혹여, 바람이 불더라도

음력 4월18일. 합덕대건노인대학 졸업장을 고이 품은 표계영(71) 할머니는 식구들과 함께 고영식(72) 할아버지의 무덤을 찾을 것이다. 아마도 그날은 오월의 녹음이 가슴 시리도록 절절하게 푸를 것이다. 하늘의 푸른 물 묻은 바람이 할머니의 시든 등을 재촉할지도 모르겠다.

나뭇가지에 앉은 산새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겠지. 혹여, 할머니와 식구들의 허전한 가슴을 보고 푸드득, 지레 놀라 칼깃을 세우며 날아오를지도. 그날은 비가 내려선 안 된다. 바람이 거세어서도 안 된다. 이미 작년 9월25일 망자가 된 할아버지의 단 하나밖에 없는 졸업장이 상할지도 모르므로. 하늘엔 구름 한 점 없어야지. 할아버지가 잠들어 있는 운산 가저리의 선산은 숨을 죽이고 그들을 맞이해야지. 바람이 불더라도 섣불리 할아버지의 졸업장을 나부껴선 안 되지. 그저 고와야 할 그날의 날씨를 부드럽게 간질일 정도, 남편이며 아버지를 잃은 그들의 헛헛한 가슴을 야속하게 건드리지 않을 정도, 더도 덜도 말고 그렇게 순하게만 불어야지.

불사름과 닿음의 찰나

할아버지의 무덤 앞에 선 할머니, 할아버지의 무덤에 난 잡풀을 뽑다가 잠시 손길이 멈춰질 것이다. 바로 그 순간 할머니는 이승의 문턱을 넘어간 할아버지에게 말을 건네겠지. 당신의 졸업장을 이렇게 들고 왔다고. 졸업장을 당신에게 주려고 당신의 생일에 맞춰 찾아왔노라고. 할아버지의 무덤에 소주 몇 잔이 부어지고 산그늘이 좀 더 짙어지면 할머니와 식구들은 작은 터를 만들어 불을 놓을 것이다. 불길이 피워올리는 아지랑이 너머로 할머니의 흐려진 눈이 아른거릴까? 기어코, 생의 진물과도 같은 눈물이 굵은 줄기를 이루며 흘러내리다가 할머니의 턱 끝을 떠날지도. 식구들은 할아버지의 장례식 때 경황이 없어 태우지 못했던 이불을 불길 속으로 밀어 넣을 것이다. 화르르 살아나는 화염을 우두커니 바라볼 할머니, 그 무심한 불길 속으로 할아버지의 졸업장을 슬그머니 놓아버리면 켕겨 있던 힘이 풀려 주저앉

을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할아버지의 졸업장은 하얀 연기가 되어 이승을 떠날 것이다. 산 자의 손길이 미칠 수 없는 곳으로 날아가 할아버지에게로 닿을 것이다. 할아버지의 졸업장을 불사른 할머니, 저승에서 당신의 졸업장을 비로소 손에 쥘 할아버지. 48년 동안 한 이불을 덮었던 두 분은 그 불사름과 닿음의 찰나에 어떤 표정을 지을 것인지……

단 한 장의 명예졸업장

지난 4월25일 합덕읍민회관에서 합덕대건노인대학 제9회 덕사(德士)학위 수여식이 열렸다.

덕사(德士)는 합덕대건노인대학을 4년 동안 다니면서 덕을 많이 쌓았다고 해서 주는 학위를 말한다. 수여식에 참여한 어르신들은 작년에 숨을 거두신 고영식 할아버지를 포함해 모두 열 여덟 분이었다. 이날 할아버지를 대신해 명예졸업장을 받은 사람은 큰 아들 고동연씨였다. 1990년 합덕대건노인대학 설립이래 명예졸업장을 수여한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할아버지의 명예졸업장을 큰 아들로부터 전해받은 할머니는 한참동안 졸업장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혼자서 졸업장을 받는디 뭐가 좋겄어. 입학할 땐 우리 주인양반이랑 같이 들어왔는디 이렇게 혼자서 졸업하게 됐네, 그려. 이 명예졸업장을 우리 주인양반 묘 앞에서 태울 거구먼. 저승에서라도 받아보라구 말여. 그렇게 학교 다니는 걸 좋아했던 양반이…….”

할아버지의 학생증을 꺼내 보여주며 눈 밑을 적시는 할머니. 이상하게도, 아니 당연한 건지도 모르겠지만 황혼에 이른 사람의 눈물은 그 앞에선 상대방을 곤혹스럽게 만든다. 그 동안의 삶이 쌓이고 쌓여 그토록 짙은 눈물을 자아내기 때문일까? 할머니에게 뭔가를 여쭤보아야 하는데 말은 입안에 가두어진 채 혀끝에서 맴돌기만 했다.

할머니가 간직한 할아버지의 학생증

“매주 목요일 열 한시만 되면 농사 짓다가도 경운기를 집으로 몰았어. 열두 시에 버스가 있거든. 그거 타고 둘이 같이 노인대학에 댕겼던 거여. 우리 주인양반이 노래나 춤은 전혀 하덜 못했는디 핵교 댕긴 이후로 응얼거리기도 하고 하루 쟁일 춤을 춰도 싫지를 않다고 그랬어.”

학생증을 항상 지니고 계셨다는 할아버지. 그런 이유로 할아버지가 숨을 거두신 이후에도 할아버지의 학생증은 할머니의 지갑 속에 넣어졌다. 할머니는 차마 없애버릴 수가 없다고 했다. 지갑을 열 때마다 드러나는 할아버지의 학생증에 매번 마음이 허물어졌을 할머니. 47년 동안 함께 한 그 기나긴 시간의 추억들을 무슨 수로 삭혀낼 것인가. 마음이 다치면 다치는 대로, 무너지면 무너지는 대로, 그 상처에 딱지가 내려앉아 무감각해질 때까지 떨쳐지지 않는 추억들을 그저 내버려둘 수밖에. 합덕대건노인대학은 할아버지의 전 생애를 통틀어 유일한 학교였다. 그래서 학생증을 몸에서 떼어내지 않았고 목요일만 되면 굽은 등에 묻은 흙먼지를 툭툭 털고 그렇게 열심히 노인대학에 나가셨던 것이다.

“그냥 가봅시다” “그럼 가봐”

97년 12월4일 두 분은 함께 합덕대건노인대학에 입학했다. 학교에 먼저 가자고 한 건 할머니였다고 했다.

“노인대학에 같이 다녀봅시다.”

“학교도 못 댕긴 사람이 어딜 간댜?”

“그냥 가봅시다.”

“그럼 가봐.”

그렇게 할머니의 청에 순순히 응해서 학교란 곳에 처음 발을 들여놓은 할아버지는 결국 망자가 되어 졸업식에 참여한 것이다.

작년 가을 할아버지는 종합검진 차 서울중앙병원에 입원했다. 평소 건강했던 분이셨기에 식구들 중 누구도 암에 걸리셨을 거라고 예상하지 못했다. 두 주 동안의 검사가 끝나고 의사는 할머니에게 말했다. 할아버지를 퇴원시켜야 되겠다고. 할아버지의 몸 속엔 더 이상 어찌 할 수 없을 정도로 암세포가 퍼져 있었던 것이다. 작년 여름은 농민들에게 애타는 계절이었다. 사상 유례없었던 지독한 가뭄. 예외 없이 할아버지의 논도 거미줄처럼 쩍쩍 갈라졌다. 논두렁에 앉아 아무런 방책 없이 타들어가는 논을 바라보아야 하는 농부의 마음, 할머니는 그 때문에 할아버지가 병을 얻으셨을 거라고 했다. 할아버지의 애타는 마음이 말라 가는 벼들에게는 거름이 되었을까? 할아버지는 한마디도 남기지 않고 조용히 눈을 감으셨지만 농사는 대풍년을 이루었다. 할아버지를 대신해 가을걷이를 했던 큰아들 고동연씨의 손길은 얼마나 자주 머뭇거렸을 것인지. 그걸 바라보는 할머니의 눈길은 또 얼마나 매웠을는지. 47년 동안 한 이불 속에서

“스물네 살 먹었을 때여. 그때는 그 나이만 먹어도 노처녀라고 불렀어. 중매쟁이헌티 우리 주인양반을 소개받았지. 사진도 없었응께 얼굴 한번 보지 못하고 바로 결혼날짜를 잡았어.

그런디……참 신기하게도 섣달그믐날 꿈속에서 우리 주인양반을 보았지 뭔가. 나중에 중매쟁이가 우리 주인양반 사진을 보여주는디 낯설지가 않았어. 이미 꿈속에서 봤거든. 그렇게 해서 다음해 이월 그믐날에 결혼식을 올렸지.”

결혼할 사람을 미리 꿈속에서 봤으니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영락없는 천생연분이다. 담배와 술을 안 하셨던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그렇게 잘해주셨다고 한다. 그러니 47년 동안 단 하루도 빠지지 않고 한 이불 속에서 잠을 이루셨던 것이다.

이희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