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 중심에 터를 잡고 대대로 이어 내려온 노인들의 놀이터가 있다. 노인들은 시간이 되면 경로당에 모이고, 그곳에서 세월을 낚고 있다. 노인들에겐 전통놀이인 화투가 있고, 신문과 TV가 있으니 촌사람들의 시간은 이만하면 충족할 지도 모른다.
화투는 노인들이 오랫동안 즐겨온 소액의 금전놀이로 상대방의 꾐에 빠져들지 않으려 심기일전으로 정신일도하고 모든 것을 집중하는 놀이다. 일명 ‘나이롱뽕’이라고 부르는데, 늙어 힘이 없어도 손과 머리로 경쟁하니 더 이상 즐거움이 있겠는가.
많은 상대자와의 경쟁 속에서 그들의 성품을 발견하게 된다. 타고난 운명과 성품은 변하지 않아 평생 이어진다. 만사분기정 부생공자망(萬事分己定 浮生空自忙)이라는 말처럼 모든 일이 정해져 있어 어떤 일을 해도 흥망의 운세가 나타나는데 사람들은 부질없이 그 꿈을 이루려고 서두른다.
적은 금전놀이에도 기술과 판단이 필요하겠지만 오늘은 흐리고 내일은 밝은 날이 오듯 순환변천하는 것이 우주의 이치와 같고, 인간의 길흉과 같은 것을 모르고 속이려 하니 세상 만물 속에 가소로운 짓은 이젠 그만했으면 좋겠다. 규칙도 없는 잘못을 지적하면 궤변으로 이유를 늘어 놓으니 적반하장이라 놀이를 통해 인간의 모습을 관찰해 볼 수 있다.
질수의 연세가 대부분이니 사회적 전반에 걸쳐 축복만이 아닌 것 같아 씁쓸함을 더해준다. 중년의 상처와 노년 빈곤은 고령화 시대에 재앙이며 갈 곳 없는 외로운 삶일 것이다.
오늘은 만나보았는데 내일 못 보면 궁금해서 소식을 묻고, 그 답이 없으면 갈 곳은 두 곳밖에 없다 하니 생로병사 자연이치를 그 누가 막을 수 있겠는가. 평소 생각해온, 그렇게 살아온 나의 지론이 있다. 원칙대로 정직하게 살며 죄불용어사(罪不容於死, 죄가 워낙 커서 죽여도 오히려 부족함)라 죽어도 죄는 용서하지 않는다는 성인의 말씀을 잊지 않는다.
그리고 가끔은 어리석게 부족한 듯이 모르는 척 하며 앞서가는 행동은 하지 말며, 말은 적게 하고 경청하는 자세로 느리게, 그리고 조용히 살자는 것이다. 이론에 치우쳐 생활이 쉽게 적응되리란 매우 어려워 오늘도 모순으로 상대와 불편함을 만들고 내일 반성하니 이것이 인간의 모습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즐거운 놀이에 집중하면서 진행이 잘 이뤄지면 박장대소로 이어지고 방안의 공기도 따뜻해진다. 오늘도 그렇게 하루가 저물고 세월은 시속 80km 이상으로 달리고 있으니 석양에 지는 해를 바라보며 집을 향해 가고 있다. 내일도 이곳에 다시 올지 모르지만 오늘의 행복함을 간직하고 있는 것이다.
얼마 남지 않은 날 외롭게 쓸쓸히 가야만 하는 그날은 분명 올 것이다. 낙엽이 떨어져 바람이 불면 개울에 박히고 사라져 없어질 것이다. 인생의 종착역 앞에서 오늘도 경로당의 하루는 저물어 가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