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창 호황을 누리던 시기에 직장을 퇴직한 A씨가 요식업에 도전한다고 상상해 보자. 퇴직금으로 자금을 마련한 그는 유동 인구가 많은 상권에 인기 프랜차이즈 음식점을 열기로 결심한다. 큰 비용을 들여 매장을 임대하고, 유명 셰프와 종업원을 미리 영입했으며, 세련된 인테리어와 음악까지 준비했다. 주변 지인들에게 사업을 홍보해 후원도 약속받았다. 모든 것이 완벽해 보인다.
하지만 정작 A씨는 평생 직장생활만 해왔을 뿐, 요식업의 본질인 '음식'에 대해서는 문외한이다.
최근 사회 전반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스마트팜 열풍은 이와 닮아 있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앞다퉈 스마트팜 도입을 추진하며 막대한 투자와 첨단 시설을 경쟁적으로 내세운다. 기업은 이를 신기술 홍보와 사회공헌의 기회로 활용하고, 지역은 미래 농업의 상징으로 받아들인다. 어느새 스마트팜이라는 플랜트(Plant)는 농업 문제를 해결할 만능 해법처럼 인식되고 있다.
그러나 화려한 시설과 기술에 비해 정작 농업 자체에 대한 고민은 충분했는지 되묻게 된다. 무엇을 재배할 것인가, 누가 재배할 것인가, 언제 출하할 것인가, 어떤 시장을 목표로 할 것인가. 이러한 질문이 먼저 논의되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그러다 보니 품목별 특성과 농업인의 실제 요구를 반영한 맞춤형 설계 역시 부족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스마트팜의 첨단 기능 가운데 상당수는 농업 현장에서는 과잉규격(surplus specification)에 그칠 수도 있다. 신선한 우렁이를 넣은 구수한 된장찌개를 값비싼 유리잔에 담아내는 것처럼, 본질보다 외형이 앞서는 상황이 될 수 있다는 의미다.
행동경제학에서 말하는 '후광효과(Halo Effect)'는 하나의 장점이 대상 전체를 긍정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심리 현상이다. 오늘날 스마트팜에 대한 사회적 시선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시는 도시와 농촌이 공존하고 간척지 개발이 활발해 농지 가격이 높은 지역이다. 또한 논의 비중이 밭보다 훨씬 큰 농지 구조를 가지고 있어 원예시설 확대에도 여러 제약이 존재한다. 이러한 지역적 특성을 고려하면 기업의 기술력과 인프라를 활용한 스마트팜은 분명 원예농업 발전의 기회가 될 수 있다.
그러나 기술의 우수성과 편리성에만 집중한 나머지 농업의 본질을 놓치는 후광효과에 빠져서는 안 된다. 플랜트는 성공적으로 완공될 수 있지만, 농업적 내실이 없다면 결국 지역의 또 하나의 랜드마크에 머물 가능성이 크다.
더 큰 문제는 플랜트의 보급 속도에 비해 농업기술과 시장 대응 능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정부는 2029년까지 전국 온실의 35%를 스마트팜으로 전환하겠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현재 보급률이 약 16%인 점을 고려하면 불과 몇 년 안에 두 배 이상 확대해야 하는 셈이다.
하지만 현재 스마트팜은 토마토, 딸기, 파프리카 등 일부 과채류와 양액재배 기반 엽채류에 집중되어 있다. 품목이 제한되면 생산량이 늘어날수록 가격은 쉽게 하락한다. 결국 많은 농업인이 같은 작물에 몰리고, 높은 투자비를 감당해야 하는 구조 속에서 수익성은 오히려 낮아질 수 있다.
스마트팜은 초기 투자비와 유지비가 모두 큰 산업이다. 그런데 생산되는 농산물의 가격과 마진은 갈수록 줄어드는 구조라면 투자금을 회수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릴 수밖에 없다.
따라서 이제는 스마트팜을 얼마나 많이 짓느냐보다 무엇을 어떻게 채울 것인가에 정책의 초점을 맞춰야 한다.
다양한 품목이 안정적인 가격을 받을 수 있도록 유통체계를 개선하고, 스마트팜의 계획생산 기능을 활용해 품목과 출하 시기를 분산해야 한다. 또한 초기 설계 단계부터 품목별 재배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시설을 구축한다면 화려함은 다소 줄더라도 농업인의 소득은 오히려 높아질 수 있다.
가끔 스마트팜 홍보 행사에 참석하면 농업에 대한 고민보다 거대한 플랜트의 청사진만 강조되는 모습을 보게 된다. 그럴 때마다 농업의 가치가 자본과 행정의 홍보 수단으로만 소비되지 않기를 바란다.
스마트팜은 어디까지나 농업을 위한 도구다. 기술은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며, 시설은 농업을 담아내는 그릇일 뿐이다. 스마트팜의 미래는 더 많은 시설을 짓는 데 있지 않다. 농업인의 소득을 높이고, 안정적인 생산과 유통 체계를 만드는 데 있다. 외형보다 내용, 속도보다 구조를 먼저 고민할 때 비로소 스마트팜은 농업의 미래가 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