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워 다시 부르고 싶은 이름 ‘할머니’

이 땅의 모든 외할머니들에게 바친다는 .

이 영화를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매스컴을 통해 할머니의 얼굴을 본 후였다. 지금도 가끔 보고 싶은 나의 할머니, 영화 속의 할머니와 너무도 닮은, 그래서 20년 전에 돌아가신 나의 할머니를 보고 싶은 욕심 때문이었다.

일곱 살 난 꼬마 상우는 엄마 손에 이끌려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외할머니 집으로 간다. 혼자서 상우를 키우던 엄마는 할머니에게 일자리를 구할 때까지만 상우를 돌봐달라고 부탁하고는 온 길을 되짚어 서울로 되돌아간다. 이렇게 해서 엎치락 뒤치락하며 두사람의 동거가 시작되지만 낯선 초가집과 할머니가 어색하고 싫기만 한 상우는 매번 할머니의 정성어린 손길을 내친다.

말못하는 할머니가 못내 싫어 상우는 적대감을 전혀 숨기지 않는다. 할머니에게 ‘병신’이라고 놀리거나 하나밖에 없는 할머니의 고무신을 감추고 요강을 걷어차 깨뜨리고 게임기 건전지를 사기 위해 할머니 비녀를 몰래 빼는 등 상우의 심술은 계속된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씩 흐르면서 영화 속에서 비치는 그 아름다운 영상은 관객들의 객관적인 시선과 이성을 스크린 밖으로 밀어낸다. 영화를 보며 한번도 눈물이라는 감성적인 행동을 보이지 않았던 난 그만....

정류장까지 걸어오는 할머니를 보며 “왜 이제 와” 눈물을 가득 채운 채 달려오는 상우의 모습에서 숨이 멎었다. 할머니의 소리없는 그 큰 사랑에 숨을 제대로 가누기조차 힘들었다.

그리고 두 번째 눈물.

마지막 상우는 떠나야만 했다. 하지만 이미 할머니에게 마음을 연 상우, 어린 상우가 감당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다. 전화도, 말도, 글씨도 아무 것도 없고 할 수도 없는 할머니가 만약에 아프거나 자기를 보고 싶어하면 어떡하나 걱정하는 상우는 이미 버릇없는 철부지가 아니다. 할머니의 조건없는 사랑에 자신의 착한 본성을 내보인다.

떠나는 버스정류장에서 상우는 자기주소와 할머니가 아플 때와 보고 싶을 때를 나누어 그린, 몹시도 아끼는 로봇그림이 그려져 있는 엽서를 할머니에게 건넨다.

아마도, 어린 상우에게 할머니와 함께 지낸 그 시간들은 평생 살아가면서 큰 힘이 될 것이다.

영화 전체를 감싸는 할머니의 조건없는 내리사랑은 사고의 영역이 아니라 감성의 영역이다. 끝이 없을 것 같은 할머니의 그 무한한 사랑을 받고 나니 차갑고 냉소적으로 보이던 세상이 따뜻해지기 시작했다.

영화관을 나오면서 나의 할머니를 생각했다. 나도 어릴 적 상우와 똑같았다. 반말 하고, 화내고, 아쉬울 때만 찾고... 할머니가 돌아가셨을 때는 어린 나이라 할머니란 존재가 없었졌다는 것만 슬퍼 울었던 기억이 난다. 철이 들면서부터 할머니는 나의 가슴에 예고없이 순간 순간 들어와 맘을 아프게도 하고 행복하게도 한다. 상우가 그랬던 것처럼 할머니의 무한한 조건없는 사랑이 나의 맘 언저리에 남아 살아가는 데 큰 힘이 되고 있다.

하지만 이런 생각도 든다. 이 영화를 보고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무한 사람들이 느낄 쓸쓸함에 마음이 쓰인다. 그만큼 자기를 앞세우는 법이 없는 할머니의 사랑이 크게 보이기 때문.

오랜만에 만나는 마음 따뜻한 좋은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