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비를 뿌렸냐는듯 바람 한점 흐르지 않는 건조한 날이다.

며칠전 장마끝에 닥쳐온 폭우로 경기도 문산시가 물에 잠겼다. 비가 휩쓸고간 자리엔 TV, 냉장고, 자동차, 가구, 책 할것 없이 모두 젖어버려 재생조차 어렵게 되었고 남은 것이라곤 집채만이 덩그러니 있을 뿐이었다.

농촌에서는 벼들이 한창 알멩이를 살찌울 때이고, 비닐하우스의 토마토, 가지등이 익어 수확을 거둘 때이다. 그런데 벼들은 모두 엎어져 가을에 수확을 해도 얼마되지 않는 양을 거두게 될 것이고, 토마토는 열매에 물이 차 모두 버려야만 했다.

그럼에도 농부들은 35도를 웃도는 날씨에 하나라도 더 건져보겠다고 논으로 나가 벼를 일으켜 세우고, 밭을 갈아 엎고 씨를 뿌리는 모습을 TV화면을 통해 보았다. 일하다 지치면 마당의 나무그늘 아래 낮잠으로 한숨 돌리고, 다시 들로 나가는 농부의 모습은 나를 고개 숙이게 만들었다.

요즘들어 옥상에 널린 빨래처럼 축처지기만 하는 나였다. 산다는 게 자꾸만 나를 절망스럽게 해 누군가에게 힘이 든다고 말하고만 싶었었다. 내게 큰 실패와 좌절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쉽게 지쳐버리는 것이 내 생활습관은 아니었는지 모르겠다.

수해를 입은 상황에서도 다시 땅을 일굴 수 있는 믿음과 희망을 품을 줄 아는 농부를 오늘 나는 배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