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진 지 한 달이 흘렀다. 곳곳에서는 일상을 회복하는 모습이 보이지만, 여전히 수해의 흔적 속에서 평범한 하루를 되찾기 위해 버티는 이웃들이 있다.
누군가에겐 빗소리가 차분한 휴식의 배경이 되지만, 또 누군가에게는 공포를 되살리는 소리이기도 하다.
지난달 17일 당진시에 내린 폭우로 큰 피해를 입은 용연동 역시 그렇다. 이곳에서 동백떡방앗간을 운영하는 서동민 대표 가족은 그날 생업과 삶의 터전을 잃을 뻔한 순간을 겪었다.
“아이들 가슴 높이까지 물 쏟아져”
지난달 16일 비가 시작되던 날 밤, 서동민 대표 가족은 지인과 모임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방앗간 옆 조립식 건물에서 아이들을 씻기고 잠자리에 든 후, 빗소리가 점점 거세졌다. 재난 문자가 연이어 울리고 천둥·번개가 치자 불안은 커졌지만, 곧 그치리라 생각하며 다시 방으로 들어왔다.
그러나 새벽 3시 30분, 평소와 다르게 울어대는 고양이와 ‘똑똑’ 물이 새는 소리가 위기를 알렸다. 대피를 결심하고 문을 열었을 때, 아이들 가슴 높이까지 물이 한순간에 밀려 들어왔다. 밖으로 나가자 이미 차는 바퀴 위까지 물에 잠겼고, 인근 사기소리와 행정리 일대도 물에 잠겨 어디로도 갈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아이들 손을 잡고 나왔는데 주변은 이미 물바다가 돼 있었습니다. 차를 타고 나갈 수도 없었고, 젖은 옷으로 아이들이 저체온증에 걸릴까 걱정됐습니다. ‘컨테이너 위로 올라가면 안전할까’ 생각하며 대피할 곳을 찾았습니다.”
서 대표 가족은 결국 인근 주유소로 몸을 피했다. 지대가 약간 높아 물이 닿지 않은 그곳은 유일한 피난처였다. 이후 구조대에 위치를 알렸고, 구조된 이웃 어르신들도 하나둘 주유소로 모여들었다. 가족이 챙겨 나온 얇은 이불은 그곳에 모인 모두의 체온을 지탱해 주었다.
안도감 뒤에 찾아온 막막함
비가 잦아든 뒤, 당진에 거주하는 다른 가족의 도움으로 아이들과 함께 장인어른의 집으로 대피했다. 부부가 그날 오후 집으로 돌아왔을 때, 눈 앞에 펼쳐진 것은 물이 쓸고 간 진흙과 쓰러진 집기뿐이었다.
“사용할 수 있는 물건이 거의 없었습니다. 모든 생명이 살았다는 안도감이 먼저였지만, 긴장이 풀리자 막막함만 남았습니다.”
방앗간의 기계와 집안 물건은 대부분 버려야 했다. 기름과 진흙이 뒤섞여 복구조차 쉽지 않았다. 하지만 가족과 지인, 그리고 교회의 도움으로 하나씩 정리를 시작할 수 있었다.



이웃의 손길, 다시 일어설 힘 돼
서 대표는 당진성결교회 찬양 목사이기도 하다. 소식을 들은 교인들과 지인들은 곧바로 현장으로 달려와 진흙을 닦고 집기를 옮겼다. 현대제철 봉사자, 호서대 제자들, 한국떡류식품가공협회 당진지부 등이 함께했다.
“목발을 짚고 있는 우리 곁에서 같이 목발을 짚어주듯 부축해주셨습니다. 그분들이 없었다면 혼자 보름 넘게 진흙을 치우며 하루하루 마음이 무너졌을 겁니다.”
“빗소리만 들려도 두렵다”
복구가 채 끝나기도 전인 지난 13일, 다시 굵은 비가 쏟아졌다. 막내 하임이는 울면서 “주유소로 가야 한다”고 외쳤다. 다행히 그날 무사히 지나갔지만, 아이의 울음소리에 부부의 마음은 다시 무너졌다.
“아이 마음에 ‘그곳에 가야만 살 수 있다’는 기억이 새겨진 것 같았습니다. 앞으로 또 이런 일이 반복된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안전한 곳으로 옮겨야 할지 고민이 깊어졌습니다.”
방앗간은 일부 기계를 수리해 지난 18일부터 영업을 재개했지만, 여전히 벽은 마르지 않았고 가전제품도 제 기능을 하지 못한다. 무엇보다 마음속 불안은 사라지지 않았다.
“반복될 것 같은 불안 속에서 여전히 긴장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만약 이런 일이 다시 닥친다면 과연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 걱정됩니다. 이미 원래 살던 집으로 돌아가지 못한 이웃도 있고, 끝없는 청소와 복구가 무의미하다고 느껴 이곳을 떠난 분들도 있습니다. 다시는 이런 피해가 반복되지 않도록 지역 차원의 근본적인 대책이 마련됐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도움 주실곳 문의: 041-355-5440
■주소: 동백떡방앗간(역천로 59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