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재개장 후 10년이 지난 1913송정역시장
2016년 재개장 후 10년이 지난 1913송정역시장

<편집자주>

당진전통시장이 전면 철거와 재건축이라는 새로운 변화를 맞았다. 특히 이번 사업은 민간이 사업을 주도해 건축한 뒤 당진시에 기부채납하는 방식으로 추진되면서 기존 공공 중심의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과 차별화된다. 그러나 이러한 방식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에 당진의 사례를 바탕으로 이번 호에서는 ‘1913송정역시장’의 사례를 통해 어떻게 시장을 변화시켰는지를 살펴봤다.

※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 지원을 받아 취재·보도합니다.

<전통시장 현대화 사업과 지역상권 활성화 가능성>

1 당진전통시장 현대화사업 추진과 지역사회의 반응

2 광주 1913송정역시장 성공 사례와 지속가능성 분석

3 국내 사례를 바탕으로 본 당진전통시장 현대화사업 재점검

4 일본 교토 니시키시장 운영 방식과 지역상권 활성화 전략

5 일본 나가하마 쿠로카베스퀘어의 지역자원 활용과 상권 재생 사례

6 당진전통시장 활성화를 위한 토론회 및 정책 대안

1913년 광주송정역 개통과 함께 형성된 송정역전 매일시장은 한때 사라질 위기에 놓였지만, 2016년 ‘1913송정역시장’으로 다시 태어나며 전국적인 주목을 받았다. 오래된 시장의 역사와 공간을 보존하면서 청년상인과 새로운 콘텐츠를 더한 이른바 ‘지키기 위한 변화’가 시장을 살려낸 것이다.

그러나 시장을 되살리는 것과 그 활력을 지속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화려한 부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1913송정역시장은 어떤 모습으로 남아 있을까. 지난 9일 1913송정역시장을 찾았다.

재개장 전 시장의 모습
재개장 전 시장의 모습

쇠퇴해가던 매일시장

1913년 광주송정역 개통과 함께 형성된 송정역전 매일시장(현 1913송정역시장))은 1990년대 이후 상인 고령화와 대형마트 진입, 인근 도로 개설에 따른 상권 이동 등으로 급격히 쇠퇴했다. 오랜 역사를 지닌 시장이었지만 상권으로서의 기능은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김찬영 1913송정역시장 상인회장은 “인근 도로가 개설되면서 장사가 잘되던 가게들이 다른 곳으로 이전했고, 그러면서 시장 규모도 점차 작아졌다”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그러던 시장이 2015년부터 변화를 맞기 시작했다. 광산구와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 현대카드, 시장 상인들이 손을 잡고 시장 활성화에 나섰다. 이들은 ‘지키기 위한 변화’를 슬로건으로 내걸고 시장의 역사와 기존 공간을 최대한 보존하는 방식으로 새로운 모습을 갖췄다.

1970~198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점포의 외형을 최대한 유지하면서 내부와 환경을 개선했고, 각 점포 앞에는 건물의 건립연도를 표시한 ‘연도석’을 설치해 시장의 역사를 드러냈다. 상인들의 이야기와 점포의 역사를 담은 ‘스토리보드’와 점포명, 장사를 시작한 연도를 표시한 ‘히스토리 월’도 마련했다. 오래된 시장의 흔적을 지우기보다 시간의 흐름 자체를 시장의 콘텐츠로 활용한 것이다.

100년 역사의 가능성 발견

당시 전국적으로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이 추진되는 가운데 현대카드가 사회공헌사업의 일환으로 광주 지역에서 전통시장 활성화 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됐다. 당시 광주에서는 양동시장과 대인시장도 전통시장 활성화 사업에 참여를 신청했지만, 이미 현대화사업 등 여러 사업이 진행된 곳이라는 이유로 대상에서 제외됐다.

현대카드가 주목한 곳은 광산구의 송정역전 매일시장이었다. 이 시장은 100년이 넘는 역사와 호남선 KTX가 정차하는 광주송정역이라는 입지적 강점을 갖고 있었지만, 정작 시장으로서의 기능은 크게 위축된 상태였다.

현대카드는 오히려 이 점에서 가능성을 발견했다. 오래된 공간과 100년이라는 역사성을 살리면서 새로운 콘텐츠를 더한다면 시장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을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사업 대상이 결정된 이후 현대카드는 국내외 전통시장 활성화 사례를 살펴보며 시장을 찾는 사람들의 연령과 방문 목적, 오래된 시장의 역사성을 어떻게 콘텐츠화할 것인지 등을 분석했다.

‘청년상인’으로 시장에 활력 더해

이 과정에서 주목한 것이 청년상인이었다. 1913송정역시장은 처음부터 청년상인을 위한 공간으로 계획된 것은 아니었다. 전통시장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주체를 고민하던 과정에서 정부의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을 시장 활성화와 접목하면서 청년상인 유치가 본격화됐다.

2015년 3월 광주창조경제혁신센터와 현대카드, 시장상인회, 광산구가 업무협약을 맺고 기존 상인 점포 38곳과 청년상인 점포 17곳의 리모델링을 추진했다. 이후 청년상인을 공개 모집하고 설명회와 공개 인터뷰를 거쳐 입점자를 선정했다.

선발 과정에서는 독창적인 상품이나 레시피를 갖췄는지, 기존 상인과 업종이 겹치지 않는지 등을 주요하게 살폈다. 시장 규모가 약 200m로 짧고 광주송정역과 가까운 입지 특성을 고려해 포장 판매가 가능한 상품을 우선 선정했으며, 창업 이후에도 시장에 남아 활동할 책임감과 공동체 의식도 평가했다.

빈 점포가 많았던 만큼 넓은 점포를 나눠 청년상인에게 임대해 임대료 부담을 낮췄다. 또 유명 프랜차이즈 입점을 제한하고, 2016년에는 광산구와 건물주, 청년상인이 참여하는 상생협약을 체결해 임대기간을 보장하고 적정 수준의 임대료를 유지하도록 했다.

2016년 입점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신지혜 갱소년 대표는 100년 역사를 품은 시장의 스토리에 맞춰 일제강점기 시장에서 어르신들이 즐겨 먹던 간식인 양갱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창업했다. 신 대표는 “2016년 만삭의 몸으로 창업을 준비하던 중 ‘지키기 위한 변화’라는 리모델링 프로젝트 슬로건에 이끌려 입점했다”며 “단순히 아케이드를 설치하거나 현대식 건물로 바꾸는 방식이었다면 오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특히 당시 현대카드 TF팀의 브랜드 컨설팅이 매우 빠르고 정확했으며, 실질적인 결과물을 만들어내는 교육 체계를 잡아줘 초기 안착에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역시 2016년 입점해 지금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 노지현 부각가 대표는 잊혀져 가는 전통 먹거리인 김부각을 알리고자 창업에 나섰다. 노 대표는 “일회성 예산 투입이 아니라 현대카드가 시장의 고유한 매력과 디자인, 스토리를 접목한다는 점에 큰 매력을 느껴 프로젝트에 지원했다”고 말했다.

(사진 제공 광산구청)
(사진 제공 광산구청)

오래된 시장, ‘새로운 시장’으로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송정역전 매일시장은 2016년 4월 ‘1913송정역시장’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문을 열었다. 오래된 공간을 허물고 새롭게 만드는 대신 100년의 역사와 기존 상인의 경험을 남기고 그 위에 청년상인의 새로운 아이디어를 더하는 방식이었다. 과거의 흔적을 지우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시장에 새로운 시간을 덧입힌 셈이다.

변화는 재개장 직후부터 나타났다. 개장 이전 일평균 방문객이 200명을 넘지 않았던 시장에는 재개장 이후 일평균 2000명, 주말 최대 6000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다. 방문객들은 시장의 달라진 모습을 블로그와 SNS에 공유했고 언론의 관심도 이어졌다. 전국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의 벤치마킹 방문과 국무총리, 장관 등 주요 인사들의 방문도 이어졌다.

운영 점포 수도 증가했다. 개장 이전 36개였던 점포는 67개로 늘었고, 청년상인 유입으로 상인 평균 연령도 62세에서 47세로 낮아졌다.

시장 활성화 성과도 인정받았다. 2016년 청년상인 창업지원사업 평가에서 최우수 사업단으로 선정됐으며, 광주광역시 정부3.0 우수사례 경진대회 최우수상, 지방재정개혁 우수사례 행정자치부 장관상 등을 받았다. 2017년 전국우수시장박람회에서는 전통시장 활성화 우수기관으로 선정돼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상을 수상했다.

24세에 시장에 들어와 50년 넘게 시장을 지켜온 김영자 풍기인삼농협 대표는 “재개장 전에는 장사가 안돼 빈 가게가 천지였다”며 “현대카드의 프로젝트와 전폭적인 지원으로 손님이 폭발적으로 몰려들었다”고 말했다.

차별성 약화에 방문객도 줄어

화려한 부활 이후 10년이 지난 지금, 1913송정역시장은 다시 변화를 고민해야 하는 시점에 놓였다. 재개장 당시 전국적인 관심을 받으며 방문객이 몰렸지만, 현재는 과거와 같은 활기를 이어가지 못하고 있다. 약 200m에 불과한 시장 규모와 코로나19 이후 달라진 소비 행태 등이 시장의 지속적인 성장에 한계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 9일 찾은 1913송정역시장은 임대 현수막이 눈에 띄지는 않았지만, 영업하지 않는 매장이 늘어나면서 평일 골목은 한적한 모습이었다. 김찬영 상인회장은 “2016년 개장 이후 약 5년간 주말이면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로 전국에서 방문객이 몰렸지만, 현재는 방문객이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특히 코로나19를 거치면서 저녁 시간대 유동인구가 급격히 감소했고, 이후에도 이러한 소비 행태가 이어지면서 회복이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시장 안팎의 경쟁 환경도 달라졌다. 1913송정역시장이 하늘 조명과 빈티지 간판, 야시장 콘셉트 등으로 주목받은 이후 전국 곳곳의 전통시장에서 비슷한 형태의 공간 연출이 등장했다. 김 회장은 이를 시장의 차별성이 약화된 주요 원인으로 꼽았다. 김 회장은 “전국적으로 하늘 조명이나 레트로 간판을 똑같이 따라 하다 보니 고객 입장에서는 굳이 멀리 광주 송정역시장까지 찾아올 만한 차별점과 희소성이 사라졌다”며 “이런 점이 현재 상권이 침체된 큰 원인 중 하나”라고 말했다.

“점포 경쟁력 갖춰야 시장도 살려”

그러나 이러한 한적함 속에서도 특정 점포에는 사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특히 ‘또아식빵’ 앞에는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들었다. 최근 TV 프로그램에 소개된 이후 SNS에서 이른바 ‘빵지순례’ 명소로 알려지면서 빵을 사기 위해 시장을 찾는 방문객이 늘어난 것이다. 이들은 빵을 구매한 뒤 시장 주변 점포를 함께 이용하면서 시장에 온기를 더하고 있었다.

동시에 10년 전 시장에 입점했던 1세대 청년상인들은 단순히 매장을 운영하는 데 그치지 않고 자체 제조공장을 구축하고 B2B 납품과 전국 유통망을 개척하는 등 ‘기업가형 소상공인’으로 성장하며 시장의 또 다른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신지혜 갱소년 대표는 “초기 화제성에만 의존해 매장에서 소규모 자영업 형태로 머문 상인들은 생산량의 한계와 코로나19 팬데믹을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며 “자체 제조공장 보유, B2B 기업 납품, 온라인 판매, 전국 유통망 확장 등 사업을 확장한 상인들이 남아있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1913송정역시장’이라는 공간 자체를 보기 위해 방문했다면, 지금은 ‘또아식빵’처럼 특정 점포를 찾아왔다가 시장을 둘러보는 구조로 바뀌었다”며 “지자체의 일회성 홍보나 하드웨어 중심의 투자는 한계가 있다. 각 점포가 자생력을 갖춘 경쟁력 있는 점포로 성장해야 시장 전체의 지속가능성도 확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노지현 부각가 대표는 “전통시장 내 매장을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공간이 아니라 브랜드의 철학과 이야기를 경험하는 공간으로 만들어가고 있다”며 “오프라인 방문 경험이 온라인 재구매로 이어지는 구조를 구축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어느 시장에서나 볼 수 있는 아케이드나 전광판을 설치하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며 “지역만의 고유한 이야기를 발굴하고 체계적인 전문가를 투입해 상인들이 스스로 고민하고 배우면서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회복탄력성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