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움에는 나이가 없고, 나눔에는 끝이 없다. 80대에 색소폰을 배우기 시작한 정원영 옹은 10여년이 지난 현재에도 91세의 나이로 무대에 선다. 매주 지역 요양센터를 찾아 재능나눔 공연을 펼치는 그는 음악을 통해 자신의 즐거움을 이웃과 나누며 활기찬 노년을 보내고 있다.
배 한 척 고쳐 시작한 어선 사업
정원영 옹은 1937년 우강면에서 4남 4녀 중 일곱째로 태어났다. 우강초등학교를 졸업한 뒤 고향에서 지내던 그는 중학교 진학을 앞두고 서울로 눈을 돌렸다. 당시 주변에는 먼저 서울로 올라가 학교를 다니던 선배들이 있었고 선배들의 추천으로 친구들과 함께 상경을 결정했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시기 정원영 옹은 서울로 올라간 친구들과 함께 생활하며 중학교를 다녔다. 그는 “당시에 친구들과 빈집에 세 들어 살면서 전쟁 때문에 자주 거처를 옮겨 도망다녔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중학교를 졸업한 뒤에는 동양고등학교 기계과에 진학했고 학업을 마친 뒤에는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가족들과 함께 4000평이 넘는 땅에 농사를 지으며 생활했다.
그러던 중 정원영 옹은 이웃으로부터 새로운 제안을 받게 됐다. 당시 북한에서 목선을 가지고 피난을 내려온 이웃은 배를 손보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며 정원영 옹에게 투자를 부탁했다.
이에 그는 당시 쌀 200가마니를 투자했지만 사업이 뜻대로 풀리지 않았다. 결국 이웃이 투자금을 갚지 못하면서 수리 중이던 배를 정원영 옹에게 넘겼다.
완성되지 않은 배를 넘겨받은 그는 직접 배를 고쳐보기로 했다. 인천에서 배 엔진을 구해오고 자신의 돈을 들여 배를 손보면서 마침내 어선을 고치는 데 성공했다. 스물 여섯의 나이에 본격적으로 뱃일을 시작한 그는 어선을 타고 목포를 오가며 수산물 운반과 경매 중개 일을 했다. 사업이 자리를 잡으면서 배를 한 척 더 마련해 두 척을 운영했고, 이후에는 정미소를 인수해 농사와 함께 운영하기도 했다. 그렇게 10여 년 넘게 어선 사업으로 생계를 꾸린 그는 모종의 이유로 사업을 그만두고 자녀를 키우며 가정에 매진했다.

“무료함에 시작한 색소폰, 어느덧 11년째”
세월이 흘러 어느덧 80대가 된 정원영 옹은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당진시남부노인복지관을 다니며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것이다.
처음에는 아코디언을 선택해 3년간 배웠다. 하지만 생각보다 높은 난도에 어려움을 느꼈고, 당시 복지관에서 색소폰을 배우는 회원들이 많은 것을 보고 아코디언보다 비교적 쉽게 배울 수 있는 색소폰으로 악기를 바꿨다. 그는 “집에만 있으니 무료해서 시작한 취미활동이었다”며 “처음 색소폰을 배울 때는 호흡이 길게 나오지 않아 호흡법만 7개월 동안 연습했다”고 말했다.
정원영 옹은 실력이 쉽게 늘지 않아도 꾸준히 연습했고 조금씩 호흡이 길어지고 연주가 가능해지면서 색소폰에 재미를 붙였다. 이후에는 색소폰 학원을 다니기도 했으며 복지관 소속으로 공연 봉사에 참여하기도 했다.
현재는 색소폰 연주 봉사 동아리인 샬롬봉사단에서 최연장자 단원으로 활동하며 매주 지역 요양센터를 방문해 색소폰 공연을 하고 있다. 그는 “지역 요양센터로 재능나눔 공연을 갈 때마다 그곳의 어르신들이 우리의 음악을 즐기는 모습을 보면 나 또한 치유받는 기분을 느낀다”고 말했다.
그가 꾸준한 활동을 이어갈 수 있는 건강 비결로는 금주와 금연, 그리고 운동을 꼽았다. 매일 걷기 운동을 해왔으며 최근에는 걷기 대신 하루 한 번씩 가벼운 아령 운동을 하며 몸을 관리하고 있다.
80대에 시작한 색소폰은 이제 그의 일상에서 빼놓을 수 없는 취미가 됐다. 자신의 즐거움을 위해 시작한 일이 어느새 다른 이들에게 음악을 전하는 재능나눔으로 이어졌다. 정원영 옹은 앞으로도 건강이 허락하는 한 색소폰 연주와 봉사활동을 계속하고 싶다고 말했다.
“몸이 따라주는 데까지 계속 색소폰을 불고 싶습니다. 청년 여러분들도 가진 취미가 있다면, 혹은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젊어서 할 수 있을 때 마음껏 도전하고 즐기길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