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봄에는 벚꽃이, 여름에는 수국이 장관을 이루며 사계절 각각 색다른 모습을 선사하는 아미미술관(관장 박기호)이 이번에는 당진이 품어낸 예술가들을 조명한다. 당진에서 태어났거나 유년기를 보낸 출향 작가들의 예술 세계를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특별전 <Here and There>가 열리고 있다.
올해로 4회째를 맞은 출향작가전은 1부와 2부로 나눠 열린다. 현재 진행중인 1부 전시에서는 전용환, 김종구, 이종호, 김경인 작가의 작품 세계를 조명하며 오는 10월 26일까지 이어진다. 2부 전시는 10월 29일부터 이강우, 인주리, 김영식, 오계숙 작가 등의 전시가 이뤄질 예정이다.
계절과 예술이 공존하는 미술관
한편 아미미술관은 폐교된 유동초등학교를 활용해 조성한 사립미술관으로 학교 건물의 원형을 최대한 보존한 생태미술관을 지향하고 있다. 계절마다 기획전과 상설전을 운영하며, 특별전시관에서는 출향작가전을, 상설전시관에서는 박기호 아미미술관 관장의 설치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교장 사택을 활용한 한옥에서는 전시 관련 영상이 상영되며, 여름철 만개한 수국정원과 넓은 운동장, 카페 지베르니는 관람객들에게 또 다른 볼거리와 휴식 공간을 제공한다.
푸른 수국이 절정을 이루는 여름부터 선선한 가을까지 이어지는 이번 전시는 각자의 예술세계를 구축한 출향 작가들의 작품을 감상하며 자연과 예술을 함께 즐길 수 있는 문화 나들이 장소로 제격이다.
◼ 위치: 당진시 순성면 남부로 753-4
◼ 관람시간: 오전 10시~오후 6시(입장 마감 오후 5시 30분)
◼ 입장료: 성인 7000원, 24개월~청소년·70세경로·장애인·군경 5000원

전용환 작가
생명의 순환 그리는 알루미늄 조각
우강면이 고향인 전용환 작가는 현재 천안을 기반으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전 작가는 조각에 대한 고정관념을 깨고 리본이 춤을 추거나 덩굴이 뻗어나가는 듯한 형태의 알루미늄 조각을 선보인다. 가볍고 구부러지기 쉬운 알루미늄의 성질을 활용해 드로잉을 연상시키는 자유로운 조형 세계를 구현한다. 공간을 가로지르는 선들은 리드미컬한 생명력을 만들어내고, 벽면에 드리운 그림자까지 작품의 일부가 되며 공간 전체를 하나의 예술로 확장시킨다.
30년 넘게 이어온 <Transforming Cycles> 연작은 과학잡지에서 우연히 접한 단백질 구조의 연결성과 순환 원리를 시각화한 작품이다. 작품 속 선과 화살표는 독립된 개체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뫼비우스의 띠처럼 시작과 끝이 맞물린 하나의 순환 구조를 이룬다. 개별적인 변화 역시 거대한 순환 속에서 이뤄진다는 의미를 담았으며, 단백질의 분자 배열과 사계절의 순환, 생성과 소멸 등 자연의 질서에 예술적 상상력을 더해 생명의 근원적인 원리를 시각화한다.

김종구 작가
쇳가루에서 발견한 새로운 조형언어
합덕읍이 고향인 김종구 작가는 현재 서울 부암동을 기반으로 활동하고 있다.
김 작가에게 쇠는 산업문명과 인간의 욕망을 상징하는 재료다. 초기에는 거대한 쇳덩어리를 갈아 인체 형상을 만드는 작업을 했지만 1997년 영국 야외조각전에 출품했던 작품이 도난당하는 일을 겪었다. 이후 사라진 작품 주변에 흩어진 쇳가루를 쓸어 모으는과정에서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했고 이를 본격적인 작업 재료로 삼게 됐다.
차갑고 무거운 쇳덩어리 대신 가볍고 섬세한 쇳가루를 이용해 바닥에 그림을 그리고 글씨를 쓰는 독창적인 조형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시간이 흐르며 쇳가루가 산화되면 마치 먹의 농담이 번지는 수묵화 같은 풍경을 만들어낸다.
특히 김 작가의 작품은 측면에서 바라볼 때 또 다른 풍경을 드러낸다. 정면에서는 절벽처럼 보이지만 수평의 시선으로 감상하면 입체적인 산맥이 펼쳐진다. 수직적이고 권위적인 사회를 넘어 자유롭고 평등하며 포용적인 세상을 향한 작가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종호 작가
대나무에 담아낸 한국의 빛
이종호 작가는 당진초와 당진중, 당진상고를 졸업하고 송악고에서 23년간 교편을 잡았으며, 현재 면천면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고향인 당진에서 평생 예술 활동을 이어온 그는 주변의 자연과 사람, 생태계를 소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을 탐구해 왔다.
이번 전시에서 선보인 <K-light> 연작은 불에 그을린 대나무에서 발견한 은은한 갈색을 우리 고유의 빛으로 새롭게 해석한 작품이다. 그 색과 결을 화폭에 옮겨 깊고 따뜻한 한국의 색감과 정서를 표현했다. 화면 속 대나무는 굵기와 길이, 각도의 미세한 변화를 통해 절제된 리듬과 생동감을 만들어낸다.
“그동안 관심을 가졌던 주제는 자연에 대한 주제가 대부분이었습니다. 꽃, 바위, 까치집, 풀을 이미지화시킨 작업, 나무껍질과 한지를 접목한 작업 등, 그러다가 현재는 대나무를 이용한 작업에 이르렀습니다. 토막 난 마른 대나무를 불에 구우면 거무스름하면서 묘한 갈색으로 변합니다.…그리고 그을린 대나무의 빛 K-light(동방의 빛)이라 칭했습니다.” (이종호 작가노트 中)

김경인 작가
소나무에서 시작된 탐구
김경인 작가는 인천에서 태어났지만 6·25전쟁 당시 할머니의 고향인 당진으로 내려와 당진초와 당진중을 졸업했다. 이후 2000년부터 2018년까지 순성면 성북리에 작업실을 두고 활동했으며 현재는 용인시 동백에서 작품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김 작가는 한국적 이미지와 시대정신에 대한 탐구를 바탕으로 독창적인 조형 세계를 구축해 왔다.
1970~1980년대에는 시대 현실을 비판하는 작업을 선보였으며, 1990년대부터는 한국인의 심성과 문화적 원형을 상징하는 소나무를 30여 년간 탐구해 왔다. 그는 소나무의 강인한 생명력이 일제강점기와 6·25전쟁, IMF 등 어려운 시기를 이겨낸 한국인의 정신과 닮아 있다고 바라봤다. 이번 전시에서는 소나무에서 시작된 탐구가 순수한 선의 조형으로 확장되는 과정을 보여준다. 특히 새롭게 선보이는 <그림 아닌 그림을 위한 Ballad> 연작은 소나무를 비롯한 모든 구상적 형상과 관념에서 벗어나 선과 색, 리듬이 만들어내는 순수한 아름다움에 집중한 작품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