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학교 급식법이 통과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얼굴은 내 친정엄마였다.
엄마는 내가 12살 무렵 당진초등학교에서 첫 급식을 시작할 때 부터 30년 동안 학교 급식실에서 일했다. 새벽같이 출근해 검수부터 시작해 커다란 솥 앞에 서고, 무거운 식재료를 나르며 수백 명 아이들의 한 끼를 책임졌던 사람이다. 그러나 그 긴 시간 동안 엄마는 ‘전문 노동자’로 불린 적이 거의 없었다. 대부분의 순간, 엄마는 그저 보이지 않는 사람이었다.
급식은 늘 당연한 것으로 여겨졌다. 아이들이 식판을 들고 줄을 서면, 음식은 이미 그 자리에 있어야 했다. 그 음식이 어떤 손을 거쳐 나왔는지, 그 손이 얼마나 무거운 노동을 감당하고 있는지는 관심 밖이었다. 엄마의 팔과 허리는 해마다 더 굽어갔고, 관절은 망가져 갔지만 “다들 이렇게 일한다”는 말이 위로처럼 반복됐다.
학교 급식법 통과는 바로 이런 ‘당연함’에 대한 질문이다. 급식이 단순한 행정 서비스가 아니라는 점, 그 안에 사람의 노동과 아이들의 권리가 함께 존재한다는 사실을 법으로 확인한 것이다. 아이들의 건강한 식사를 보장하는 일은 급식 노동자들의 안전하고 존엄한 노동을 보장하는 일과 결코 분리될 수 없다.
아이들에게 따뜻한 한 끼를 정성껏 준비해야 한다는 책임은 오랫동안 개인의 성실함에만 맡겨져 왔다. 이번 학교 급식법은 그 책임을 이제 국가와 사회가 함께 져야 한다는 선언에 가깝다.
특히 의미 있는 변화는 급식을 ‘비용’이 아니라 ‘권리’이자 ‘교육’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는 점이다. 급식실은 단순한 노동 현장이 아니라 아이들의 건강을 지키는 최전선이며, 동시에 지역과 환경, 공동체를 배우는 공간이다. 그 공간이 지속 가능하려면, 그 안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삶 또한 지속 가능해야 한다.
물론 법 하나로 엄마 세대가 겪어온 고단함이 모두 보상되지는 않는다. 여전히 현장에는 인력 부족과 과중한 노동, 불안정한 처우 문제가 남아 있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어쩔 수 없다”는 말로 모든 문제를 덮을 수는 없게 됐다. 법은 기준이 되고, 기준은 변화를 요구한다.
학교 급식법 통과는 아이들을 위한 법이자, 동시에 30년 동안 식판 뒤에 서 있었던 수많은 ‘엄마들’을 위한 법이어야 한다. 그들이 흘린 땀 위에서 아이들의 하루가 시작됐다는 사실을 사회가 이제야 인정하기 시작했다는 점에서, 이 법은 늦었지만 반드시 필요했다.
그래서 나는 이 법의 통과를 격하게 반긴다. 더 늦기 전에, 더 많은 몸이 망가지기 전에, 급식실에 서 있던 사람들이 비로소 이름을 얻었기 때문이다. 급식은 복지가 아니라 존엄의 문제다. 그리고 그 존엄을 향한 이 첫걸음을, 나는 식판 뒤에 서 있던 한 사람의 딸로서, 누구보다 크게 환영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