체 센터를 신축하고, 주말 장터에 울타리를 둘렀다.

새로 지어진 센터는 주민들을 위한 배움과 교류의 장으로 활발하게 사용되고 있다. 경로당에서는 요가 교실이 열리고, 센터에서는 발효식품 소규모 지원 사업과 탄소 중립 음식 만들기 강의가 매월 진행된다. 주민들은 이곳에 모여 함께 배우고 소통하며 공동체의 결속을 더욱 단단히 다지고 있다.

한용우 이장은 마을 만들기 사업을 이끌며 마을센터 건립, 식품가공시설 조성, 저온저장고 등 마을 인프라를 확대해 왔다. 한 이장은 “앞으로 종합개발계획에도 도전해 젊은 세대가 다시 돌아오고, 살아 숨 쉬는 마을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다.

삶이 이어지는 마을, 사람이 모이는 마을반촌 2리 주민들은 누군가는 마을을 떠났고, 또 누군가는 다시 이곳에 집을 짓고 살아간다며 많은 사람들이 다시 이 마을로 돌아오길 바란다고 전했다.

“반촌리는 오룡산 등산로가 잘 되어 있습니다. 앞으로도 많이 이용해 주시고 반촌리가 반짝반짝 빛나는 마을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조영호 씨-

“직거래 장터에서는 마을 주민들이 직접재배한 농산물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또한 두부 간장 기름도 직접 만들어서 판매하고요. 많이 오셔요. 우리 동네 너무 좋습니다.” -윤성숙 부녀회장-

“마을 회관에서 매일 점심도 같이 먹고 일주일에 두 번 요가하는 것도 너무 즐겁고 반촌리에서 산다는 것에 너무 큰 자부심을 느낍니다. 지금까지 이장님이 너무 일을 잘해주시기 때문에 앞으로도 계속 그 정도로만해 주신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 심상태 씨-

“우리 이장님을 비롯해 많은 분들이 지금까지 마을 사업을 위해서 한 20년 동안 고생하셨는데 이장님 뒤를 이을 사람들을 젊은 사람들이 좀 많이 오셔서 그분들이 이 동네를 이끌어 가셨으면 하는 마음이 절실합니다.” -양귀선 노인회 총무-

“우리 마을에 결혼 안 한 젊은 분들이 많이계세요. 그분들이 빨리 결혼해 자손도 많이 낳으셔서 우리 뒤를 잇고 좋은 마을을 만들었으면 좋겠습니다.” -이순희 부녀회 총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