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공(公)성근 공덕비 중·보수
1920년대 신평시장 개설하는 등 지역개발·봉사에 헌신
신평시장번영회, 해석문·받침돌 세워 면사무소 광장에
죂신평죃 1920년대 신평시장을 최초로 개설하고 도로확장 등 지역개발과 빈민구제에 헌신했던 고 이성근 옹의 공덕비가 중·보수됐다.
신평시장번영회 정근옥 회장을 비롯한 회원들은 신평파출소 주변 등 있던 이성근 옹의 공덕비와 시혜불망비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비문이 마모되어 그의 공덕을 후대들이 알 수 없을 지경에 이르자 지난해 12월부터 비문 해석작업과 받침돌 건립에 나서 지난 31일 준공식을 가졌다.
비문은 육안으로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마모돼 탁본작업을 거쳐야 했으며 전 면천향교 안태순 전교와 이승용 명예면장이 비문판독을 맡아 해석문을 완성했다.
번영회는 이 해석문을 안내판 형식으로 만들어 비석 옆에 별도로 세움으로써 어린 학생들도 쉽게 내용을 알아볼 수 있도록 했다.
고 이성근(1896~1973) 옹은 신평면 한정리 출신으로 구합덕천주교회 부설 매괴학교를 졸업했으며, 서울을 자주 왕래하면서 시장개설에 솔선, 1926년 신평시장을 최초로 개설한 인물로 알려지고 있다.
항상 작인의 이익을 우선시한 양심적인 사음(마름)이었던 것으로 알려진 그는 개설한 신평시장을 활성화 하기 위해 도로를 확장함은 물론, 송악 전대리에서 신평 금천리 ‘새맞이’를 연결하는 나무다리 공사비 1,030원(지금 돈으로 3억여원)을 내놓았고, 인천항 왕래 정기여객선의 취항을 성사시키는 한편, 구합덕천주교회 건축비로 1,000원을 희사하는 등 지역개발에 큰 발자취를 남겼다.
뿐만 아니라 신흥리 주민들에게 빈민구제용 식량을 공급하고 신송초등학교의 전신 간이학교 부지를 희사했으며, 1930년 한정리에서 신송리로 이주하면서부터 그곳 빈민들에게 수년간 곡식을 분배해주는 등 어려운 이웃돕기에도 헌신적으로 나선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이 옹은 그당시 성인남성이라면 흔히 받쳐입던 조끼를 한번도 입지 않을 정도로 검소한 인품을 지녔던 것으로도 전해지고 있다.
그의 이같은 공덕을 기려 1931년 신흥리 주민들이 송덕비를, 신평시장 주민들이 시혜불망비를 세우기에 이르렀다.
번영회 정근옥 회장은 공덕비의 중·보수 준공식에서 이공성근을 가리켜 “말보다 실천으로 사랑을 가르치신 분”이라고 회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