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충회의 일본기행기④
다마나시 시민운동은 반전·평화운동, 국가에 소송까지
‘시민의 세금 전쟁비용으로 쓰며 무고한 이라크 시민·어린이 죽이는 것’ 반대
들어가면서… 대전·충남지역운동 연대와 일본 평화헌법을 살리는 구마모토 현민의 회는 4년전부터 민간단체 교류를 통해 양국의 시민운동을 소개하고 각 분야별 정보를 교환하며 특히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매년 쌍방의 교류방문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지난 7월 일본측의 한국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10월20일부터 3박4일간 충남지역 환경·교사·농민·시민운동 등의 분야에서 4명이 참가했다.
방문을 마치고 이 글을 쓰게 된 건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올바른 한·일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런 민간교류가 확대되어 좋은 결실을 맺게 되기를 바램에서이다. 각 분야별로 내용을 정리하여 글을 쓸까 생각하다가 일지형식으로 서술함이 차라리 현장감을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쓰게 됐다. 독자님들의 양해바란다.
잠시후 기쿠치 시민단체 회원들이 모두 자리에 차자 한사람이 사회를 보면서 양쪽 시민과 방문단을 일일이 소개했다. 인사소개 후 양측은 산업폐기물처리장 싸움의 경과를 듣고 한·일 양국 시민단체간의 교류협력을 약속했다.
시민들 중에는 이미 한국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도 있었는데 일본사람들이 음식을 적게 먹고 절약하는데 반해 한국사람들이 음식을 풍성하게 먹는다는 사실을 알게 된 그들은 저녁상을 음식점에 주문하여 필요이상의 음식을 마련해 놓고 있었다. 생선튀김, 닭튀김, 야채, 맥주 등 20여명의 사람들이 배부르도록 먹고 절반 이상이 남아 다음부터 음식을 알맞게 준비할 것을 주문했다.
자리가 한껏 무르익자 주인과 사회자가 나서서 기타와 피아노를 치며 ‘우리의 소원은 통일’, ‘아리랑’, ‘직녀에게’, ‘서울에서 평양까지’ 등의 한국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특히 그들이 한국 민중가요를 즐겨듣고 부르는 것에서 한국의 시민운동과 노동운동 등을 선망의 대상으로 삼고 있음을 느꼈다. 일본에선 시민운동에 대한 시민들의 참여가 매우 저조해 어려움이 크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가 보수화로 굳어졌기에 진보적 운동을 체념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중에 와타나베(40세)라는 농민부부가 나와 옆자리에 앉아 대화를 했는데 한국사람들에게 유기농법을 배워 쌀농사와 차, 버섯 등을 유기농으로 재배한다고 한다.
그는 “천왕도 따지고 보면 백제의 후손인데 지금은 자신을 신격화시키고 독보적인 존재로 왜곡한다”고 비판했다.
딸을 두명 두었다고 하기에 부인에게 농업노동의 어려움과 시골에서 자녀교육문제를 물었더니 농사일은 기계화가 되어서 힘든줄 모르고 자녀교육문제는 부부가 가치관이 뚜렷하므로 개의치 않는다고 답했다. 그들 부부에게서 농민운동을 앞장서 이끄는 강한 활동가의 체취를 느낄 수 있었다.
밤 10시까지 예정됐던 교류모임은 자정이 다 돼서 끝났고 방문단은 인근 여관으로 안내되어 여정을 풀 수 있었다. 하지만 주씨와 다나카씨는 여기서 시간을 놓지 않았다. 방을 잡기 무섭게 서류철을 내놓으며 작년 10월에 합의된 한·일 양국의 시민단체 교류확대 건에 대한 구체적인 시행계획을 논의하자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교사, 청소년, 환경, 농민 등 분야별 교류계획을 합의하고 첫번째로 내년 상반기 중에 일본농민 5~6명 정도로 충남권에 방문하도록 주선해 달라는 주문을 했다. 나는 어느 한개 시·군 단위에서 전체 일정을 소화해 내기는 무리가 될 것이라며 전농 충남도연맹에 사업으로 받도록 제안할 것을 약속하는 선에서 합의했다. 실현 가능성을 심사숙고해 진행된 회의는 다음날 새벽 2시가 되어 끝났다.
■제3일(10월22일)
빡빡한 일정에 잠까지 설친 방문단은 꾀병 한마디 못하고 7시에 일어나 인근 온천에 들어가 피로를 다소라도 해소했다. 건성 샤워 정도로 끝내고 조그만 식당에서 아침밥을 먹었는데 여기선 한국식 쌀밥이 한공기씩 나왔다. 감자국에 가지나물이 반찬의 전부였다.
식사전 식탁에 놓인 조간신문을 펼쳐보니 어제 구마니치신문사에 방문했던 모습의 방문단 사진과 함께 이번 민단단체 교류의 목적과 내용이 비교적 상세히 나왔다. 방문단이 시민단체 지원을 요구하는 질문에 대한 응답으로 호의를 베푼 것 같았다.
아침식사를 마친 방문단은 자동차로 한시간 정도 달려 다음 방문지인 다나마시에 도착했다. 이동 중에 백제시대의 고분을 눈여겨 봤으며 언젠가 한국 TV에 소개됐던 가족탕의 간판이 눈에 띄기도 했다.
10시경에 도착한 다마나시 교육회관에서 아라오, 다마나 두 지역의 시민과 교류회합이 이뤄졌다. 시민대표는 방문단을 환영하기 위해 꽃다발을 준비할 계획이었으나 의미를 더하기 위해 이 지역 농민이 직접 유기농으로 재배한 이마무라라는 품종의 배와 단감, 피망, 가지 등을 대접했다.
이곳 시민단체의 주요사업은 일본 자위대의 해외파병과 전력증강을 반대하는 것이었다. 특히 1991년 걸프전쟁에 일본에서 군비를 지원한 것에 대해 국가를 상대로 법적투쟁을 하고 있었다.
일본에서 미군의 전쟁비용을 부담해 무고한 이라크 시민과 어린이들이 죽어가는 데에 대해 경악을 금치 못하여 이 싸움을 시작했는데 일본에선 국가를 상대로 한 소송이 되지 않아 민사로 소송을 걸었다는 것이다.
일본의 전쟁비용은 국민의 세금으로 충당되며 내가 낸 세금의 일부가 무고한 이라크 어린이와 시민들을 죽인 데에 대해 ‘납세자의 기본권’과 ‘평화적 생존권’을 주장해 지금까지 9년 동안 외로이 투쟁하다 지금은 도쿄, 나고야, 히로시마, 가고시마, 구마모토 등 5개 도시에서 몇백명의 변호사와 시민운동단체가 연대해 투쟁하고 있다고 했다.
일본 헌법에선 총을 가지고 전쟁하거나 전쟁비용을 외국에 대거나 군사훈련을 하거나 모두가 불법이라고 한다. 현민의 회 앞에 ‘평화헌법을 살리는’이라는 수식어가 왜 붙었는지를 짐작케 하는 대목이다.
약 두시간 반동안 열띤 토론이 있었는데 그 내용을 전부 수록하기엔 지면상 불가능하며 이곳에서도 두사람의 농민부부를 만나 개인적으로 친숙한 인사를 나누어 기억이 생생하지만 다음 기회에 소개할 생략이다.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두지역 시민과 작별한 다음 이틀동안 안내를 맡았던 다나까씨와도 아쉽게 헤어졌다. 이제부터는 구마모토 농협중앙회 영농지도부 생활복지과장 우찌다씨가 안내를 맡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