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1회 스승의 날 특집
인터뷰가 이루어지기까지...
후박나무의 짙고 두터운 향기 속에 앉아 있다. 늦은 저녁, 꽃이 달린 실팍한 후박나무 가지를 쥐고 사무실에 들어섰을 때 동료들의 눈길은 일제히 내 손으로 모아졌다. 모두들 지쳐있었을까? 돌아가며 후박나무 꽃의 향기를 맡는 동료들의 꽉 죄어진 얼굴이 금새 너르게 펴졌다. 향기에 젖어든 그들 중 누군가가 생각난 듯 물어왔다. 그런데 어디서 꺾어왔어……?
마감날이 가까워지고 있었다. 매년마다 돌아오는 5월15일 스승의 날을 맞아 스승다운 스승을 취재하고 싶은 마음만 조급해질 뿐 취재원은 좀처럼 섭외 되지 않던 중이었다. 정말로 스승다운 스승들은 삶의 지표로서만 멀리서 반짝일 뿐 별쭝나게 드러나지 않는 법이 아니던가. 지레 지쳐 조급함이 체념으로 옮아갈 즈음 미리 연락을 해놓은 이한복(당진중)교사로부터 한 통의 전화가 왔다. 미호중학교에 근무하고 있는 이인학 교사를 취재해보는 게 어떻겠냐는 내용이었다. 앞 뒤 잴 것 없이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뚜……뚜……몇 번의 신호음 뒤로 이인학 교사의 밝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러나 끝내 허탈하게 전화를 끊어야 했다. 자신보다 더 스승다운 스승들이 많으니 그분들을 찾아보라는 것이었다. 숨어있고 싶은 사람을 드러내놓는 것 또한 죄를 짓는 것임을 익히 느껴온 터라 더 이상 강요할 수가 없었다.
이거 허탕쳤군. 맥이 탁 풀려 피곤이 몰려왔고 책상에 그대로 엎드려버렸다. 두어 시간을 졸았던가. 밤 아홉 시가 넘은 시간, 눈을 뜬 후 무슨 정령에 이끌린 듯 바로 수화기를 들었다. 이교사가 받자마자 무턱대고 달려들었다. 그런 내가 안쓰러웠을까? 그는 체념하듯 취재에 응해주었고 다음날 급히 약속을 잡았다. 결국 나는 내 것이 되어야 마땅했던 체념을 그의 몫으로 만들어버린 셈이었다. 그 인터뷰는 그렇게 해서 이루어진 것이다.
당진과 미호중학교의 첫인상
“물은 가장 낮은 곳으로 흐르죠. 하지만 모든 것들에게 생명을 불어넣는 것 또한 바로 물이에요. 그렇다면 가장 낮은 곳에 있는 것이 과연 가장 낮은 것일까요? 항상 겸손하게 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달리 생각하면 이런 마음도 교만에서 비롯된 거겠죠.”
취재에 응하면서도 이것이 자신에 대한 교만인지 염려스럽다는 그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죄를 짓는 것 같아 내심 부끄러웠다.
공주가 고향인 그는 처음으로 당진에 발을 들여놓았던 기억을 잊을 수가 없다고 했다. 교단에 설 꿈을 안고 당진에 온 그는 천의로 가는 막차를 탔다. 버스는 눈이 푸덕지게 쌓인 겨울밤의 비포장길을 달리다가 ‘황새재’라 불렸던 언덕의 마루에서 멈추었다. 어떤 개구쟁이가 커다란 눈덩이로 길 한가운데를 떡하니 막아놓았던 것이다. 어이, 어떤 녀석이 장난 한번 심하게 쳤네, 허허허! 버스기사는 두말 않고 눈덩이를 치우며 너털웃음을 짓더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여유로울 수가 없었습니다. 미끄러운 눈길을 달리다 난데없이 봉변을 당했으니 육두문자가 나올 만도 한데 말이죠. 참 살기 좋은 곳이란 생각이 들었죠. 개구쟁이와 넉넉한 버스기사 때문에 그 번거로웠던 첫행보는 오히려 좋은 추억이 됐죠.”
그의 눈에 비친 미호중학교의 첫풍경은 아름답기 그지없었다. 그때 당시 학교 뒤 100m까지 들어왔던 서해 바닷물, 그 차디찬 수면 위에 빛줄기로 길게 누워 있는 달빛, 그리고 온통 눈으로 덮인 순백의 설경...
“학생들은 하나의 밭입니다”
1979년 2월14일, 처음으로 미호중학교의 교단에 선 그는 화단이 없는 교정에 화단을 만들기 시작했다. 토요일이면 산에 올라 자생화를 채취해 교정에 심었던 것이다. 혼자 심고 가꾸는 외로운 작업이었으나 그는 멈추지 않았다. 그의 그런 별스런 작업이 아무렇지도 않은 익숙한 일상이 될 즈음 학생들과 동료교사들이 그의 곁으로 모여들기 시작했다. 소나무로만 둘러싸였던 밋밋한 교정은 해를 거듭할수록 꽃으로 물들어갔고 일년 사시사철 은은한 향기가 가시질 않았다. 그해 그는 학생들을 모아 스카우트를 조직했고 지역봉사활동을 시작했다. 농촌마을의 작은 학교에 청소년활동을 맨 처음 심어놓았던 것이다.
“학생들은 하나의 밭입니다. 어떤 양분을 주느냐에 따라 옥토가 될 수도, 황무지가 될 수도 있는 밭이죠. 그러나 주의할 것은 학생들은 대상물이 아닌 존중받아야 하는 인격체라는 점입니다. 그것이 결여되면 교육은 아무런 의미가 없죠. 항상 노력했습니다. 지식이 아닌 지혜를, 오만이 아닌 봉사를, ‘나’를 넘어서 ‘너’와 ‘우리’를 가르치려고 말입니다.”
하지만 그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학생들은 점점 줄어들었다. 농촌인구 감소와 더불어 일어난 현상이지만 위장전입을 하면서까지 읍내와 외지의 큰 학교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늘어났던 것이다. 그는 떠나는 농촌이 아닌 돌아오는 농촌을 만들기 위해 지난 91년 4H회를 조직, 학생들에게 꽃가꾸기, 환경보전활동, 봉사활동 등을 지도해오고 있다. 가슴속에 차곡차곡 쟁여진 농업과 농촌에 대한 애착의 발로였던 것이다. 학생들이 화분 하나를 가꾸는 것에서 생명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을, 그리고 머리가 아닌 몸으로 농업의 소중함을 스스로 익히는 것이 그의 작은 바람이다. 지(智), 덕(德), 노(勞), 체(體)의 이념과 그의 지도아래 성장한 미호중학교의 4H풍물패는 지난 ’01년 2월7일 전국에서 학교 4H대상을 수상했고 이어서 ’01년 11월8일 한국4H가 주최한 농촌사랑·자연사랑 사이버백일장에서 ‘4H회 발전을 위한 실천방안 및 사례’라는 주제로 전국대상을 수상하기에 이르렀다.
‘봉사’ 페스탈로치와 그의 교육철학
“학생들은 모두 저의 자식들입니다. 학생들을 위한 마음, 무엇보다도 그것이 선행되어야 합니다. 저는 잘 가르치는 선생보다는 봉사하는 선생이 되고 싶습니다. 가르침이 아닌 봉사, 그게 저의 교육철학이죠. 학생들에게 봉사하는 것이 학생들의 삶을 더 윤택하게 할 수 있다는 믿음 때문입니다.”
문득 그는 페스탈로치의 일화를 얘기해주었다. 고무줄놀이를 하는 아이들 사이로 한 젊은 사람이 무엇인가를 줍고 있다. 그가 주운 것은 아주 작은 유리조각. 그러나 만약 그가 작은 유리조각을 줍지 않았더라면 아이들의 발바닥은 상처를 입었을 것이다. 그가 해준 얘기 속엔 그의 교육철학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여느 교사들은 아이들에게 가르쳤을 것이다. 유리조각을 줍고 놀이를 계속하라고. 그러나 학생들을 위해 봉사하는 마음, 그것이 페스탈로치로 하여금 유리조각을 소리 없이 줍게 만들었을 것이다. 그가 말없이 교정의 화단을 가꾸고 스카우트와 4H회를 조직해 봉사활동을 이끌었듯이.
지난 92년 그는 단국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리고 어긋나는 학생들에게 다가서기 위해 ’00년 수원대 교육대학원에서 상담심리학을 전공했다. 그는 앞으로 국문학을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그가 갖고 있는 자격증만도 13개에 달한다. 살아있기 위해, 꾸준히 노력하기 위해 그는 배움을 멈추지 않을 거라고 했다. 그 멈추지 않음이 학생들에겐 하나의 지표가 될 것이다.
그에게 어떻게 그토록 활동적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의 답은 간단했다. 나이는 오십이지만 항상 열네살 청소년이라고. 어떻게 그토록 학생들에게 열성적일 수 있느냐고 물었다. 이번 역시 간단한 대답이었다. 미쳐야한다고. 학생들에게 미쳐야 한다는 것이었다. 미친놈! 그는 이렇게 자신을 표현하고 있었다. 좋아하는 대상에 미치는 것은 얼마나 힘든 일인가. 학생들에게 미친 그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해 보였다. 그의 가장 큰 재산은 바로 그 미침일 것이라는 생각. 만약 학생들이 그를 외면하더라도 그는 학생들을 향한 짝사랑, 그 지독한 미침을 끊지 않을 것이다.
그때, 그에게 말은 안 했지만...
이 글을 끝내려면 다시 후박나무 얘기로 돌아가야겠다. 인터뷰를 끝내고 그와 함께 교정을 걸었다. 걷다가 발길이 멈춰진 곳, 그가 가꾸고 있는 작은 화단이었다. 편백, 목백일홍, 청단풍나무, 목련, 해바라기, 코스모스, 호박, 붓꽃, 분꽃, 아주까리, 주목나무, 참나리꽃, 모감주나무 등 27가지의 식물들이 한데 어울려 떡잎을 틔우고 있기도 했고 이미 줄기가 굵어져 깊은 뿌리를 내리고 있기도 했다. 그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이 후박나무였다. 하얀 꽃들이 듬성듬성 달린 후박나무를 멀거니 바라보고 있는데 그가 갑자기 나무를 타기 시작했다. 나무줄기를 밟고 올라선 그는 팔을 길게 뻗어 꽃이 달린 가지 하나를 후둑 꺾었다. 의외의 일을 당하기도 했거니와 그 모습이 위태로워 보여 어어, 입만 벌리고 있는데 아무 일 없다는 듯 나무에서 내려선 그는 꺾은 가지를 건넸다. 선물이라고. 좋은 인연을 맺었으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지금, 그가 건넨 후박나무가지는 살풍경한 사무실의 한쪽 벽에 고정되어있다.
그때 그에게 말은 안 했지만, 그 거침없는 행동에서 문득 깨달았다. 그를 스쳐간 무수한 학생들에게, 그가 그토록 미쳤던 그의 자식이며, 친구며, 동생들에게 나에게 했듯 소중히 가꿔온 꽃나무 하나씩을 건네지 않았을까. 그 학생들도 지금 나처럼 두터운 후박나무꽃 향기 속에 있지 않을까, 하고....
이희철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