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미래로 내딛는 걸음, 두려움만큼 큰 설렘
일본공대 유학 장학생 선발시험에 합격해 유학준비 중
“열심히 해볼 생각으로 일본어 공부 중이예요”
호서고 김국천
삶은 순간순간의 선택들로 이루어진다. 그 중에는 인생의 방향을 가르는 중대한 선택들도 있다. 그리 많지는 않지만 지나보면 우리는 이미 몇차례 갈림길들을 지나왔다. 때로는 그 의미도 모른 채 스쳐간 순간들. 그 긴장된 순간에 서서 인생의 키를 다시 잡고 그 길에 온몸을 던질 수 있기를... 두려움과 설렘, 절망과 감미로움이 섞인 충만한 순간을...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회한에 젖어 안타깝게 그리워하는가...
열 여덟 살 국천이는 지금, 바로 그 인생의 갈림길에서 막 한 걸음을 떼어놓으려는 순간에 서있다. 어쩌면 전에도 갈림길에 선 적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적어도 피부로 느낄 만큼 두렵거나 설레임으로 온몸이 이처럼 떨렸던 적은 없는 것 같다.
국천이는 호서고 3학년에 재학 중이던 2000년 10월, 일본이 공과대학에 유학할 한국장학생을 선발하기 위해 치른 시험에 당당히 합격했다. 충남에서는 3명, 당진에서는 국천이 혼자였다. 이 시험의 조건대로라면 국천이는 앞으로 5년간 학비 전액 무료로 세계 최고 수준을 자랑하는 일본의 공과대학에서 공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일찌감치 유학시험에 합격한 국천이는 친구들이 수능시험을 치르고 대학입학원서를 쓰느라고 진땀을 빼는 동안 서울에 올라가 유학준비를 하고 있었다.
서기 2000년, 12월도 막바지에 이른 어느 햇살 좋은 날 국천이는 바쁜 짬을 내어 잠시 당진에 내려왔다. 서울에서 일본어 강좌 두개를 신청하고 난 뒤였다. 서울에 사는 이모 한 분 댁에서 임시로 기거한다고 했다.
국천이를 만난 것은 읍내의 한 커피숍에서였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에 평범한 인상의 아이였다. 착실하고 겸손한 맛이 나는, 다소 수줍은 인상이기도 했다. 게다가 국천이는 아주 예쁜 누나 선영이와 동행이었다. 국천이보다 네 살이 위인 둘째 누나 선영이는 마치 엄마라도 되는 것처럼 자상하고 조용하게 옆에 앉아 국천이를 거들었다.
국천이 말로 국천이 자신은 성적이 우수하기는 했지만 결코 뛰어나지는 않았다. 다만 수학과 과학 과목이 그 중 우수했다. 어려서부터도 과학실험이 너무 재미있었다. 학창생활 내내 국천이는 지루하게 앉아서 몇 번이나 반복해서 암기해야 하는 사회과목 대신 원리를 탐구하고 응용하는 수학과 과학 쪽에 관심이 갔다. 자연히 재능도 그 방면으로 발달이 된 것이다. 거기다 2학년 때 수학을 가르쳤던 서형석 선생님은 수학에 대한 국천이의 관심을 더 부채질했다. ‘터프가이’였던 서 선생님은 수업 시작벨이 울려 교실에 들어서기가 무섭게 교탁 위에 교과서를 탁 접어놓고는 하나의 공식에 대해서 칠판 가득 적어놓고 그 원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차근차근 설명해 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선생님의 수업진도는 결코 뒤떨어지는 법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빨랐다고 국천이는 기억한다. 국천이는 이 터프하면서도 논리적이고 빈틈없는 선생님을 통해 수학에 매력을 한층 더 갖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국천이 자신의 관심사와 재능 뿐만이 아니라 학교선생님들의 추천과 격려가 국천이에게는 어쩌면 인생의 판도를 바꿀 이번 유학시험에 결정적인 계기가 됐다. 국천이는 그 고마움을 아는 때문인지 담임선생님의 함자 지. 영. 복을 몇 번이고 되풀이한다.
하지만 일본유학시험에 합격한 국천이에게 기쁨과 희망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막상 시험에는 붙었지만 과연 이국땅에서 새 문화와 새로운 사람들, 새로운 환경에 적응해 나가면서 무리없이 공부할 수 있을지 불안감이 더 컸어요. 하지만 선생님들과 주위 어른들, 그리고 작년에 당진에서 먼저 유학가 있던 선배가 와서 용기를 주니까 한 번 해봐야겠다는 각오가 생겼어요.”
국천이는 마지막으로 일본행을 결정할 때까지 꽤나 고심했던 듯 진심으로 고뇌어린 표정을 지었다. 게다가 누나는 딸셋에 막내로 자란 동생 국천이가 자랑스러우면서도 못내 염려가 된다.
“무엇보다도 아직 어린 나이이기 때문에 많은 유혹이 있을 거라고 봐요. 더구나 낯선 땅이니까 걱정도 더 되죠. 멀리서나마 항상 국천이를 위해 기도할 거예요.”
그런데 국천이에게는 아무한테나 쉽게 말할 수 없는 또다른 고민이 한가지 있었다.
국천이 아버지는 당진읍 용연리에 있는 용연장로교회에서 목회활동을 하시는 김경석(52세)목사님이시다. 국천이네 가족은 할머니(장내임여사), 어머니(한순희여사), 선녀, 선영, 선미 딸 셋과 아들 국천이 이렇게 일곱이다. 그러고 보니 국천이 이름이 좀 특이하다는 생각이 든다. 뒤집어 보면 “천국”이 아닌가. 이 이름에도, 그리고 국천이가 말할 수 없는 그 사연에도 그만한 이유가 있다.
국천이는 목사님 부부가 기도 끝에 낳은 아들이었다. 하나님께 바치겠다는 약속과 함께.
국천이가 고민했던 것은 바로 이 약속 때문이었다. 하지만 국천이와 마찬가지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던 아버지 어머니는 국천이에게 강요하지 않았다. 언젠가 스스로 자신의 길을 깨달을 때 그때가 바로 그 약속을 지키는 때라고 아버지는 기다리기로 하셨다고 한다. 그때가 언제건… 스스로 깨달을 때…
국천이는 자신을 무덤덤하고 마음에 쌓아두지 않는 낙천적인 성격이라고 말한다. 덜 섬세하기는 하지만 잘 적응하는 장점이 있다고. 아마도 지금 국천이는 자신의 진로와 함께 지금까지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을 깊이 탐색하고 있을 때일 것이다. 자신을 아는 것은 자신의 존재에 덜 당황하며 더 당당하게 살 수 있는 비결이라는 생각이 든다.
어쩌면 인생의 첫 갈림길, 그 앞에 씩씩하게 한발을 내딛고 있는 국천이에게 박수를, 이제야말로 자신만의 인생을 경험하게 될 이 열여덟 소년과 그의 벗들에게 악수를, 설렘과 함께 가슴 가득히 미래에 대한 두려움과 불안도 가지고 가는 우리 인생의 또하나의 벗 국천이와 다른 모든 국천이들에게 뜨거운 축배를…
김태숙 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