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가연 씨
이가연 씨

“장례식엔 국화 말고 하얀 장미를 준비해주세요. 수의는 삼베 말고 룰루레몬 레깅스를 입겠습니다.”

26세에 희귀암 3기 진단을 받은 이가연 씨는 죽음을 준비하면서도 끝까지 웃음을 잃지 않았다. 크리스마스에 암 선고를 받고, 총 14번의 항암과 50회의 방사선을 견뎌낸 그는 자신의 투병 생활과 치료 이후에 다녀온 산티아고 순례길의 기억을 한 권의 책으로 기록했다.

“암에 걸렸다고 모든 게 끝은 아냐”

6년 전 당진으로 이사해 현재 공부방에서 국어를 가르치고 있는 이가연 씨는 지난해 당진시립도서관에서 진행한 ‘1인 1책 쓰기’ 프로그램에 참여해 자신의 삶을 <안녕 부탁해 오늘도>라는 한 권의 책에 담았다.

가연 씨는 “제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며 “투병이 두려울 수 있지만 암에 걸렸다고 해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은 아니라는 말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크리스마스에 받은 암 진단

가연 씨는 26세였던 크리스마스에 암 진단을 받았다. 당시 디자이너로 일하며 잦은 야근으로 몸에 무리가 가고 있었고 진단을 받기 전 두세 달 사이 체중이 20kg 가까이 늘어났음에도 큰 병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숨이 너무 차서 동네 병원을 찾았는데 정확한 진단을 받지 못했다”며 “조금 더 큰 병원에 갔더니 처음에는 폐렴이라고 했다가 다음날 흉선암이나 림프종 같다고 해 수원의 병원으로 옮겼고, 그곳에서 흉선암 3기 진단을 받았다”고 말했다.

14번의 항암과 50회의 방사선

그렇게 하루아침에 암 환자가 된 가연 씨는 8번의 항암치료와 약 50회의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 그러나 치료를 받을수록 상태는 나아지지 않고 오히려 더 빠르게 전이됐다. 이에 병원을 옮겨 진단을 다시 받았고 흉선암이 아닌 림프종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가연 씨는 “림프종은 항암 6번이면 되는 병인데, 오진으로 인해 추가로 6번의 항암치료를 해야 했고 받지 않아도 될 방사선 치료를 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소송도 생각했지만 어머니의 ‘그 돈 찾으려고 스트레스 받느니 없는 셈 치고 살자’는 말에 포기했다”고 말했다.

셀프 장례식을 준비하다

그가 앓은 암은 희귀암으로 생존율도 높지 않았다. 항암치료로 머리카락은 물론 속눈썹까지 몸에 있는 털이 다 빠지기 시작했고 약물 부작용으로 통증과 불면에 시달렸다. 그는 “항암 치료보다 더 힘들었던 건 잠을 못 자는 것이었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그는 가장 힘든 순간에도 특유의 유쾌함을 잃지 않았다. 뼈까지 전이된 상태에서 마음의 준비를 마친 그는 ‘셀프 장례식’을 계획했다.

“평범한 장례식은 싫었어요. 마이클 잭슨 장례식에서 빨간 장미를 쓰는 걸 보고 어머니께 국화 말고 하얀 장미나 연분홍 장미로 하면 안 되냐고 했죠. 수의도 삼베 대신 제가 좋아하는 룰루레몬 레깅스를 입겠다고 했고요. 그랬더니 어머니가 ‘우리 딸은 끝까지 돈을 많이 쓰고 간다’고 하시더라고요.”

가족과 함께 행복한 시간

가연 씨는 약 1년 간의 항암 치료 기간을 “가족과 함께할 수 있어 오히려 행복했던 시간”으로 기억했다. 그는 “어린 시절 맞벌이 부모님 밑에서 자라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부족했고, 언니와 오빠와는 나이 터울이 커서 친하게 지내지 못했다”며 “공부를 잘하지만 몸이 약했던 언니 위주로 가정 분위기가 돌아갔다”고 말했다.

그러나 가연 씨의 암 투병을 계기로 가족의 관심이 자연스럽게 그에게 모이기 시작했다. 당시 언니는 31세, 오빠는 30세로 각자 사회생활로 바빠 흩어질 시기였지만 오히려 이 일을 계기로 가족이 다시 하나로 뭉쳤다. 가연 씨가 “바람 쐬러 가자”고 하면 온 가족이 함께 움직일 정도로 함께하는 시간이 크게 늘었다.

그는 “그때는 정말 ‘나의 시대가 왔다’는 느낌이었다”며 “항암 치료를 받으러 가는 새벽, 갓 태어난 쌍둥이 조카가 눈을 뜨고 웃어주는 모습을 보며 큰 힘을 얻기도 했다. 너무 행복하고 소중한 시간이었다”고 말했다.

“숨차게 걷고 싶다”

항암 치료를 마친 지 2년이 지나 가연 씨가 서른 살이 됐을 무렵 그는 암 재발 가능성이 낮아진 관해 상태에 들어섰다.

어느 날 TV에서 지리산 눈꽃 트레킹을 걷는 장면을 보던 그는 “그냥 무작정 숨이 차게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뚜렷한 계획은 없었다. 그러다 성당 봉사활동 중 무심코 “산티아고 순례길을 한 번 걷고 싶다”고 말한 것이 여러 사람에게 전해졌고, 이후 만나는 사람들마다 언제 출발하느냐고 묻기 시작했다고. 그렇게 얼떨결에 “9월에 간다”고 답해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청약통장을 해지하고 항공권을 끊었다.

40여 일간 800km 걸어

오랜 치료로 체력이 크게 떨어진 상태에서 하루 10kg이 넘는 배낭을 메고 40여 일을 걷는 것이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 가연 씨는 급히 체력 단련에 나섰다. 크로스핏 학원을 등록했지만 하루 만에 포기했고, 걷기 연습도 일주일 만에 중단했다. 큰 준비 없이 산티아고 순례길에 오른 그는 “생각보다 훨씬 더 힘들었다”며 “처음에는 20분에 한 번씩 배낭을 벗어 던질 정도로 고통스러워 한 걸음 한 걸음이 후회였다”고 회상했다. 하지만 몸은 조금씩 적응해 갔다.

가연 씨는 “나흘 정도를 버티고 5일 차가 되자 거짓말처럼 배낭이 가볍게 느껴졌다”고 말했다. 20분마다 내려놓던 가방을 메고도 한 시간 이상 걸어도 괜찮았고 나중에는 25km를 수월하게 걸을 수 있게 됐다. 그는 40일 동안 800km를 완주한 뒤 추가로 100km를 더 걸었다.

“나도 끝까지 할 수 있구나”

가연 씨는 순례길을 걸으며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시각장애인 어머니를 안내하며 걷는 스위스 모녀, 먼저 세상을 떠난 아내의 유골을 뿌리기 위해 길에 오른 한국인, 아버지의 마지막 전화를 받지 못한 것이 못내 한이 된 사람 등의 이야기를 들으며 길을 걸었다.

산티아고 순례길 이후 달라진 것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이전의 나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똑같다”고 답했다. 다만 “예전에는 문제집 한 권도 끝까지 풀지 못하던 사람이었는데, 이 길을 통해 ‘나도 끝까지 해낼 수 있다’는 첫 경험을 얻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변화”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