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당진 지역 일부 농협에서 불거진 임원 선거 금품 살포 의혹을 두고 “도대체 농협 이사와 감사가 어떤 자리기에 돈까지 뿌리느냐”는 의문이 커지고 있다. <관련기사 1592호 ‘일부 조합 임원선거에 금품 살포 의혹’, 1593호 농협 임원선거 금품 살포 의혹, 경찰 수사 나서나 참조>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지역 농협의 농협 이사·감사는 겉으로는 비상임 명예직을 표방하지만 실제로는 조합 경영의 핵심 줄기를 쥐고 흔드는 권한이 그 배경으로 지목된다.
농협 이사와 감사는 이사회 구성원으로서 조합의 모든 사업 예산을 심의하고 승인한다. 특히 임직원의 임명과 해임에 관여하는 인사권, 하나로마트 입점 업체 선정, 대출 심사 기준 설정 등 조합원의 실생활과 밀접한 이권에 개입할 여지가 크다. 감사의 경우 조합의 업무와 재산 상태를 조사해 잘못을 지적할 수 있는 권한을 쥐고 있다. 실익도 만만치 않다. 비상임임에도 회의 때마다 지급받는 수당과 활동비, 연수 비용 등을 합치면 연간 적지 않은 액수다. 또한 농촌 지역에서 이사나 감사라는 직함이 주는 사회적 위신과 권위 역시 무시할 수 없는 매력 요인이다.
전국이 몸살... 대구선 68명, 전주선 23명 무더기 적발
이 같은 구조적 유혹이 전국 각지에서 금품 선거를 낳고 있다. 대구에서는 한 농협 비상임이사 선거에서 후보 15명 가운데 13명이 대의원들에게 200만~1390만 원 상당의 금품을 제공했고, 대의원 55명 중 52명이 20만~480만 원을 받아 총 68명이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입건됐다. 금품 거래를 알선한 2명은 구속됐으며, 이들이 주고받은 금품은 총 7950만 원에 달했다. 해당 농협은 2017년 임원 선거에서도 후보자 5명이 금품을 살포한 혐의로 입건된 전력이 있다.
전북 전주농협에서도 지난해 2월 이사 선거 과정에서 금품이 오간 정황이 드러나, 전주완산경찰서가 이사와 출마자·대의원 등 23명을 농업협동조합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넘겼다. 노조 측은 “이사 선거 후보자 2명이 대의원 한 명에게 50만~100만 원을 건넸다”고 주장했고, 경찰은 당시 선거권을 가진 대의원 120여 명 가운데 90여 명을 참고인으로 불러 조사했다.
충남 보령에서는 전국농민회총연맹 보령농민회가 “대천농협 임원 선거에서 수억 원의 금품이 대의원들에게 살포됐다”는 의혹을 제기했고, 해당 농협 임원 7명이 전원 사퇴했다. 경북 영천에서도 한 축협 비상임이사 선거에서 금품을 주고받은 후보자와 대의원 등 12명에 대해 구속영장이 신청됐고, 청탁 금액은 수천만 원으로 확인됐다. 제주에서는 대의원에게 금품을 건넨 비상임이사가 1심에서 징역 6개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았다.
강원도에서는 농협중앙회 강원지역 비상임이사 선출 과정에서 강릉지역 농협 조합장이 다른 조합장 10여 명에게 금품 6500여만 원을 건넨 혐의로 구속됐다. 경찰은 강원지역 농협 14곳을 압수수색하고, 금품을 받은 조합장 10여 명도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수재 혐의를 적용해 검찰에 넘겼다.
조합장 선거의 핵심 조력자
더 큰 문제는 내년 3월 예정된 ‘제4회 전국동시조합장선거’와의 상관관계다. 농협 이사와 감사는 각 지역구 대의원과 조합원을 관리하는 핵심 인물들이다. 조합장 후보들에게 이들은 선거 승리를 위해 반드시 포섭해야 할 ‘책사’이자 강력한 우군이다.
이 때문에 조합장 후보가 자신의 세력을 이사회에 심기 위해 특정 인물을 지원하거나, 반대로 이사 후보가 향후 조합장 선거에서의 역할을 담보로 금품을 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지역 농업계 관계자들은 “임원직은 조합장으로 가는 징검다리이자, 당선 후에는 자기 지분을 요구할 수 있는 확실한 담보”라고 입을 모은다.
폐쇄적인 선거 구조도 금품 유혹을 부추긴다. 전체 조합원이 아닌 50~100명 안팎의 대의원만 포섭하면 당선권에 들 수 있는 간선제 구조는 ‘소수만 매수하면 된다’는 인식을 심어준다. 복수의 조합원들은 “이사 선거에서 돈이 오가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며 이는 명예보다 이권을 챙기려는 욕심이 빚은 오래된 관행”이라고 지적했다.
2023년 동시조합장선거 금품 입건자 1005명
전국 단위 통계를 보면 문제의 심각성이 더욱 뚜렷해진다. 국정감사에서 공개된 대검찰청 자료를 보면, 2023년 동시조합장선거에서 금품선거 관련 입건자가 1005명으로 전체 선거 사범의 70%를 차지했고, 구속된 33명 전원도 금품 사범이었다. 이 같은 불법 선거 탓에 당선 무효 등으로 재선거가 70회나 치러지며 총 55억 원의 비용이 발생했다.
사태가 위험 수위에 이르자 정부도 칼을 빼들었다. 국무조정실 주도로 금융위원회, 금융감독원이 참여하는 정부 합동 특별감사반이 농협 내 부정행위와 금품 선거 의혹, 회원조합의 비정상적 운영 등을 집중 감사하고 있다. 아울러 정부는 ‘농협개혁추진단’을 구성해 선거제도와 내부 통제, 지배구조 개선 등 제도 개편도 병행하고 있다.
결국 농협 임원 선거가 금품으로 얼룩지는 것은 감시와 견제라는 본래의 목적보다, 권력 행사와 이권 개입이라는 ‘단맛’이 크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임원의 권한을 분산하고 선출 과정을 투명하게 공개하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지 않는 한, 이러한 혼탁 선거는 계속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