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희대
당진읍 읍내리 계성평화빌라
오늘도 어제와 다름없이 산에 오른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풍경이 있고 계절따라 신이 주신 자연의 모습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물들의 움직임에서 생의 미묘함과 번식으로 인한 지구의 변화를 볼 수 있고 천인지간에 존재한 나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기에 어제와 같이 솟은 근육으로 힘있게 정상에 오르고 있는 것이다.
정상에 펼쳐진 그림 속에서 하늘이 가까움을 알 수 있고 공기의 얇음을 느낀다. 첫서리가 오고 늦봄에 잔설이 고이는 이곳은 태고의 신비가 자연속에 뭍혀 만고의 풍상에 짓눌려 바위에 이끼없이 세월이 지나가고 있는 곳이다.
모진 바람이 태풍을 만들고 골 속에 잠든 날짐승들의 깃털을 일으키며 낙엽모아 외줄로 비호와 같이 쓸어간다. 병풍에 앉아 덧없는 인생을 되뇌이며 명상에 잠긴다.
주자가 말하기를 세불아연 오호노의(歲不我延 嗚呼老矣)라 했다. 세월은 나를 위하여 더디가지 않는다. 아 늙었구나! 하였으니 오늘따라 더욱 생이 덧없이 짧음을 느낀다.
심산유원친(深山有遠親)이라 깊은 산속에 있어도 먼 데서 찾아오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젠 먼 이야기가 되었으니 슬프기 그지없구나.
번뇌에 잠기면서 인사부지심(人死不知心)과 일구견인심(日久見人心)을 생각해본다. 공자와 주자간에 말이 다르니 어찌할 것인가 궁금투성 뿐이로다. 양지바른 무덤가에는 벌써 할미꽃이 백모되어 흩날리니 이 또한 예사롭지 아니하다.
하루가 저문다. 각기 다른 방향으로 장분이 있어 좌향을 보니 모두가 삼합오행(三合五行)에 속해 있고 사장생(四長生)내에 있으니 조상에 효도하는 상생의 효사상이 뚜렷함과 번창을 바라는 희생정신을 발견할 수가 있었다.
유골을 훌륭한 길지(吉地)에 보관하여 땅의 생기를 만나 후손에게 동기감응(同氣感應)으로 자손이 복되길 바라는 정성을 한눈에 볼 수 있어 좋아 보였다. 사생오행과 삼합오행은 천기가 동한다하여 자사로써는 비결(秘訣)로 혼자만이 쓰는 방법이라고 하니 믿어 보는 것이 좋을 듯하다.
그러나 우인의 생각으로는 토색이 홍황자윤하거나 오색을 갖추었으며 좌향이 일치되면 장풍득수한 자리로서 득기 발복할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보면서 하산길에 접어들었다.
어둠이 깔리고 날개접는 소리 먼 데서 들려오는 산중의 발걸음은 무거웠다. 땅거미가 깔릴 쯤이면 잡귀들이 모임을 갖고 자시에 각지로 임무수행에 들어가 활동하며 인시에는 자기집으로 돌아간다는 사실은 오직 심령학을 바탕으로 신과의 대화한 자만이 알 것이니 참고하여 주길 바랄 뿐이다.
이유없는 흔들림, 발바닥의 간지러움, 귓가에서 무엇인가 스쳐가는 느낌 등은 이에 속할 것이다. 산과 더불어 수십년의 세실이 신과의 대화에서 이루어졌다는 사이다.
심령학은 이론에 불과한 고학문이지만 경험은 학문에 바탕을 둔 근간을 기초로 하여 체험으로 대화하고 심적으로 상통되는 동질행위에서 비롯되는 것인 바 낮에는 그 행위가 나타날 수 없는 일이다.
시간별 행위로서 태양과 인간문명으로 인한 공포의 소리(쇠소리:비행기, 자동차 등)는 근접 불가하다는 것이다. 그리고 선신과 악신들은 항상 분류되어 군단을 이루면서 하부조직인 마을단위에서는 잡귀들이 권세가 당당하며 선신들은 최하위 조직을 군단위로 형성하여 군신관(郡神官)들의 지휘하에 일사분란하게 엄히 통제되고 있으며 사건사고시는 염라대왕에게 즉보하도록 되어 있는 것이 잡귀들과 다른 점이다.
여기에서 선의치 못하고 도적질하며 범죄에 이르게 하는 모든 행위는 잡귀들의 몫으로서 그 자손의 3대에 걸쳐 환란을 주어 불우한 삶이 되도록 하는 책무가 이들에게 있다.
천지자연개유보(天地自然皆有報)라고 하였으니 모든 것은 다 갚음이 있나니 두려워하라는 옛 성인의 말씀은 이에 근거한 것이라 생각되어 적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