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황혼이 오는가보다.
지난날 옛날을 빌려와 늙은이야기에 밤이 깊는다.
반백된 헝크러진 머리가 듬성이 속살을 내민다.
사발처럼 생긴 얼굴이 긴 골을 만들었구나.
담장 모탱이에서 밀회가 오늘 가져왔으니 그러나 모두는 밝히지 않으련다.
스쳐지나듯 비켜가는 여인과 나의 눈길 먼지낀 세월 사이로 달빛이 쏟아진다.
그 얼굴이 밉지 않아 근처에서 또 만났을 땐 사내의 옷자락이 바람도 없는데 흔들리는구나.
밤은 애츳하게 익어가고 연정은 어스름 달빛에 녹아가는데 하지에 근육이 풀리어 힘이 없음을 느낀다.
정글 속 얽힌 가지 마냥 헤어나지 못하고 영혼도 다시는 못 일어날 것만 같아 노랗게 익어가는 얼굴 다시는 더 이상 향기를 만들어 주지 못하는가 보다.
한때 힘찬 근육과 권력은 어디로 가고 얇은 손이 가벼워진다.
헛바닥은 가볍게 마음대로 짖거리던 거짓말이 들통이 나고 손바닥만한 밭에서 풋나물들이 삐뚤어진 입으로 점심 반찬이 되어가고 있다.
습기찬 얼굴에 일조량이 부족한가 늙음은 다 그렇다 하는데 쓸어낸 빗자루 같구나
아내의 악다구니 그 잔소리도 여지껏 고치지 못했으니 나는 벼락맞은 대추나무같이 타버려 속이 까맣구나 중심을 잃은 것에 대하여 아름답게 변명하지만 상한 마음은 떨어진 구두등만 바라보고 있다.
당신이 서 있던 자리에 눈이 쌓인다.
살이 연하니 칼은 손가락 위에서 헛돌고 있구나
이젠 늙어 힘없어 그렇게 마음 달래며 먼 이야기 속에서 겨울바람을 맞으며 혼이 꺼지지 않도록 굳은 땅을 밟고 살아갈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