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편집자주>
송악읍 부곡리, 시골길을 따라 산자락에 들어서면 고즈넉한 기운과 함께 붉은 꽃을 피운 배롱나무가 방문객을 맞이한다. 예부터 충절과 효를 상징하는 배롱나무 너머로는 한국 근대문학을 이끈 저항 시인이자 독립운동가였던 심훈 선생을 기리는 ‘심훈기념관’이 자리하고 있다. 2014년 9월 문을 연 이곳에는 심훈 선생의 활동을 보여주는 자료와 유물이 전시돼 있으며, 생활고와 시대의 억압 속에서도 펜을 놓지 않았던 그의 저항정신을 살펴볼 수 있다. 이 기사를 통해 심훈 선생의 삶과 의지를 돌아보고 심훈기념관을 둘러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
“그날이 오면 그날이 오면은
삼각산이 일어나 더덩실 춤이라도 추고
한강물이 뒤집혀 용솟음 칠 그날이,
이 목숨이 끊기기 전에 와 주기만 할 양이면
나는 밤하늘에 날으는 까마귀와 같이
종로의 인경을 머리로 들이받아 울리오리다.”
심훈-<그날이 오면 中>

심훈의 문학뿐 아니라 그의 삶과 정신을 기리는 이곳은 ‘문학관’ 대신 ‘기념관’이라는 이름을 달고 있다. 국가보훈부의 지원을 받아 조성된 현충시설로서 그의 항일·계몽 정신을 알리고 기존 심훈 문학관의 협소한 전시 공간을 보완하기 위해 건립됐다.
전시실 입구에 들어서면 위인전이나 교과서 속 인물이 아닌 시대의 아픔을 고민하던 청년 심훈의 삶을 마주하게 된다. 유리창 너머에 전시된 유물들은 각각의 사연과 해설을 더해 그의 삶을 보다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문학가 이전의 청년 심대섭
기념관에 입장하면 가장 먼저 전시된 야구 유니폼이 눈에 들어온다. 그 옆에는 심훈이 야구를 소재로 쓴 시 <야구>에 대한 설명이 자리하고 있다. 1929년 발표한 이 시에서 심훈은 투수가 던지는 공을 수류탄에, 타자가 날린 공을 어뢰에 빗대어 표현했다. 이는 야구 경기의 모습을 빌려 독립에 대한 의지를 표출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그 옆에는 심훈의 종손인 심천보 씨가 입었던 야구 유니폼이 전시돼 있다. 심훈 작고 80주년을 기념해 2016년 열린 야구 경기에서 시구할 당시 착용했던 옷으로 후손이 그의 업적을 되새겼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관람 동선을 따라 전시관에 들어가면 문학가 ‘심훈’이 아닌 ‘심대섭’이라는 이름의 청년을 만날 수 있다. 우측 벽면에는 경성고등보통학교 재학 당시 심훈의 사진과 학창 시절 일본 교사에게 반항한 이야기 등을 만날 수 있다. 친일 성향이 강했던 집안 분위기와 달리 심훈은 19살 때 학생 신분으로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체포돼 옥고를 치렀다.

성인이 된 이후에는 가족의 동의 없이 남모르게 중국으로 향했다. 전시관에는 그의 중국행을 ‘유학’으로 설명하고 있지만 실제 행적을 두고 다른 해석도 나타난다. 오융진 문화해설사는 “심훈이 중국에 가서 맨 처음 찾아간 사람이 이회영과 신채호를 비롯한 독립운동가였다”며 “실제로 중국 대학에 정식으로 이름이 등록된 기록이 없어 유학보다는 독립운동에 대한 의지를 보인 망명으로 해석된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3년간 중국에 머물면서 뚜렷한 활동이나 성과를 남기기보다는 여러 곳을 오간 기록만이 남아 있다. 이에 대해 오 해설사는 “친일 성향인 가족 탓일 수도 있고, 무장도 안 된 어린 청년이었기 때문에 독립운동에 직접 참여하기 어려웠을 것”이라며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며 방황하는 청년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고 말했다.

붉게 표시된 저항의 흔적
중국에서 돌아온 심훈은 동아일보와 조선일보 기자로 활동하고 경성방송국 아나운서로 일하며 언론을 통해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특히 경성방송국 아나운서 시절에는 일제 황태자와 관련된 원고를 읽다가 해고됐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오 해설사는 “당시 심훈이 대본에 적힌 ‘황태자 전하’를 읽기 싫어 다르게 읽었다가 해고됐다”며 “정확히 어떻게 읽었는지는 알 수 없지만 ‘황태나 전어’라고 읽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황태를 방망이로 두드려 펴야 하고, 전어는 뼈째 씹어 먹는다는 의미로 봤을 때 꽤 그럴듯하다”고 덧붙였다.
그의 저항은 문학에서도 이어졌다. 관람 동선을 따라 전시관 끝으로 향하면 일제가 심훈의 작품을 검열하기 위해 그은 붉은 줄을 볼 수 있다. 이는 오히려 심훈이 작품을 통해 무엇을 말하고자 했는지를 보여주는 흔적이자 저항의 상징이 됐다.

직접 설계한 10칸 신식 주택
심훈기념관 옆에는 심훈이 생전에 지냈던 필경사(筆耕舍)가 자리하고 있다. 기념관과 필경사 사이에는 상록수 문화관이 있으며, 그 주변에는 소설 <상록수>에 등장하는 전나무·향나무·사철나무·소나무가 심겨 있다.
필경사는 1934년에 심훈이 직접 설계해 지은 집으로 ‘필경(筆耕)’은 붓으로 밭을 간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앞면 5칸, 측면 2칸 총 10칸 규모의 주택으로 당시 생활개선운동의 영향을 받은 주택 양식이 반영돼 있다. 커다란 유리창을 비롯해 실내 부엌과 옷방, 화장실, 목욕실 등을 갖췄으며 특히 목욕실에는 무쇠솥 형태의 일본식 욕조가 설치돼 있어 당시 농촌 주택에서는 보기 드문 생활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심훈의 대표작 <상록수>가 집필됐다. 농촌 계몽과 민족의식을 담은 이 작품은 동아일보 창간 15주년 기념 장편소설 특별공모에 당선되며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됐다.
집 안에는 심훈이 생전에 구입한 대백과사전도 보존돼 있다. 총 27권으로 당시 월세가 7원 안팎이던 시절 약 150원을 들여 마련한 책이다. 상당한 금액을 들여 구입했지만 심훈은 이 책을 제대로 펼쳐보기도 전인 1936년 36세에 장티푸스로 세상을 떠났다. 짧은 생을 살았지만 그가 남긴 업적은 심훈 기념관과 필경사에 기록된 채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
심훈(심대섭)
출생: 1901년 9월 12일
사망: 1936년 9월 16일
수상: 2000년 건국훈장 애국장
대표작: <상록수>, <그날이 오면>, <직녀성>, <먼동이 틀 때>, <영원의 미소> 등
심훈기념관
주소: 충남 당진시 송악읍 부곡리 253
운영시간: 오전 9시~오후 5시(월요일 휴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