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충회의 일본기행기①
허 충 회 / 전 당진군농민회장, 전농 충남도연맹 부의장
들어가면서… 대전·충남지역운동 연대와 일본 평화헌법을 살리는 구마모토 현민의 회는 4년전부터 민간단체 교류를 통해 양국의 시민운동을 소개하고 각 분야별 정보를 교환하며 특히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매년 쌍방의 교류방문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지난 7월 일본측의 한국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10월20일부터 3박4일간 충남지역 환경·교사·농민·시민운동 등의 분야에서 4명이 참가했다.
방문을 마치고 이 글을 쓰게 된 건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올바른 한·일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런 민간교류가 확대되어 좋은 결실을 맺게 되기를 바램에서이다. 각 분야별로 내용을 정리하여 글을 쓸까 생각하다가 일지형식으로 서술함이 차라리 현장감을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쓰게 됐다. 독자님들의 양해바란다.
군국주의화에 대항하는 구마모토 현민의 회
“교과서 왜곡 반대” 한·일 시민단체 성명 채택
■제1일 (10월 20일)
김포공항에서 아시아나편 11시35분 비행기로 1시간 10분만에 후쿠오카공항에 도착했다. 공항청사 밖에선 방문단을 안내할 두사람이 기다리다가 반갑게 맞이했다. 한사람은 재일교포 2세인 주영덕(46세, 식당업)씨인데 전남 목포가 부친의 고향이고 어머니 고향은 부산이며, 자녀는 딸만 둘이었다. 또 한사람은 다나카(51세, 전기공사)라는 일본사람으로 방문단 안내와 방문지 섭외를 담당했다. 두사람 모두 현민의 회에서 핵심적 활동을 하고 있었다.
두사람의 안내에 따라 전철을 타고 약 한시간 걸려 첫 방문지인 구마모토현에 도착했다. 열차안에서 내다본 농촌은 그동안의 내 생각이 많이 틀렸음을 알았다. 합덕·우강의 들판과 비슷한 일본 구마모토 평야에는 쌀농사가 중심인데 우리나라처럼 논 한필지가 3천평 이상은 커녕 경지정리지역에서 조차 한구간이 1천평이 채 안되었다. 심지어 50평 정도의 작은 논도 합치지 않고 그대로 둔 것이 꽤 많아 어리둥절했다.
또 한가지 특이한 건 어떤 논은 벼를 벤지 한달 정도 됐을 것으로 보이는가 하면 그 옆의 논은 아직도 볏짚이 새파랗게 서있기도 하고 어떤 곳은 절반 정도 베다 그대로 둔 곳이 많았다. 구마모토현이 한반도보다 위도상 남쪽에 가까워 기후가 따스하기 때문에 일시에 벼를 빨리 베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추측은 해봤지만 여기엔 뭔가 더 중요한 이유가 있을 것 같았다.
오후 4시경 방문단은 구마모토현청 충남사무소를 의례상 방문했다. 구마모토현 전체인구는 약 180만명 정도며 면적은 충청북도와 비슷한 크기라고 한다. 한반도와 가장 가까운 위치여서 옛날부터 교류가 가장 빈번했고 특히 백제시대의 교류가 잦아 백제고분이 남아 있는가 하면 백제의 지명이 남아있는 곳도 많다고 한다. 예를 들면 백제우편소(우체국) 등의 간판이 눈에 띄었다.
충남과 구마모토현은 지난 81년도에 자매결연을 맺어 교류하다가 98년 1월1일 사무소를 냈는데 현재 직원 3명(소장 백운교)이 근무하고 있다. 일본에서 연간 5백여명의 학생과 일반인이 충남지역을 관광여행하는 성과가 있다고 하면서도 더 많은 교류를 성사시키는데 충남도청의 예산부족으로 어려움이 있다고 사무소장이 말했다.
잠시후 방문단은 구마모토현 환경생활부 국제과를 방문하여 무라마쓰(여) 과장과 면담했는데 한국의 농업문제와 농민운동에 대한 의례적인 문답이 있었고, 한국의 농업위기에 대해 일본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답을 했다. 일본에서도 구마모토현이 농토가 가장 넓은 농업지역이라는 설명도 들었는데 일본의 쌀농사에 대해 좀더 묻고 싶었지만 안내를 하는 다나카씨의 시간재촉에 따라 자리를 떠야 했다.
오후 5시경 도착한 곳은 구마모토현 고등학교 교직원 조합 소유의 교육회관이었다. 이곳에서 방문단과 평화헌법을 살리는 구마모토 현민의 회(이하 현민의 회로 약칭함)간에 공식회합이 이뤄졌다.
현민의 회는 약 4년전 일본정부로부터 중학교 교과서에서 위안부의 기술을 삭제하라는 움직임에 항의하는 운동으로 촉발되어 지금까지 활동해오고 있는데 작년 10월14일 대전참여자치시민연대와 함께 한·일 민간단체교류에 관한 합의문을 작성하였으며, 2002년부터 사용되는 중학교 교과서가 올바로 검정되도록 하는 운동과 자위대 해외파병반대, 미·일 합동군사훈련반대, 환경·농민운동 지원 등 다양한 사업들을 펼치고 있다. 회원들은 지식층, 농민, 여성, 회사원, 자영업 등 다양한 계층이 가입돼 있으며 특히 그동안 소극적이었던 중·고등학교 교사들이 대거 참여하고 있다.
일본은 지금 보수세력인 자민당이 집권해 그들의 입맛에 맞는 쪽으로 헌법을 개악시켜 나가고 특히 자위대의 전력증강을 위해 한반도와 아시아 침략을 정당화하고 식민지 지배와 침략과정에서 징용·징병·군위안부문제를 삭제하고 난징학살과 삼광작전에 대해서도 기술을 삭제하거나 왜곡시키고 있다. 현민의 회는 바로 이런 일본정부의 움직임에 대해 가장 앞서 대항하는 시민운동 조직이다.
회의중 한 회원은 “국가권력이 교과서에 개입하면 미래가 불안하다”며 자신은 1932년 소학교(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당시 국어교과서는 평화적 내용이었지만 1933년에 군국주의적 내용으로 바뀌었고 그후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이 일어났는데 오늘의 일본이 그때와 흡사하다고 말했다.
현민의 회원들은 주로 자신의 경험과 생각을 가감없이 표현하며 열띤 화합이 이뤄졌는데 조선시대말 청·일전쟁이 조선땅에서 벌어졌음을 지난번 서울을 방문해 처음 알고 놀랐던 것처럼 일본 젊은계층의 국민들이 한국과 일본의 역사적 관계를 똑바로 알지 못하는 만큼 한·일 양국간에 학생교류가 활성화되어 양국의 청소년들이 올바른 역사체험을 통해 배우도록 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말했다.
약 두시간 동안의 회의는 일본정부와 문부성, 구마모토현에 보내는 는 내용의 성명서를 대전·충남시민단체 대표단과 현민의 회 공동명의로 채택하고 공식회의를 마무리했다.
회의가 끝나고 양측 대표단은 시내 음식점으로 옮겨 저녁식사를 함께하며 전 시간에 못다한 의견과 정보를 교환했다. 음식점은 술과 식사를 함께 판매하는 일식점인데 생선회 몇가지와 양채류, 왕새우찜 등이 나왔다. 양측 대표단은 밤늦도록 술잔을 나누며 충남과 구마모토 시민단체간 연대와 교류를 확대해 일본교과서가 올바로 만들어지도록 노력할 것을 다시 한번 결의하고 헤어졌다.
방문단 네명은 자정이 다되어 숙소로 예약된 호텔에 들었는데 우리나라 장급여관과 비슷하며 약 두평반쯤 크기의 방에 일인용 침대 두개가 놓여 있었고 일본식 잠옷이 제공되었다. 일본 방문 첫날이 이렇게 새벽 6시부터 출발해 자정에 끝을 맺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