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 건 오
국립공주대학교 강사
송악면 가학리
요즘 우리 사이에서 일어나는 보수와 진보의 대립은 바로 선택이 없는 막다른 골목과 같다. 그것은 보수와 진보를 연결해 줄 수 있는 다리가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전통적으로 학연, 지연, 혈연을 중심으로 이끌어 지는 우리사회가 내편이 아니면 적이라는 극단적인 이분법적인 분류만을 허용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종종 난처하게 흑백의 선택을 강요당하는 경우를 맞는다. 개인적인 소신으로 어느 한쪽을 선택하면 비판을 당하거나 반대로 환영을 받는다. 상대방의 성향을 알지 못하는 경우의 선택일 때는, 비약적인 사고라고 할 지는 모르지만 스스로 생사를 선택하는 때와 마찬가지 일 수도 있다.
우리 사회는 모든 경우에 자기편이 아니면 적으로 간주되어 협상이나 회담의 여지를 남기지 못한다. 이러한 이분법적인 분류는 결국 조직 내에서도 분파를 발생시킨다. 근래 우리나라의 남북관계에서 보여지는 남남의 갈등, 노동운동계에서 나타나는 노노간의 갈등 등은 남북 간의 문제라기 보다 남남 안에서의 사고의 대립이며, 노사간의 대립이기 보다 노노안에서 벌어지는 의견의 갈등인 것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지역사회에서 발생하는 많은 대립의 모습도 다를 바가 없다.
이 모든 상황들은 제도나 권력, 사상적인 문제에서 기인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모든 것이 그것을 운용하는 사람들의 문제인 것이다. 완벽한 사람이 있을 수 없는 것처럼 완벽한 사회, 완벽한 국가 또한 있을 수 없다. 그러므로 세상은 언제나 문제점을 지닐 수밖에 없다. 따라서 우리는 문제가 없기를 바라기보다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더 현명할 것이다.
그러나 이분법적 사회분류는 그 해결방법과 수용을 제한한다. 따라서 힘과 권력에 줄서야하는 비참한 군상들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자기의 의지와 관계없이 힘의 논리에 의지하고 생존의 논리를 앞세우면서 확실한 주장과 논리도 없이 어느 때는 진보로 어떤 경우는 보수로 그네 타기를 한다. 그러나 영원한 보수와 영원한 진보가 있을 수 없듯이 서로간의 마음을 연다면 보수는 진보를 위해, 진보는 보수를 위해 발전적이고 성숙할 수 있는 상호보완적인 동반자가 될 수 있으리라.
1977년 크로아티아인들에 의해 미국에서 납치된 TWA 소속 항공기가 파리 드골 공항에 내렸다. 프랑스 경찰은 비행기 바퀴를 쏘아 꼼짝하지 못하도록 한 뒤 최후 통첩을 했다. 「지금 여기 미국경찰이 도착해있다. 만일 투항하여 미국경찰과 함께 미국으로 간다면 길어야 2년 정도 복역할 것이다. 이 말은 10개월 내에 풀려날 수도 있다는 말이다.」 납치범에게 잠시 생각할 여유를 준 뒤 경찰은 말을 다시 이었다. 「하지만 만약 우리가 체포한다면 너희들은 프랑스 법률에 따라 사형에 처해질 것이다. 자 어떻게 할지 결정하라」 납치범은 미국 법률체제에 의한 심판을 받아 살아남을 궁리를 했고 결국 투항했다.
이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대화와 협상은 극단적인 경우에서도 공존할 수 있는 선택을 제시한다.
대립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화와 협상이라는 방법을 운용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항상 서로간에 열려있는 다시 말해 비평을 감당해낼 수 있는 스스로의 능력의 배양이 필요하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의 작은 지역사회 안에서 어설픈 보수 대 진보의 대립보다 대화하고, 협상하고 그리고 수용하는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도록 하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