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충회의 일본기행기⑤
허 충 회
전 당진군농민회장
전농 충남도연맹 부의장
유기농 재배로 수입개방에 대응하는 일본농민
야스시로에서 함께한 현지 농민과의 교류, 군사훈련장이 두려운 야베마치 어린이
들어가면서… 대전·충남지역운동 연대와 일본 평화헌법을 살리는 구마모토 현민의 회는 4년전부터 민간단체 교류를 통해 양국의 시민운동을 소개하고 각 분야별 정보를 교환하며 특히 동북아시아의 평화를 지키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동안 매년 쌍방의 교류방문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는 지난 7월 일본측의 한국방문에 대한 답방으로 10월20일부터 3박4일간 충남지역 환경·교사·농민·시민운동 등의 분야에서 4명이 참가했다.
방문을 마치고 이 글을 쓰게 된 건 한·일 양국의 국민들이 올바른 한·일관계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고 이런 민간교류가 확대되어 좋은 결실을 맺게 되기를 바램에서이다. 각 분야별로 내용을 정리하여 글을 쓸까 생각하다가 일지형식으로 서술함이 차라리 현장감을 더 살릴 수 있을 것 같아 이렇게 쓰게 됐다. 독자님들의 양해바란다.
우찌다씨는 일본의 농민운동을 이끄는 지식인으로서 한국 역사에 대해 깊은 식견과 연구를 하고 있었으며 한국을 방문해 우금치 동학농민 전쟁기념탑 등을 방문한 적이 있었다. 나는 누군가에게 선물을 하기 위해 가져온 장사익 2집 CD를 그가 선물의 적임자라 생각이 들어 우찌다에게 선물했다.
우찌다씨는 동료회원 고수끼씨와 승용차 한대씩을 몰고와 방문단을 태워 고속도로를 타고 다음 방문지인 오오야노바루 군사훈련장으로 향했다. 자동차로 약 두시간 걸려 도착한 군사연습장은 깊은 산속의 산정상에 있는데 어제 관광했던 대관봉처럼 산정상이 평평하고 넓은 구릉지대였다.
가는 도중의 풍경은 마치 강원도 산악지대처럼 험준하고 도로가 구불구불했다. 농경지도 계단식에 농지정리가 안된 그대로였다. 여기서 콤바인으로 벼를 베는 모습을 봤는데 한번에 두줄씩 베는 아주 소형 콤바인이였다.
첫날 비행기에서 내려 열차를 타고 구마모토로 가는 도중 경지정리가 소규모의 면적으로 된 것과 벼를 일시에 수확하지 않는 이유와 아직도 벼를 낫으로 베어 걸대를 설치하고 볏단을 거꾸로 걸어 말리는 등의 의문이 서서히 풀리기 시작했다. 일본에선 거의 모든 농산물을 유기농으로 재배하며 소비자와 직거래를 하고 있었다. 품질을 향상시키고 연중 필요한 만큼의 농산물을 공급하기 위해 필요한 방법일 것이다.
본론으로 들어가 군사연습장은 3년전부터 일본 자위대와 미국 해병대가 연합으로 포사격연습을 하는 곳으로 면적은 1,400㏊에 이르며 1946년 미국의 주둔군이 진주했고 1950년 6.25 한국전쟁 당시에도 이곳에서 군사훈련을 실시했다고 한다. 거슬러 올라가면 일제가 조선을 침략할 당시부터 이곳에서 일본군이 군사연습을 한 곳으로 한국인에겐 가장 저주스러운 땅이라 하겠다.
오후 2시30분경 연습장 산아래 마을인 야베마치 시민들과 교류모임이 있었는데 마을회관이 매우 인상적이었다. 일본식 건축으로 된 이 마을회관은 바닥에 편목을 깔아 매끈하게 도색하고 마을의 어떤 행사도 유치할 수 있도록 설계돼 있었다.
방문단이 도착하자 기다리고 있던 마을의 소학교 어린이와 중학생들이 일본 북과 대나무로 된 타악기로 방문단을 환영하는 뜻으로 연주를 하기 시작했다. 연주의 리듬은 군대가 진군할 때의 행진곡을 연상케 했지만 천진난만한 어린학생들의 솜씨가 훌륭하고 진지해 보였다. 이 지역 중학생들이 충남 부여지역 중학교와 교류를 맺어 30여명이 부여를 방문했는데 방문단과 학생들은 한국방문의 소감을 묻고 답하였다.
시골지역 학생들이라 구김살이 없었고 순박했으며 한국방문 소감에 대해 주로 한국사람이 따스하게 대해줘 고마웠고 한국김치와 한국의 물가가 싼 것에 대한 얘기였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일본 물가는 보통 한국에 비해 두곱 이상 비싼 편이다.
시골지역인 탓에 피아노, 미술 등의 과외공부가 거의 없고 특별히 명문대학에 진학하겠다는 생각은 아직 없는 것 같다. 방과 후엔 주로 학교에서 체육활동을 주로하고 컴퓨터게임 같은 건 아직 모르고 있었다.
농지가 비좁아 전업으로 농사를 짓는 농가는 단 한 농가 뿐이고 대개 공무원이나 회사원이 겸업으로 농사를 짓는다고 했다.
군사훈련장에 대해 어린이들에게 물으니 낯선 사람들이 지나다녀서 무섭고 폭탄 터지는 소리가 무섭다며 전쟁이 싫다고 말했다. 주민들 대부분 자녀가 어떤 피해를 당할까 상당히 주의하고 있다고 한다.
야베마치를 떠나 다시 두시간 가량 이동해 오늘의 마지막 방문지인 야스시로에 도착한 것은 오후 7시경. 야스시로 여성시민회 회장댁에서 저녁식사와 함께 여성시민회원과 지역 농민들과의 교류가 이뤄졌다. 이곳에서는 세명의 일본농민과 주로 대화를 했는데 두사람은 농민조합 전·현직 조합장이고 한사람은 농협이사를 맡고 있었다. 구마모토 현내에서 가장 농토가 넓은 곳이 이곳 야스시로시이고 8천여명 정도의 전업농이 있으며 일본내에서도 농업소득의 가장 높은 지역이라고 한다.
주요 생산품목은 토마토, 메론, 쌀 등이며 쌀 한가마는 60㎏ 기준으로 14,000엔 정도 한다니 원화와 엔화의 환율을 적용하면 우리돈으로 약 14만원, 다시 쌀 1㎏ 가격을 환산하면 2,333원 꼴이다. 우리 당진지역 쌀 생산지 가격이 ㎏당 2천여원 정도니까 우리보다 약간 높거나 비슷한 가격인 셈이다. 단, 일본의 다른 물가와 비교하면 오히려 일본 쌀값은 우리보다 낮은 편이라 생각할 수 있다.
일본의 농민들은 대개가 한국의 값싼 농산물이 수입되고 자기들이 피해를 보는 것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물론 한국산 농산물이 일본에 수출되는 것은 인정하지만 우르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한·일 양국정부가 적절히 대처하지 못했고 미국 등의 다국적 기업들에 의해 주도된 우르과이라운드 농산물 협상에서 예외없는 관세철폐는 한·일 양국 농민들의 처지를 다같이 어렵게 한 것으로 한·일 양국의 농민과 시민들이 함께 대응해 나가야 할 문제임을 지적하며 “만일 10월20일 일본방문의 기회가 나에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서울의 아셈을 반대하는 집회에 참가했을 것”이라는 설명을 하자 일본측 농민들도 동감하는 뜻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이 자리에서 안내를 한 우찌다 과장은 한국의 농민운동에 대해 물었고 나는 전국농민회총연맹의 역사와 활동내용을 비교적 상세히 설명했다. 전농의 농업개혁 4대 과제인 ‘농가부채 해결, WTO이행 특별법 제정, 농협개혁, 농업재해보상법 제정’등을 설명하자 우찌다 과장은 일본은 이미 오래전부터 농업재해를 보상해주는 제도가 있음을 말했다.
야스시로 농민들은 밀려오는 수입개방에 대한 대응으로 농산물의 유기농법과 소비자와의 직거래를 추진하고 있었는데 바로 야스시로 여성시민회는 소비자단체이기도 한 것이다. 여성시민회장집은 여느 집보다 두배쯤 넓었고 언제든지 손님이 묵고 갈 수 있는 빈방과 목욕탕이 별도로 있었다. 방문단은 그날밤 그 집에서 민박을 하고 당진에서 준비해 가지고 간 두견주를 주인에게 답례로 선물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