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당진 남부권역(합덕읍·우강면) 일대에는 가족 단위 고려인 이주가 증가하며 이른바 ‘고려인 마을’이 형성되고 있다. 학교 현장의 다문화 학생 비율이 빠르게 늘어나는 등 노동·교육·복지·주거 전반에서 지역사회의 구조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그러나 고려인은 여전히 낯선 존재이거나 갈등의 대상으로 인식되기도 한다. 이에 고려인을 ‘문제’가 아닌 ‘이웃’이자 지역사회의 구성원으로 바라보기 위해 웹툰과 다큐멘터리 영상을 접목한 새로운 시도를 선보일 예정이며 다양한 삶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 곁의 고려인 이야기 총 6편을 기사로 연재할 예정이다. 기사 내용은 유튜브 채널 ‘당진방송’을 통해 영상으로도 볼 수 있다.
※ 이 기사는 2026년 충청남도 지역미디어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취재한 것입니다.
고려인 3세인 탠 라디 씨(49)는 키르기스스탄 수도 비슈케크 출신으로, 지난해 친척들이 거주하는 합덕읍으로 이주했다. 세 자녀를 둔 그는 자녀의 안전과 교육을 이유로 한국행을 선택했다.
라디 씨는 상하수도 공학 엔지니어 학위와 정수 및 폐수처리 석사 학위를 취득한 전문 인력이다. 이후 건물 및 주거단지의 상하수도 설계, 정수·폐수 처리 시설, 화재 경보 시스템 설계 등을 수행하며 경력을 쌓았다. 또한 회사를 설립해 건설 설계 도면을 제작하는 등 업계에서 입지를 넓히며 안정적인 삶을 이어왔다.
“자녀의 안전과 교육이 이주의 이유”
그럼에도 한국행을 결정한 배경은 자녀의 안전에 대한 불안 때문이다.
라디 씨는 “비슈케크에서는 아이들의 안전이 늘 걱정돼 위치추적기를 사용할 정도였다”며 “특히 밤에는 범죄에 대한 불안이 컸고, 교통사고나 폭력 사건을 뉴스에서 자주 접했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은 세계 7위 수준의 안전한 국가라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덧붙였다.
교육 환경 역시 중요한 이유였다. 그는 “비슈케크에서는 한 반에 60명 가까이 수업을 들었다”며 “현재 첫째 아들은 신촌초등학교 1학년에서 한 학급의 유일한 학생으로 수업을 받고 있다”고 전했다.
엔지니어에서 공장 근로자로그러나 한국에서의 삶은 이전과 크게 달랐다. 고향에서 설계 엔지니어로 활동하던 그는 한국에서는 자신의 전문성을 활용하는 일이 아닌 공장에 취업했다.
라디 씨는 “한국어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하루 만에 해고된 적도 있다”며 “이후 롤링머신 작업을 했지만 분진이 많은 환경 때문에 건강이 걱정돼 그만뒀다”고 말했다.
또 다른 공장에서는 로봇 용접 작업을 하며 생산 효율 개선 방안을 제안하기도 했지만, 동료와의 갈등 끝에 일을 그만두게 됐다. 그는 “회사에서는 일을 못한다고 했지만 실제 이유는 달랐다”고 설명했다.
현재 그는 공장 일을 그만두고 컴퓨터 프로그래밍과 영어, 한국어를 공부하며 새로운 일을 준비하고 있다.
“비자·의료·생활…정착의 벽”
그의 정착 과정에서의 어려움은 노동 환경 외에도 생활 전반에 걸쳐있다. 라디 씨는 “아내가 일을 하고 싶어하지만 가족동반(F-3) 비자로는 취업이 불가능하다”며 “영주권(F-5)을 얻기 위해서는 가족 합산 연소득이 5000만 원 이상이어야 하는데, 현재 구조에서는 조건을 충족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라디 씨에게는 의료비 부담도 큰 문제로 작용하고 있다. 그는 “딸이 결절종 진단을 받아 초음파와 MRI 검사, 수술이 필요했지만 검사 비용 부담이 커 결국 비슈케크로 돌아가 치료를 받았다”며 “약 100만 원의 경비가 들었지만 현지에서는 무료로 수술을 받을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난방을 절약해 사용했음에도 가스 요금 부담이 크게 느껴진다”며 생활비 부담을 언급했다.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하지만”
여러 어려움 속에서도 라디 씨는 한국 생활을 이어가고 있다.
그의 가족과 친척 상당수가 한국에 거주하고 있지만 어머니와 여동생은 여전히 비슈케크에 머물고 있다. 그는 고향에 대한 애정과 함께 조부모의 뿌리가 있는 한국에 대한 의미를 동시에 품고 있다.
라디 씨는 “많은 것을 포기해야 한다는 점은 알고 있었지만, 가족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이곳에서의 정착을 이어가고 싶다”며 “지금은 어렵지만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기반을 마련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