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진화력발전소 전경
당진화력발전소 전경

발전공기업 5사를 하나로 합치는 통합발전 본사를 놓고 전국 지방자치단체의 유치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그러나 국내 최대 석탄화력 발전단지를 품은 당진의 목소리는 상대적으로 작다. 이웃한 태안을 비롯해 경남 진주 등이 범시민 조직을 꾸리고 서명운동과 결의대회를 이어가는 동안, 당진시는 충남도와 보조를 맞추며 물밑 설명에 힘을 쏟고 있는 상황이다. 지역 정치권과 시민사회에서는 당진시가 전면에 나서 목소리를 키워야 한다는 요구가 나온다.

직원 1800명 본사 놓고 전국 유치전 치열

기후에너지환경부는 지난달 4일 발전공기업 통합 방안을 공개했다. 한국남동·중부·서부·남부·동서발전 5개사를 하나로 묶어 2027년 10월 1일 통합 법인을 출범시키는 게 목표다. 통합 본사는 기존 5개사 사옥을 쓰지 않고 새로 짓는다. 현재 5개사 본사 인력 2400여 명 가운데 1800명을 통합 본사에 두고, 나머지 600명은 전국 3~4곳의 지역재생에너지본부에 나눠 배치한다.

본사 한 곳에 직원 1800명이 모이는 만큼 지자체들은 사활을 걸었다. 본사 직원과 가족들을 포함하면 그 규모는 적지 않다.

이러한 이유에서 태안군은 지난 7월 31일 행정과 의회, 사회단체, 노동계 등 단체 60여 곳이 참여한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태안유치 범군민추진위원회’가 출범했다. 태안군의회도 지난 8월 3일 통합본사 태안 유치 촉구 건의안을 채택했다. 보령에서는 민간 추진위원회가 오일장과 지역 축제를 찾아다니며 서명을 받고 있다.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다. 경남 진주에서는 지난 8월 26일 시민 1000여 명이 결의대회를 열었다. 경남도는 한국남동발전 청사를 그대로 쓰면 신규 청사 건립비 3000억 원 이상을 아낄 수 있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울산시의회 산업건설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울산 유치를 촉구했고, 전남광주통합특별시와 나주시는 공동 전담팀을 꾸렸다. 전북 부안군도 새만금 재생에너지 기반을 앞세워 뛰어들었다.

국회에서는 본사 소재지를 법에 못 박는 입법 경쟁이 붙었다. 지난 8월 안호영 의원(더불어민주당)은 전북을, 강민국 의원(국민의힘)은 진주혁신도시를 본사로 명시한 ‘한국발전공사법안’을 냈다. 어기구 의원(더불어민주당·당진)은 지난달 21일 당진을, 성일종 의원(국민의힘·서산태안)은 지난달 30일 태안을 본사로 정한 같은 이름의 법안을 각각 대표 발의했다.

당진시 “충남도와 협력하며 당위성 설명”

당진시가 손을 놓고 있는 건 아니다. 시는 당진 유치의 당위성을 세 갈래로 정리했다. 먼저 당진화력발전소와 GS EPS 등 대규모 발전소가 수도권과 국가산업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에너지 전환의 핵심 거점이라는 점이다. 석탄발전 설비가 줄어드는 자리에 태양광과 풍력, 수소 같은 새로운 에너지 기반이 들어서는 현장이라는 점도 들었다.

둘째는 정의로운 전환이다. 당진은 국가 전력 공급을 위해 오랫동안 환경 부담을 떠안았지만, 발전소는 당진에 있고 본사는 울산에 있는 역차별 구조가 이어져 왔다는 게 시의 설명이다. 실제 당진발전본부는 석탄화력 10기, 설비용량 6040MW로 국내 최대 규모이며 한국동서발전 전체 발전설비의 60% 이상을 차지한다. 석탄화력만 놓고 봐도 충남에 있는 28기 가운데 10기가 당진에 몰려 있다. 석탄발전이 폐지되면 그 경제적 충격도 당진이 직접 받는다. 시는 또 당진이 정의로운 전환에 앞서 대비하고 있는 지역이라는 점도 내세웠다.

셋째는 정주·근무 여건이다. 시는 수도권과 가깝고 인구 18만 명 규모의 산업도시여서 발전사 종사자가 살고 일하기에 알맞다고 강조했다. 호수공원 조성과 종합병원 신설, 교통망 확충 등 생활 기반도 계속 늘리고 있다.

시는 다른 시·군과 차별화할 수 있는 강점으로 수도권 인접성과 정주 여건 두 가지를 꼽았다. 통합본사에서 일할 직원 1800명과 그 가족이 실제로 옮겨와 살 곳을 따질 때, 수도권과 가깝고 생활 기반을 갖춘 산업도시라는 점이 경쟁 지역보다 낫다는 판단이다.

유치 전략의 기본 방향은 충남도와 협력해 통합본사를 충남 안으로 가져오면서 당진 유치의 당위성을 알리는 것이다. 투자유치과가 주무부서로서 대응하고 있으며, 그동안 충남도와 발전사, 노동조합을 찾아가 수도권 인접성과 정주 여건을 중심으로 당진의 강점을 설명했다. 앞으로 발전사 노조 방문을 이어가고 기후에너지환경부 등 관련 부처와 국회를 찾아 당진 유치를 건의할 계획이다.

시 관계자는 “본사 입지는 국가가 결정하는 만큼 시가 공략할 수 있는 건 결국 그곳에서 일할 근로자들”이라며 “수도권과 바로 붙어 있다는 게 당진의 가장 큰 강점”이라고 말했다.

“당진시 더 적극 나서야”

지역 정치권은 당진시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문한다. 홍기후 충남도의원은 “충남도는 우선 충남 유치에 무게를 두고 조심스러워하지만, 시·군까지 그렇게 있으면 안 된다”며 “시·군은 적극적으로 행동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발전사 종사자들도 수도권과 가깝고 기반시설을 어느 정도 갖춘 당진을 선호한다”며 “종사자 선호만 놓고 보면 전남 나주보다도 훨씬 낫다”고 말했다. 그는 이번 통합본사 이전이 수도권 공공기관을 지방으로 옮기는 2차 공공기관 이전과 달리 지방에서 지방으로 옮기는 성격이어서, 기존 발전사가 자리한 지역을 중심으로 논의될 가능성이 크다고 봤다.

홍 의원은 유치 활동과 함께 ‘맞이할 준비’를 강조했다. 그는 “본사 입지가 확정되면 정부는 임시 청사부터 알아볼 것”이라며 “캠페인도 좋지만 직원들이 와서 일할 공간까지 준비해 놓고 당진은 준비가 돼 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아무것도 하지 않다가 빼앗기는 것보다, 과감하게 치고 나가야 한다”고 덧붙였다.

당진시의회도 지난 9월 1일 제130회 제1차 정례회 제1차 본회의에서 박명우 의원이 대표 발의한 ‘발전공기업 5사 통합 추진에 따른 통합 본사 당진 유치 촉구 건의안’을 채택하고 대통령실과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련 중앙부처, 국회에 전달했다. 당진시의회는 정부가 발전공기업 통폐합을 추진하는 데 맞춰 목소리를 낸 것이다.

충남도가 충남연구원 연구 중간보고에서 내놓은 논리도 당진의 조건과 맞닿아 있다. 연구진은 충남 서해안의 전력 기반시설과 석탄화력 자산을 재생에너지 전환에 활용할 수 있고, 호남권의 추가 발전·송전 부담을 줄이면서 충청권과 수도권의 첨단산업에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할 수 있다는 점을 근거로 들었다. 수도권과 맞닿은 대규모 발전 거점이라는 당진의 특성과 겹치는 대목이다.

김기재 당진시장은 지난 6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당진만큼 명분 있는 곳이 어디 있겠냐”며 유치 의지를 내비쳤다. 다만 충남 안에서도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만큼 정부가 광역 단위 입지 기준부터 분명히 내놔야 한다는 입장을 함께 밝혔다.

반면 충남도는 시·군 간 과열 경쟁을 경계하는 분위기다. 박수현 충남지사는 지난 8일 당진을 찾아 시·군이 각자의 강점으로 공정하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밝혔다. 도는 홍종완 행정부지사를 단장으로 한 유치 전담팀을 꾸렸고, 충남연구원에 유치 전략 연구를 맡겼다. 지난 21일에는 발전 3사 노동조합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었다.

공사냐 자회사냐도 변수

어기구 의원은 지난 6일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에게 통합본사 당진 유치 건의문을 전달했다. 다음 달 10일에는 충남도와 함께 ‘발전공기업 통합본사 충남 유치 정책토론회’를 연다.

어 의원실은 정부가 공모 없이 본사 위치를 정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김성환 장관도 지난달 본사 소재지에 대해 공모할 성격의 일은 아니라고 말했다. 정부가 입지 기준을 공개하기 전에 지역의 논리와 준비 상태를 미리 보여줘야 하는 이유다.

통합 법인의 형태도 변수다. 어 의원실 설명을 종합하면 기후에너지환경부 안에서는 통합발전사를 독립된 공사가 아닌 한국전력 자회사 형태로 만들려 한다는 얘기가 나온다. 이 때문에 발전사 노조들은 국회에 발의된 한국발전공사법이 통과되기를 바라고 있다. 법안이 어떤 형태로 처리되느냐에 따라 본사 입지 논의의 무게도 달라질 수 있다.

당진은 수십 년 동안 석탄화력발전소와 고압 송전탑 500기 이상을 떠안고 수도권에 전기를 보내왔다. 통합본사 입지가 결정되는 지금이 그 부담에 걸맞은 몫을 요구할 때다. 도와 보조를 맞추는 것과 별개로, 당진시가 시민과 함께 더 분명하게 목소리를 내야 하는 까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