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현진 동신대학교 교양교육센터 교수
천현진 동신대학교 교양교육센터 교수

<편집자 주> 충남지역언론연합이 지역사회의 주요 이슈를 깊이 있게 짚어보기 위해 ‘풀뿌리 미디어 시론’ 칼럼을 새롭게 연재합니다. 전문적인 시각을 바탕으로 풀뿌리 저널리즘의 가치를 세우고 주요 현안을 지역민의 시각으로 제시하고자 합니다. 독자 여러분의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일하지 않아도 먹고 살 수 있는 세상은 과연 낙원일까. 누군가에게는 해방된 미래겠지만, 다른 누군가에게는 자기 삶을 결정할 힘을 잃은 미래일 수 있다. 두 세계를 가르는 것은 통장에 찍히는 숫자만이 아니다. 그 부를 만들어내는 생산 기반을 누가 쥐고 있는지, 분배라는 게임 규칙을 누가 정하느냐의 문제다.

지난 2024년 비바테크 행사에서 일론 머스크는 AI가 가져올 유토피아를 장담했다. AI가 노동을 대체하면서 누구도 생계를 위해 일할 필요가 없는 시대, 기본소득을 넘어선 ‘보편적 고소득’(Universal High Income)의 시대가 온다는 것이다. 올해 정부도 AI 양극화에 대비한다며 ‘기본사회’를 내걸고 기본소득 카드를 꺼냈다. 그러나 기술이 풍요를 가져올 것이라는 전망과 모든 사람들이 그 풍요를 누리게 될 것이라는 약속 사이에 의문이 생긴다. 생산성은 기술의 문제지만, 그 성과의 귀속은 제도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시간을 잠시 2천 년 전 로마로 돌려보자. 공화정 말기인 기원전 58년, 로마는 시민들에게 곡물을 할인 판매하던 ‘쿠라 안노나이’(Cura Annonae) 제도를 무상 배급으로 전환했다. 밭을 갈던 농민들은 공짜 빵을 받으러 도시로 몰려들었다. 배급 수혜자만 32만 명에 달했다. 식량 배급은 제국 유지와 정권의 안녕을 위한 중요한 정치적 과제였다.

이를 두고 ‘공짜 빵 나눠주다 나라가 망했다’는 식의 시혜적 복지 문제로 프레임을 씌우곤 하지만, 겹겹이 쌓인 역사의 맥락을 일차원적으로 단순화한 오류다. 고대의 곡물 배급을 현대의 기본소득과 단순 비교하는 것도 무리다. 로마의 역사가 지금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따로 있다. 생계를 보장받는 일과 삶의 주도권을 갖는 일은 과연 같은가.

빵을 받는 사람에게는 절실하다. 하지만 빵을 받는다고 해서 밀밭의 주인이 되거나, 다음 수확을 어떻게 나눌지 결정할 권한까지 생기지 않는다. 배급은 당장의 허기는 해결할지언정, 생산 기반의 소유 구조를 바꾸지는 못한다. AI 시대의 기본소득 논의가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갈 필요가 있다.

AI 시대의 ‘밭’은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거대언어모델(LLM)과 플랫폼으로 확장되고 있다. 최근 거론된 국내 AI 인프라 확대 계획에는 엔비디아의 GPU 26만 개 이상이 포함됐다. 정부 주도 인프라에 약 5만 개, 삼성·SK·현대차·네이버 등 기업에 나머지 물량이 투입된다. 기업의 투자와 기술 혁신의 가치를 부정할 생각은 없다. 다만 대규모 AI 인프라를 확보했다는 사실만으로 국민 모두의 경제적 지위가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국가의 AI 경쟁력과 시민의 삶 사이에는 ‘사람을 향한 정책’이 놓여야 하는 이유다.

기본소득을 비롯한 소득 보장은 분명 하나의 정책이 될 수 있다. 최소 생계가 보장돼야 부당한 노동 조건을 거절하고, 다시 배우고, 새로운 일을 시도할 여지가 생긴다. 따라서 소득 지원을 무조건 의존을 키우는 시혜로 몰아붙이는 것은 온당치 않다. 문제는 소득 보장을 AI 전환의 완성된 해답처럼 제시하는 데 있다. 일자리를 잃은 사람에게 얼마의 지원금을 지급할지만 묻고, AI가 창출한 부와 권력이 어디에 쌓이는지 묻지 않는다면 부의 불평등은 그대로 대물림될 것이다.

이제 논의의 중심에 생산 기반에 대한 접근과 성과 공유를 놓아야 한다. 공공 AI 인프라를 대학과 중소기업, 지역의 창작자도 실질적으로 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공적 자금이 투입된 사업에는 투자 성격에 맞는 성과 환원 장치를 마련되어야 함은 물론이다. 노동자가 AI 도입 과정에 참여하고, 생산성 향상의 몫을 보상과 노동시간 단축으로 나눌 수 있는 협의 구조도 중요하다. 시민을 기술 변화의 사후 보상 대상으로만 남겨둬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모든 일자리가 사라질지 아직 알 수 없다. 그렇다고 AI가 그리는 미래가 오기만을 기다리며 분배의 설계를 미뤄둘 이유는 없다. 기술 기업의 낙관은 사회적 계약을 대신할 수 없고, 정치인의 선심성 공약이 시민의 권한을 대신할 수도 없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풍요가 올 것’이라는 예언보다 그 풍요의 결실에 정당하게 참여할 시민의 권리를 미리 제도화하는 일이다.

빵은 오늘을 버티게 한다. 밭에 대한 권리는 내일을 결정하게 한다. 좋은 사회라면 시민들에게 둘 다 보장할 길을 찾아야 한다. AI 시대 우리가 물어야 할 것은 ‘얼마를 나눠줄 것인가’에 그쳐서는 안 된다. ‘무엇을 함께 소유하고, 무엇을 함께 결정할 것인가’ 그 질문이 빠진 풍요는 그들만의 낙원일 수 있어도, 우리 모두의 미래는 되기 어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