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아, 엄마 생전 토란꽃을 처음 보는구나. 엄마가 얼마나 보고프면 처음 농사짓는 엄마의 텃밭에 토란꽃이 되어 찾아왔더냐?
서른아홉 살 피 끓는 아들의 비보를 들은 이후 나의 시계는 멈춰버렸다. 화장터에 아들을 밀어 넣고 내 삶도 거기에 묻어버렸다. 아들과 함께 살았던 도시에서 당진으로 이사했다. 농사라면 질색하던 남편도 연장을 사고 땅에 비닐을 까는 등 적극적이었다. 고추, 토마토, 토란을 심었다. 잘 키울 자신은 없었지만 해보기로 마음먹었다. 고추가 한, 두 개 매달리고 토마토가 구슬만하게 열리니 고집을 피우던 토란도 얼굴을 내밀었다.
장마와 폭염이 길어지니 토란대는 어느 순간 내 키를 넘기더니 노란 꽃을 피우는 것이 아닌가. 지나가는 사람마다 토란꽃을 칭찬하며 어떻게 키우느냐고 질문한다. 대답은 못하지만 아마도 내 눈물을 받아먹고 환생한 아들이 아닐까.
두 손 꼭 잡고 매달려도 놓아 줄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남은 사람은 아픔을 치유하며 살아 내야 한다는 것을, 아들을 떠나보낸 후 알게 되었다.
<눈물 먹고 피운 토란꽃> 中

삶에서 소중한 이를 떠나보낸 뒤 마음속에 남는 아픔과 공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러나 누군가와 함께 슬픔을 나누고 자신을 돌보는 과정에서 사람은 다시 삶의 온기를 마주하게 된다. 약 7년 전 갑작스럽게 아들을 떠나보낸 이종숙 씨는 자연과 문학을 통해 긴 어둠 끝에서 다시 삶의 희망을 발견했다.
자식 잃고 깊은 절망
논산이 고향인 이종숙 씨는 인천에서 생활하며 삼남매를 키웠다. 그러나 약 7년 전, 당시 39세였던 둘째 아들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다.
그에게 자식을 잃은 충격은 너무도 컸다. 스스로를 죄인처럼 여기며 깊은 우울증에 빠졌다. 이종숙 씨는 “식사도 제대로 하지 못했고, 아들의 환청이 들리거나 환영이 보이기도 했다”며 “겨울에도 잠옷 차림으로 밖을 헤매곤 했다”고 당시를 떠올렸다. 이어 그런 일을 겪고 나면 자꾸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된다”며 “주변의 위로가 다르게 들렸다”고 말했다.
그의 고통은 가족들에게도 이어졌다. 남편과 자녀들은 밤새 곁을 지키며 이 씨를 돌봤고, 가족들 역시 일상생활조차 쉽지 않은 시간을 보내야 했다.
당진오며 안정 찾아가
그러던 중 여동생의 권유로 이 씨는 지난 2020년 가족과 함께 당진으로 내려왔다. 이종숙 씨는 “평소 흙을 만지고 식물을 가꾸는 걸 좋아한 성향을 잘 알던 동생이 ‘당진에 내려와 마음껏 심고 가꾸며 지내보라’고 권했다”고 말했다.
당진에 온 그는 집 마당에 좋아하던 식물들을 심고 가꾸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수면제에 의존해야 했던 생활도 조금씩 달라졌다. 하루에 두 시간이라도 스스로 잠들 수 있게 되는 등 서서히 마음의 안정을 찾아갔다.
“토란꽃으로 찾아온 내 아들”
특히 그는 평소 좋아하던 토란을 정성껏 키웠다. 인천에서 가져온 토란 씨앗을 텃밭에 심었는데, 어느 날 좀처럼 보기 힘든 토란꽃이 피었다. 토란꽃은 평생 농사를 지은 사람도 보기 어렵다고 할 만큼 드물게 피는 꽃이다. 이 씨는 “처음에는 꽃이 핀 줄도 몰랐는데 텃밭에서 진한 백합 향기가 나서 나가보니 토란꽃이 피어 있었다”며 “마치 먼저 떠난 아들이 그리운 엄마를 찾아온 것 같아 위로를 받았다”고 말했다.
마침 그 무렵, 그는 보건복지부와 중앙심리부검센터가 주최한 수필 공모전 소식을 접했다. ‘위로됐던 경험과 상처가 됐던 경험’을 주제로 유족의 상처를 보듬고 치유와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열린 공모전이었다.
이전까지 글을 써본 적 없던 그는 토란꽃을 보며 느낀 아들에 대한 그리움과 자신의 아픔을 담아 생애 첫 수필 <눈물 먹고 피운 토란꽃>을 썼고, 해당 작품으로 대상까지 수상했다.
문학 통해 다시 삶으로
‘그대에게 소중한 행운을 준다’는 꽃말을 가진 토란꽃처럼, 이종숙 씨의 삶에도 조금씩 다시 봄이 찾아왔다.그는 이후 두 번째 작품 <스칸디아모스>를 쓰며 생명의 소중함을 깊이 돌아보게 됐다. 이종숙 씨는 “그전까지는 자식을 지키지 못한 부모라는 생각에 자신을 죄인처럼 여겼다”며 “하지만 극심한 고통 속에서 극단적인 생각만 했던 과거의 내 모습이 결국 남은 가족들에게 또 다른 상처였다는 걸 깨달았다”고 말했다. 이어 “그동안 보이지 않던 가족들의 아픔도 보이기 시작했고, 내가 살아갈 이유도 생각하게 됐다”고 덧붙였다.
수필을 쓰며 자신의 삶을 다시 돌아본 그는 점차 자책감에서 벗어나 세상과 다시 연결되기 시작했다. 이후 그는 당진수필문학회 회원이 돼 글쓰기 공부와 문학기행 활동 등에 참여하고 있다. 특히 과거 충분히 배우지 못했던 학업에 대한 갈증을 문학을 통해 채워가고 있다.
“힘들다면 주변에 도움 청하길”
이종숙 씨는 자신을 치유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같은 아픔을 겪는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자 한다. 이종숙 씨는 당진시보건소 유족 자조모임 ‘모아’에 참여해 마음을 나누고 있으며, 동료지원활동가로도 활동하며 다른 이들의 회복을 돕고 있다.
또한 위기에 처한 노인과 청소년 등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는 마음으로 늦은 나이에 세한대학교 상담복지학과에 진학해 현재 3학년에 재학 중이다.
이종숙 씨는 “누군가 힘들고 지칠 때 기대어 쉴 수 있는 언덕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며 “혼자 힘들어하지 말고 면사무소나 보건소 같은 기관에 도움을 요청했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