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오가는 길섶에 아카시아 향기가 그윽하다. 해마다 되풀이되는 자연현상 앞에서 올해도 아카시아 향기를 우리에게 선물하신 대자연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만남’이라는 낱말을 떠올려본다.

해마다 만나는 것이 어디 아카시아 향기 뿐이며, 아침 저녁으로 그 향기를 실어다 주는 것이 바람 뿐이랴. 우리가 또한 이와 같아서 산다는 것이 그저 만남의 연속이 아닌가.

‘만남’을 생각하다보니 작년에 장학지도 나갔을 때의 일이 다시 떠올라 아직도 얼굴이 뜨겁다. 신출내기 장학사로써 설레임과 떨림으로 찾은 학교에서 10여년 전에 가르쳤던 제자를 만났다.

지정수업을 공개한 선생님이 바로 그 제자라는 것을 안 순간 반가움보다 과거의 내 모습을 더듬어보기 급급했다. 10여년 전 교단의 내 모습을 더듬어보니 정말 별 생각이 다 들었다.

만남이라는 것이 이처럼 조심스러운 것이며, 사람을 가르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내게 새삼 일깨워 준 일이었다. 그런 까닭에 금년에 그 선생님으로부터 받은 스승의 날 축하 메시지가 너무도 고맙고 반가웠다.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만남에도 여러 종류가 있다. 아카시아 향기처럼 모두에게 즐거움을 주는 만남이 있는가 하면, 덮어도 덮어도 풍기는 구린내처럼 모두를 역겹게 하는 만남도 있다.

머지 않아 우리를 대표하여 일 할 새로운 얼굴들을 우리 손으로 뽑게 될 것이다. 그리하여 6월에는 고장의 새로운 일꾼들을 만나게 될 것이고, 12월에는 나라의 새로운 일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아카시아 향기가 해마다 되풀이되는 것은 생각할수록 즐겁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요즈음 신문지상에는 웬 구린내가 그렇게 되풀이되고 있는지 대자연의 섭리 앞에서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6월이 오면 우리 산하에는 뻐꾸기 울음도 맴돌 것이다. 그 또한 해마다 되풀이되는 일이지만 뻐꾸기 울음을 기다리면서 마음 한 편으로는 묘한 생각에 젖어본다. 제 집을 짓지 않고 남의 둥지에 알을 낳아 양육을 떠맡긴다는 얍삽한 뻐꾸기가 생각나기 때문이다. 부디 우리가 뽑을 일꾼들이 그런 얌생이 같은 짓을 하는 사람이 한명도 없기를 바란다.

아니 바라기에 앞서 잘 선택해야 할 것이다. 그리하여 여러 해 후 여기저기 새나오는 구린내를 우리 손으로 뽑고 우리 코로 맡는 어리석음을 되풀이하지 말고, 바람에 날리는 아카시아 향기와 같은 신선함을 맡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