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년 전 탈북해 한국에 온 서진명 씨 에게 배움은 단순히 학력을 얻는 일이 아니다. 두 아이의 엄마로서 포기하지 않고 도전하는 삶을 보여주는 과정이다. 아픈 과거를 딛고 한국 사회에 적응 한 그는 오전에는 방문요양사로 일하고 오후에는 해나루시민학교에서 공부한다. 부끄럽지 않은 엄마가 되기 위해 시 작했던 공부가 그에게 사회복지사라는 새로운 목표를 만들었다.
“뼛속까지 시린 압록강 건너 탈북”
북한 양강도 혜산시에서 태어난 서 진명 씨는 어린 시절 아버지의 직책과 영향력 덕분에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그러나 그가 중학교에 들어가면 서부터 아버지를 둘러싼 상황이 달라 지기 시작했다. 급기야 주변 지인들에 게 조심하란 말을 듣던 그는, 아버지의 강한 권유로 16살의 나이에 혼자 탈북 하게 됐다.
그는 “당시 봄이었음에도 압록강의 물은 뼛속까지 시렸다”며 “차디찬 강물 이 가슴까지 차올랐지만 어린 나이에 그저 살아야 한다는 생각만으로 앞으로 나아갔다”고 말했다. 그가 중국에 도착한 뒤에야 보위부(현재 북한 국가정 보국)가 아버지를 찾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당시 아버지는 폐결핵을 앓고 계셨고 어린 서진명 씨를 지키기 위해 먼저 탈북시킨 것이었다. 뒤늦게 사 실을 알게된 그는 “아버지에게 너무 죄송했다”며 “아버지가 보위부에 잡히셨 단 소식을 듣고 큰 슬픔에 잠겼다”고 말했다.
중국에서 만난 은인
이후 서진명 씨는 중국에서 8년간 신분을 숨기며 지냈다. 같은 탈북민들이 중국 공안에 잡혀가는 모습을 눈앞에 서 목격하기도 했으며, 그가 끌려갈 위 기에 처하자 중국인 양부모가 친척까 지 동원해 신원을 보호해준 적도 있다. 이후 양부모는 중국에 더 머무는 것은 위험하다며 서 씨에게 한국행을 권했 다. 그는 “브로커 비용과 교통편을 전부 마련해준 덕분에 한국에 무사히 올 수 있었다”며 “생명의 은인과도 같은 분들” 이라 말했다.
인천공항에 처음 도착한 서진명 씨 가 가장 놀란 것은 한국의 도로였다. 그 는 “인천공항에서 높은 건물과 바다, 넓 은 도로를 한눈에 볼 수 있어 놀랐다” 며 “열악한 북한의 도로와 비교하니 한 국의 경제력을 실감했다”고 말했다. 하 나원에서 3개월간 사회적응교육을 받 은 뒤 자동차 부품공장에 취업해 한국 생활을 이어갔다. 그는 “낯선 환경에서 살아가는 게 쉽지는 않았지만 내 힘으 로 돈을 벌고 미래를 만들어갈 수 있다 는 사실에 감사했다”고 말했다. 그의 밝 고 긍정적인 태도를 눈여겨본 상사의 소개로 지금의 남편을 만났고, 결혼 뒤 직업군인인 남편을 따라 2년 전 당진에 정착했다.
고향 사람 통해 들은 가족소식
그가 한국에 지내며 가장 힘들었던 것은 사회 적응보다 고향에 두고 온 인 연이었다. 한국에 막 정착했을 무렵 우 연히 같은 혜산시 출신 탈북민을 이웃 으로 만났고 그를 통해 고향 소식을 전해 들었다. 10살 무렵 부모님의 이혼으 로 아버지와 단둘이 지냈던 서진명 씨 는 아버지가 세상을 떠난 뒤 어머니와 오빠가 자신을 애타게 찾고 있다는 이 야기를 들었다. 오빠와의 좋은 추억이 떠올라 그리운 마음이 커진 그는 이웃 을 통해 가족과 전화로 이야기를 나눴 다. 그는 “처음에는 서로 근황을 주고받 았지만 이야기가 길어지면서 점점 내게 돈을 요구했다”며 “나도 사회생활을 시 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형편이 어려웠 지만 고민하지 않고 돈을 보냈다”고 말 했다. 그러나 가족들의 요구는 당연하 다는 듯 계속됐고 연락은 점점 그에게 공포로 다가왔다. 그는 “유일한 가족이 라는 생각에 인연을 끊기 어려웠다”며 “1년 동안 마음고생을 하다 남편의 도 움으로 연락을 끊을 수 있었다”고 전했다.
학교서 찾은 배움의 즐거움
자녀를 키우며 가정의 살림을 도맡 던 서진명 씨는 가족의 경제 사정이 어 려워지자 일자리를 알아봤다. 자격증 취득을 위해 당진요양보호사교육원을 다녔고 그곳에서 ‘해나루시민학교’를 알게 됐다. 그는 “나중에 아이들이 ‘엄 마는 왜 중학교 중퇴밖에 안 했냐’고 물 었을 때 내가 뭐라고 답해야 할지 모 르겠더라”며 “아이들에게 부끄럽지 않 은 엄마가 되기 위해 공부하고 싶었다” 고 말했다. 이어 “해나루시민학교가 어 머니뻘의 어르신들이 공부하시는 곳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망설임은 사치 였다”고 설명했다. 1년째 해나루시민학 교를 다니고 있는 서진명 씨는 “함께 공 부하는 어르신들이 언니같고 엄마같아 즐겁다”고 전했다.
처음에는 영어 공부가 목적이었다. 한국에서 생활하면서 외래어 사용에 어려움을 느꼈기 때문이다. 수업을 들 으며 한국사에 새로운 흥미를 느낀 그 는 “북한에서 배운 역사와 너무 달라서 한국사를 배우면 배울수록 놀라웠다” 고 말했다.
서진명 씨의 다음 목표는 대학교 사 회복지학과에 진학하는 것이다. 그는 “현재 방문요양보호사로 근무하며 자 신의 행동으로 돌봄 대상자들이 변화 하는 것을 보고 책임감과 보람을 느낀 다”며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해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따듯한 손길 을 내밀고 싶다”고 말했다.
어려움 속에서도 잃지 않은 자신감
삶의 여러 변화 속에서도 그가 긍정 의 에너지를 지켜올 수 있던 비결은 ‘단단한 내면’이었다.
그는 “고향에서는 권력이 없으면 배 우고 싶어도 배울 수 없었지만 이곳에서는 스스로 노력하면 얼마든지 배울 수 있다”며 “훗날 아이들에게 ‘엄마는 쉽지 않은 삶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았 다’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전했다.
“한국 사회에 적응하며 다양한 사람 을 만났고 상처도 많이 받았습니다. 경 제적인 위기로 주저앉을 뻔한 적도 있 었지만 그 과정에서 제 자신을 잃지 않 으려 노력했어요. 자신감을 갖고 도전 한다면 이루지 못할 일은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