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전통시장 재건축(정비) 사업을 둘러싼 갈등이 새 국면으로 접어들고 있다.

보상을 받고 시장을 떠난 상인들뿐만 아니라 재입점을 전제로 임시시장으로 옮겨야 하는 상인들까지 시민단체를 찾아 도움을 요청하며 대책위원회 구성에 나섰기 때문이다.

지난 22일 참여연대 사무실에 전통시장 상인 40여 명이 모였다. 이 가운데 약 30명은 이미 재입점에 동의하고 임시시장으로 이전하라는 통보를 받은 상인들이다. 이날 자리에는 당진시민사회대개혁비상행동(비상행동)과 당진참여자치시민연대(참여연대) 관계자들도 참석해 상인들의 하소연을 들었다.

“재건축 반대라기보다, 이 구조가 너무 불안해”

이날 모임은 상인들이 먼저 시민단체에 연락해 “도저히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다”며 긴급히 만들어진 간담회였다. 상인들은 입을 모아 “재건축 자체를 무조건 반대하는 게 아니다”라며 대신 기부채납 방식, 보상·분양 구조, 임시시장 설계, 행정 방식 전반에 대한 불신을 강하게 드러냈다.

이날 참석해 발언을 한 한 상인은 “우리가 40~50년을 지켜온 시장인데, 이제 와서 아무 문서도 없이 ‘나가라’는 말만 반복한다”며 “도대체 무엇을 믿고 임시시장으로 옮기라는 거냐”고 호소했다. 또 다른 상인은 “재입점을 선택한 상인들은 이주비도, 영업손실비도, 냉장고 옮기는 비용도 한 푼 받지 못했다”며 “당진시와 정비조합(정비사업주식회사, 대표 정제의)은 우리가 ‘시장에 남겠다’고 한 걸 오히려 당연한 희생으로만 보는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당진시는 노후 시설 안전등급 D등급 판정을 이유로 전통시장 정비사업을 추진해 왔으며, 시유지 위에 상인들이 비용을 부담해 건물을 짓고 20년간 사용한 뒤 시에 기부채납하는 구조로 사업을 설계했다. <본지 1570호, ‘50여 년의 역사 속으로…철거 앞둔 당진전통시장’ 기사 참조>

본지가 앞선 두 차례 기획기사에서 보도한 대로, 정비사업비는 예상 설계안 기준 280억 원대, 설계비만 20억 원 이상으로 책정됐고, 재입점 상인 분양가는 10평 기준 8500만 원, 일반 분양은 1억 3500만 원 수준으로 제시된 바 있다. <본지 1583‧1584호, ‘당진전통시장 재건축 갈등’ 기획기사 참조>

상인들은 “이 구조가 과연 ‘전통시장 상인을 위한 재건축’인지, 아니면 ‘노른자 땅에 최대한 (상가)호수를 넣어 이익을 극대화하려는 분양사업’인지 의심스럽다”고 입을 모았다.

“재입점 상인은 0원 보상”… 남기로 한 사람들의 부담

이번 모임의 특징은 이미 보상을 받고 시장을 떠난 상인들보다 ‘시장에 남겠다고 선택한 상인들’의 불만이 폭발했다는 점이다.

상인들에 따르면 폐업하는 상인에게는 약 2270만 원 안팎의 보상이 지급(감정평가 액)되지만, 재입점 상인들은 ‘언제까지 장사를 멈춰야 하는지, 임시시장 환경은 어떠한지, 임대료와 관리비는 어떻게 되는지’에 대한 명확한 안내가 없다고 주장했다. 게다가 임시시장으로 옮겨야 하는 이주비, 영업손실보상 등의 보상 없이 임시시장으로 떠밀리고 있다고 호소했다.

재입점을 선택했다는 한 상인은 “나가는 사람은 그래도 ‘장사를 접는다’는 선택과 함께 약간의 보상을 받지만 우리는 장사를 계속하라는 조건인데도 손해는 온전히 우리가 감당해야 한다”며 “장사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왜 ‘0원 보상’을 받아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재입점 상인은 “10평 기준 분양가 8500만 원에 인테리어 집기‧이주비까지 합치면 2억 원이 훌쩍 넘는다”며 “대부분 대출을 끼지 않으면 불가능한 금액인데, 지금 당진 상권과 유동인구에서 그 돈을 다시 회수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털어놨다. 이날 자리에서는 “차라리 시가 직접 건물을 짓고 임대하는 방식이었다면 이렇게까지 (상인들이 시장을)많이 나가지 않았을 것”이라는 회고도 나왔다.

“두 평 남짓 임시시장, 냉장고도 나눠 써라”… 상인들 “장사하라는 건가, 나가라는 건가”

임시시장 설계와 운영 방식도 갈등의 핵심으로 떠올랐다.

이날 참석한 상인들 설명에 따르면 시와 정비조합은 주차장 부지에 법적으로 필요한 최소 면적만 확보해 임시 점포를 배치했다. 일부 상인은 “각 점포에 배정된 공간이 두 평도 되지 않는 칸막이 수준”이라며 “이 공간에 냉장고와 진열대, 계산대, 손님 동선까지 모두 넣으라는 건 사실상 ‘장사하지 말라’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냉장·냉동 설비 문제도 심각하다. 한 상인은 “큰 냉장고 하나를 세 집, 네 집이 나눠 쓰라는 식으로 안내를 받았다”며 “담는 물건도 다르고, 온도도 다르고, 분실 우려도 있는데 이걸 어떻게 공동으로 쓰느냐”고 호소했다. 그러면서 “본인이 직접 비용을 들여 냉장고를 옮기겠다고 했지만 처음에는 무대 앞 빈터에 설치해도 된다, 전기와 지붕까지 지원하겠다고 했다가, 이후에는 지붕은 못 해주겠다, 나중에는 그런 약속을 한 적 없다는 식으로 말이 바뀌었다”고 증언했다.

상인들은 “구두 약속만 하고 문서화는 하지 않은 채 사업을 밀어붙이는 방식이 반복돼 신뢰가 무너졌다”며 “행정과 정비조합이 우리를 ‘언제든 교체 가능한 장사꾼’ 정도로 취급하는 것 같다”고 토로했다.

“공문도 없이 전기·수도 끊겠다고?”… 시민단체 “행정독재·개별 분리 전략”

행정 방식에 대한 불만은 ‘행정독재’라는 표현으로까지 이어졌다.

여러 상인들은 이날 모임에서 “공문 한 장 받은 적이 없다”, “‘27일까지 안 나가면 전기·수도 끊는다’는 말을 들었다”는 경험을 공유했다. 한 상인은 “만약 진짜 전기를 끊을 생각이라면 정식 공문으로 ‘언제까지 비우지 않으면 단전·단수하겠다’는 통지를 보내야 하는데 그런 절차 없이 말로만 위협하는 건 협박에 가깝다”고 비판했다.

시민단체 측은 이를 개별 접촉·개별 압박을 통한 ‘분리 전략’으로 해석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1:1 심리전’ 방식이 당진전통시장에서도 반복되고 있다”며 “상인들이 뭉치지 못하게 만들고, 각자도생으로 몰아가는 전형적인 방식”이라고 지적했다.

또 다른 시민단체 관계자는 “우리가 겪어온 군사독재‧검찰독재에 이어, 지금 상인들이 당하는 건 ‘행정독재’”라며 “시민이 뽑은 시장이 공공의 권한을 특정 사업구조에 넘기고, 그 과정에서 소상공인이 피해를 보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20년 쓰고 나가라는 기부채납…전통시장은 누구의 것인가”

기부채납 방식에 대한 문제의식도 분명하게 드러났다. 상인들이 정비조합으로부터 전달받은 설명에 따르면 △땅은 당진시 소유 △상인들이 대출·신탁 등을 통해 공사비를 부담해 건물을 짓고 △20년간 사용한 뒤 건물은 당진시에 기부채납 △재입점 상인들은 분양가를 부담해 점포를 확보해야 한다.

한 상인은 “이 구조대로라면, 우리는 20년 동안 대출 갚으면서 장사하고 20년 뒤에는 그냥 나가야 하는 사람들”이라며 “이게 과연 ‘시장 상인을 위한 현대화’인지, 미래의 수익을 담보로 한 투당진시‧정비조합을 위한 사업인지 묻고 싶다”고 말했다.

또 다른 상인은 “당진 오일장 상인들은 세금도 거의 안 내고 쓰레기만 남기고 간다”며 “정작 상설시장을 지켜온 상인들의 권리와 생존은 후순위로 밀렸다. 오일장 정비와 상설시장 활성화를 함께 고민하기는커녕 건물만 새로 지으면 상권이 살아난다고 믿는 발상”이라고 꼬집었다.

당진전통시장은 1974년 개장 이후 50년 가까이 당진 원도심 상권의 중심지 역할을 해왔다. 그러나 지난 10년 넘게 재개발·재건축 추진 과정에서 사업 방식과 토지 매각, 상인 보상 문제 등을 두고 크고 작은 갈등이 반복돼 왔다.

상인들, “대책위로 뭉친다”… 감사청구·법률 검토·정보공개 청구 예고

이날 자리에 참석한 비상행동과 참여연대 관계자들은 “시민단체가 해결을 대신해 줄 수는 없지만, 상인들의 조직화와 법률적·행정적 대응을 돕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양측은 우선 다음과 같은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

△상인 비상대책위원회 구성 △재입점 상인들을 중심으로 대표·부대표 선출 △향후 모든 협상·행정 대응·언론 대응 창구를 대책위로 일원화 △“중간에 흔들리거나 갈라지면 시민단체도 힘을 잃는다”는 부탁과 함께, 내부 분열을 막는 것이 가장 중요한 전제로 제시됐다.

또한 시민단체는 법률 검토 및 소송 검토를 진행하고 인권·행정 전문 변호사를 선임, 전반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 진행 등 전방위적으로 돕겠다는 의사를 상인들에게 전했다.

시민단체 한 관계자는 “이 사업은 단순히 시장 하나 짓는 수준이 아니라, 공공 토지 위에 민간 개발과 기부채납 구조가 얽힌 복합 사업”이라며 “자료를 하나하나 뜯어보면, 상인들 말처럼 ‘상인을 위한 설계인지, 사업자를 위한 설계인지’가 분명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20년 넘게 이어진 ‘전통시장 현대화’ 논쟁, 분수령 맞나

당진전통시장 현대화 논쟁은 20년 넘게 이어진 숙제다. 2000년대 초반부터 재개발·재건축 방식, 시유지 매각 여부, 민간 개발 참여, 기부채납 방식 등을 두고 여러 차례 시도와 좌절, 상인 간 분열을 겪어 왔다.

이번에는 그 갈등의 중심에 ‘재입점 상인’이 섰다는 점이 이전과 다르다.

일부 상인이 아니라, “시장에 남겠다”고 선택한 이들이 “이대로는 못 들어간다”며 대책위를 꾸리기 시작한 것이다.

한 상인은 이날 모임을 마무리하며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이 시장을 키워온 사람들인데 장사를 계속하겠다는 우리가 가장 큰 부담을 떠안고 가장 큰 불안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시장이 정말 누구를 위한 시장인지, 이제는 당진시와 시민 모두가 함께 물어봐야 할 때입니다.”

간담회 이후 자리에 모인 상인들은 회의를 진행하고 자발적으로 대책위를 공식 출범시켰다. 대책위 대표 한 명과 부대표 두 명을 선출했으며 대책위는 상인, 시민단체와 함께 기자회견, 오성환시장 면담요청, 감사청구와 법률 대응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이제 당진전통시장 재건축 갈등은 ‘상인 vs 상인’의 내부 갈등을 넘어, 행정과 사업 구조 전반을 겨냥한 공론장으로 옮겨갈 가능성이 크다.

50년 넘게 당진 시민의 삶을 품어 온 전통시장이 어떤 방식으로 ‘새 옷’을 입게 될지, 그리고 그 과정에서 상인들의 생존권과 공공성이라는 두 축이 어떻게 조율될지가 향후 당진 지역사회의 중요한 과제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