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주민투표제 실시로 의회결정 번복 가능
□편집자주
본사가 주관한 ‘시민사회와 지방자치’ 강연이 지난 5월7일 저녁 수협웨딩홀에서 열렸다.
1990년대 들어 본격적으로 시행된 지방자치는 지역민주주의의 확장과 행정 서비스 향상 등 많은 발전을 가져왔으나 지역이기주의에 근거한 집단민원과 환경파괴를 가져온 난개발, 행정비용 증가 등의 부작용도 발생시켰다.
이에 본사는 6.13 지방선거를 한달여 앞두고 독일 아데나워 재단의 강사를 초청해 선진국의 지방자치를 배울수 있는 기회를 갖기 위해 ‘시민사회와 지방자치’라는 주제의 초청강연회를 개최했다.
한국언론재단 김영욱 박사의 통역으로 진행된 이날 강연회는 독일 에어크라트시 공무원으로 재직중인 우베 크뤼거씨가 독일의 지방자치에 대해 설명한 후 참석자들의 질문을 받아 답변하는 방식으로 진행됐으며 참석자들은 예정된 시간을 넘기면서 질문을 던져 지방자치에 대한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독일과 한국의 행정단위에 대해 비교하는 것으로 강의를 시작한 크뤼거씨는 한국의 행정구역이 국가, 광역자치단체, 기초자치단체로 구성된 것에 비해 “독일은 연방, 주, 지방자치단체로 구성돼 있으며 지방자치단체는 다시 한국의 군단위에 해당되는 상급자치단체와 면단위에 해당되는 기초자치단체로 구분된다”고 설명한 후 강연을 시작했다.
행정에 대한 통제는 회의 공개로
독일에서 의회의 모든 회의는 공개를 원칙으로 한다. 지방의회의 본회의나 상임위원회에서 열리는 대부분의 회의는 공개된다. 예산안 심의도 공개된다. 물론 비공개로 열리는 회의도 있는데 인사문제나 외부용역 발주 등 공개시 이해당사자의 영향을 심각하게 받을 수 있는 문제들은 비공개로 열린다.
크뤼거씨는 “시에서 발생하는 모든 사안에 대해 의회의 결정이 가능하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안은 행정기구에서 결정하고 시의회는 중요사안만을 의결한다”고 의회의 역할을 설명했다.
지방의회는 보통 1년에 평균 10회 정도 본회의가 열리며 일반적으로 직접적인 이해관계가 있을 경우 외에 주민들이 의회에서 열리는 회의에 참여하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개 지방 언론 기자들이 의회의 회의를 참관한다. 에어크라트시의 경우 3개의 지방일간지와 2개의 지방주간지가 회의를 참관한다고 한다.
회의공개의 의미에 대해 크뤼거씨는 “회의가 공개되고 어떤 사안에 대해 누가 찬성했고 누가 반대했는지를 주민들이 알아야만 한다. 그래야 선거에서 올바른 판단을 할 수 있다. 또한 회의가 공개돼 주민들이 사안을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 행정을 효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수단이 된다”고 밝혔다.
주민총회, 불만표출제 통한 의견수렴
“얼마전 에어크라트 시에서는 수영장 건설에 대한 주민총회가 열렸다. 이미 운영중이던 2개의 수영장이 노후화돼 보수해야만 했는데, 조사결과 2개의 수영장을 수리하는 비용이 새로운 수영장을 건설하는 비용보다 많이 들 것으로 판단돼 이 사안을 주민총회에 상정했다.”
지자체는 주민들의 의견을 수렴하는 방법으로 주민총회를 개최한다. 지자체에서 집행하는 사안이 다수 주민들에게 영향을 미칠 경우 작은 지역단위로 주민 총회를 개최하는데 이 자리에서 지자체가 수행할 사업에 대한 의견을 수렴한다.
주민총회를 통해 결정된 사항을 지자체가 실행할 법적인 의무는 없으나 지자체는 주민총회를 통해 사안에 대한 설명과 논의를 거쳐 의견을 모아나간다는 것이다.
또한 지자체의 집행사항에 대해 불만을 표출할 수 있는 건의제도가 있다. 이 제도는 주민들이 지자체의 집행내용에 불만이 있을 경우 시장에게 편지를 발송하고 시장은 그 불만내용에 대해 반드시 의회에 제안해야 하며 의회는 그 사안을 반드시 논의해야 한다. 이때 의회는 불만표출자가 요구하면 의회에서 발언권을 제공한다.
이러한 불만표출 제도는 시민단체에서 많이 사용하는데 시의회조차 공개적인 논의를 꺼리는 문제들에 대해 시민단체가 불만을 표출함으로써 의회는 반드시 그 문제를 다뤄야 하고 그로 인해 공개적인 논의가 가능해진다는 것이다.
참여하는 주민자치 - 주민투표제
“주민투표제도는 지방자치에서 주민들이 직접 시의회 결정에 참여하는 제도”라고 말한 크뤼거씨는 당진화력 발전소 건설문제를 예로 들며 주민투표제에 대해 설명했다.
의회에서 다수결에 따라 어떤 사안에 대해 합법적인 결정을 내렸는데 일부 주민들이 그 결정에 반대할 경우 주민투표에 의해 정당한 의회의 결정도 번복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사안에 대한 의회의 결정에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을 경우 반대하는 주민들이 시민단체를 결성한다. 이들은 세가지 절차를 거쳐 의회에 주민의견을 반영하는데 먼저 해당사안에 대한 찬반여부를 설문조사한다. 이 설문조사는 찬성과 반대만을 표시하는 것이어야 한다. 둘째로 반대하는 의견이 재정이 소요될 경우 해당 재정을 충당하는 방안을 제시해야 한다. 셋째로 반대하는 시민단체가 주장하는 내용에 동의하는 서명을 받아야한다. 이 반대동의 서명은 인구 5만인 에어크라트시의 경우 3천명 이상의 동의 서명을 3개월 이내에 받아 의회에 제출해야 한다.
시민단체에서 3가지 과정을 거쳐 의회에 제출한 반대의견에 대해 의회는 그 반대가 정당한 것인지를 논의해야 하고 반대가 정당하다고 인정될 경우 의회의 결정을 번복한다.
의회가 시민단체의 반대의견을 반영하지 않을 경우는 해당 사안에 대해 6주이내에 주민투표에 회부한다.
주민투표에서 투표자의 다수가 반대의견에 동의하고 동의자 수가 전체 유권자의 25% 이상일 경우 시의회의 결정은 자동으로 무효화된다.
크뤼거씨는 “주민투표는 주민들이 지방자치에 직접 참여하는 것으로 주민참여방법 중 가장 강력한 수단”이라며 “이러한 주민투표에 의해 적극적인 소수에 의한 일방적인 정책결정의 문제를 극복”하고 있다고 밝혔다.
반면 주민투표가 불가능한 사안도 있다. 세금·수수료, 지자체의 재정, 행정내부조직, 고용계약 등의 계약관련, 인사 등의 사안은 시민 반대의견을 제안할 수 없다.
크뤼거씨는 “이웃 시에서 공영주차장의 주차료를 없애는 문제에 대해 주민반대의견을 추진했으나 법원에 의해 불가 판정이 내려졌고, 시가 운영하는 유치원의 요리보조사 해고에 대해 주민반대의견이 제시됐으나 법원에 계류중에 있다”며 해당사안의 주민투표 가능여부에 대한 지자체의 판단과 시민단체의 판단에 차이가 발생하기도 한다고 밝히고 “자치단체와 시민들의 의견이 충돌할 경우 해당사안에 대한 최종판단은 법원에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저녁에 열리는 의회와 전문성 확보
“지방의회의 회의는 오후 4시부터, 상임위원회 회의는 오후 5시부터 열린다”
에어크라트시의 시의원과 시장은 주민들의 직접 선거로 선출된다. 또한 시장은 시의회의 의장이 된다.
시의회 의원으로도 활동한 적이 있는 크뤼거씨는 “시의원은 명예직으로 보수가 적기 때문에 시의원 모두 각자의 직업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모든 회의는 저녁에 개회된다”고 밝혔다.
시장과 시의원은 정당추천이나 개인자격 혹은 시민단체 후보로 출마가 가능하며 개인자격이나 시민단체 후보로 출마할 경우 160명 이상의 주민들로부터 추천을 받으면 가능하다.
정당추천을 받아 후보로 등록할 경우는 후보자가 정당에서 민주적 방법을 통해 추천받은 것을 증명해야만 후보등록이 가능하다고 한다.
선거비용과 관련해 크뤼거씨는 “에어크라트시의 시장은 공무원의 아들이며 연방정부의 총리도 가난한 집안의 자손”이라면서 선거에 드는 비용은 홍보물 인쇄와 선전비용 정도이며 그 정도는 시민단체 등에서 충분히 부담이 가능한 비용이므로 입후보자의 재정적 여력은 고려할 문제가 아니라고 말했다.
일반 주민이 명예직으로 시의원이 되기 때문에 의회가 행정을 통제하기 위해서는 전문성을 확보해야 하는 문제가 발생한다.
독일의 지방의회는 전문성을 확보하기 위해 의회 직속기관으로 우리나라의 감사원과 유사한 기구를 가지고 있다. 이 기구에는 회계사, 건설전문가 등 각 분야의 전문가들로 구성돼 의회의 전문성을 담보한다.
이러한 의회 직속의 기구에 대해 시장은 일체 지시할 권한이 없으며 이 기구는 의회 산하의 공무원 조직으로 구성된다.
지방자치 위한 기본권리
“지방자치단체는 자치권을 가지고 있으며 자치권이란 지자체가 지역의 모든 일에 대해 자율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권리를 가지는 것을 말한다.”
크뤼거씨는 “지자체가 자치의 원칙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섯가지의 기본적인 권리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첫째, 지역의 모든 일을 스스로 처리할 권리를 가진다. 헌법이나 상위 법률이 규정하고 있지 않은 사항이라면 지방자치단체가 지역의 모든 일에 대해 스스로 규정을 만들 수 있다.
“개가 사람을 물어 상처를 입힌 일이 있었다. 이런 사안이 발생할 경우 지방의회는 조례 제정을 통해 개 소유주에게 개를 묶는 줄이나 개 입마개 설치를 의무화한다.”
둘째, 지방의회는 자기영역에 대한 입법권을 가진다. 지방의회는 상급법률을 침범하지 않는 범위안에서 스스로 법률을 만든다.
셋째, 지자체는 독립된 인사권을 가진다. 지자체에서는 필요한 인력을 자율적으로 결정하고 고용규모도 스스로 결정한다. 상급자치단체나, 연방정부에서 인사에 영향력을 행사하게 되면 이는 곧바로 지방자치에 대한 침해와 같다. 인사문제를 지자체가 스스로 결정하지 못한다면 지방자치의 핵심이 손상되는 것과 같다.
넷째, 도시계획을 스스로 수립하고 추진하는 권리를 가진다. 지방자치단체가 스스로 관할 지역의 자연보호구역, 주거지역, 상업지역 같은 도시계획을 결정한다.
다섯째, 재정에 대한 주권이 자치단체에 있어야 한다. 이것은 지자체 스스로 세금을 거둘 수 있는 권리를 말한다. 지자체는 토지세, 가게 등에 부과하는 영업세, 개를 기를 경우에 부과하는 세금 등을 징수하는데 이렇게 새로운 세금을 부과하는 것과 함께 연방에서 징수하는 소득세의 일부를 지원받는다.
크뤼거씨는 “지자체에서 재정적자 극복이 최우선 과제이며 재정에 대한 주권이 없다면 지방자치를 논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말했다.
“국가에서 지자체에 지원하는 재정 중 사업의 목적성을 띠고 지원하는 재정은 순수한 지자체의 재원이 아니다”라고 말한 크뤼거씨는 “진정한 지자체에 대한 재정지원은 지자체가 자유롭게 사용할수 있는 재정”이라며 재정 확보가 현재 독일 지방자치의 가장 큰 문제라고 밝혔다.
크뤼거씨는 독일이 지방자치의 이상국가는 아니며 부정적인 사례들도 나타나고 있음을 밝히면서 “여러가지 제도적 조치에도 불구하고 부정부패를 완전히 근절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문제는 부정부패의 빈도와 규모를 줄이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자체의 적극적인 공개와 주민들의 참여를 주된 내용으로 한 이날 강연회에서 크뤼거씨는 “참석자들의 깊은 관심에 감사하다”며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다시 당진을 방문해보고 싶다”는 소감을 밝히면서 강연회를 마쳤다.
질의응답내용
=독일에도 선거공탁금이 있는지, 지방의회의 주된 활동시간은?
-선거와 관련된 공탁금제도는 없다. 다만 연방의회에서 일정 득표율이상을 획득하는 정당에 대해 국가에서 재정을 지원한다. 지방의회는 주로 저녁에 열린다. 의회는 오후 4시 이후에, 의회 상임위원회는 오후 5시 이후에 활동한다. 의원들이 직업을 가지고 있어 낮에 활동하는 것은 어렵다.
=당진군의 재정자립도는 20%를 간신히 넘는 수준이다. 독일의 재정자립도 수준과 재정확보에 대한 방안은?
-지자체별로 차이가 있지만 에어크라트시의 경우 재정자립도는 35~40% 수준이다. 60~70%정도가 국가 지원 재정인데 국가에서 기업활동과 관련된 영업세나 산업관련세금을 지속적으로 감면하고 있어 지자체의 세원이 줄어들고 있다. 현재 독일도 세금감면에 따른 지자체의 세수 감소에 대한 논쟁이 진행되고 있다. 지자체는 재정확보의 방안으로 경기에 민감하지 않은 세원을 확보하는 노력을 하고 있다. 아스피린 제약회사인 바이엘사가 위치한 이웃 레버크젠시는 바이엘사가 미국에서 8천만 마르크의 손해배상판결을 받은 후 2천만 마르크 정도의 세원이 감소해 심각한 재정난을 겪기도 했다. 따라서 경기의 흐름에서 벗어나는 세원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가에 대한 노력이 진행중이다.
=독일에서 의회의 예산심의는?
-예산안은 의회에 상정되기 4주 전에 주민들에게 공개된다. 주민들에 대한 공개와는 별도로 각 언론사에도 예산안이 보내진다. 주민들은 예산안에 대해 검토하고 의견을 나타낼 권리가 있으며 주민들이 의견을 제출하면 의회는 반드시 그 의견에 대해 논의해야 한다.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의회의 모든 회의는 항상 공개된다.
=중앙정부의 국가시책사업이 지자체와 충돌할 경우는 어떻게 해결하나?
-도로, 고속전철 등 중앙정부의 사업이 진행될 때 지방에 손해가 발생하면 법적인 제소가 가능하다. 중앙정부의 사업에 대한 건설허가와 관련된 법적 공방도 자주 있다. 지자체는 반대하지 않으나 주민들이 반대해 지자체를 강제하는 경우도 자주 있다. 따라서 도로건설 등 국가적인 사업의 경우 10년 이상이 소요되는 경우가 많다.
=지방의회의 구성과 회의 일수는?
-인구 5만정도인 에어크라트시의 경우 지방의회 의원수는 40명이며 시의회는 1년에 평균 10회 정도 열리고 상임위원회는 안건에 따라 수시로 열린다. 시의원과 시장은 직선으로 선출되며 시장이 시의회 의장을 겸임한다.
=지방자치단체 공무원 신분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해외강연이 가능한가?
-외국강연을 다닐 경우 개인휴가를 사용한다. 일정이 길어 휴가일수에서 모자랄 경우 지자체에 무급휴가를 신청한다. 이번 강연도 개인휴가를 이용해 진행하는 것이다.
=세수 확보를 위한 지자체의 방안은?
-독일도 지자체별로 세수확보를 위해 기업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하다. 그 과정에서 과도한 세금감면 등으로 기업유치 자체가 문제가 되기도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