챔피언. 챔피언은 우승자 혹은 선수권 보유자를 뜻하지만 꼭 그 타이틀이 붙어 있어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홍수환, 박찬희, 유명우, 장정구, 문성길, 조인주. 그들은 현재 진행형 챔피언들이다. 우리의 아련한 기억 속에 희망과 도전의 얼굴들이었던 그들이 그 옛날 흑백TV 화면 그대로 아로새겨져 있기에.

‘친구’로 한국 영화사의 새로운 장을 열어 젖히고 조폭영화 신드롬을 몰고온 곽경택 사단의 새로운 영화 ‘챔피언’이 개봉을 앞두고 있다.

영화 ‘챔피언’은 지난 1982년 라스베가스에서 라이트급 세계챔피언에 도전하다 유명을 달리한 비운의 복서 ‘김득구’의 꿈과 사랑과 도전에 대한 이야기다.

배우 유오성과 감독 곽경택은 영화 ‘친구’에서 배우와 감독이 아닌 ‘친구’로 다시 태어났다. 영화 ‘챔피언’은 이 두 사람의 완벽한 합작품일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곽 감독은 챔피언을 구상하면서 주연으로 이미 유오성을 낙점해 놓았다. 그것은 이미 ‘친구’에서 입증했 듯 탁월한 선택임이 분명하다. 그의 탁월한 캐스팅 덕으로 우리는 ‘헝그리 복서’로 투영된 유오성의 각진 얼굴에 아로새겨진 견고한 슬픔을 다시 볼 수 있게 됐다.

음영이 뚜렷한 얼굴에서 불이 뿜어나오듯 튀어나오는 유오성의 강렬한 눈빛은 열혈남아의 카리스마를 넘어선다. 그가 아니면 누가 바다와 태양을 바라보며 이글거리는 눈 속에 꿈을 태우다 죽어간 헝그리 복서의 눈빛을 연기할 수 있단 말인가. 또 청년의 웃음으로 투박한 사랑과 꿈을 향한 도전을 표현할 수 있단 말인가.

넉달 간의 러닝과 몸 만들기, 부상의 과정을 거쳐 유오성은 완벽하게 복서 김득구로 거듭 태어났다. 배를 곯아가며 연극을 시작했던 배우 유오성은 오직 몸과 꿈만으로 복서를 시작한 ‘김득구’와 비슷한 면이 있어 ‘복서 김득구’로 분한 모습이 자연스럽다.

유오성이 타 배우들과 다른 카리스마로 관객들에게 어필하는 것은 그 눈빛 뿐만이 아니라 배고프지만 미래를 꿈꾸는 세상의 모든 젊은이들의 모습을 닮았기 때문일 거다. 유오성의 연기는 그가 한 말 그 한마디로 압축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고독’이다.

곽경택 감독은 한 영화잡지와의 인터뷰에서 “죽은 김득구가 나를 선택한 느낌이다”라고 했다. 영화를 만드는 것이 숙명적이라는 이야기다.

곽 감독은 17살 때 친구집에 놀러가 마치 투쟁처럼 싸우는 그(김득구)의 경기를 보고 받은 느낌을 영화에 옮기고 싶었다. 그리고 마침내 고대하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것이다. 그는 이 영화를 만들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에서 여러 '징조'를 느꼈다고 고백했다. 마치 ‘챔피언’을 만들라고 ‘친구’를 흥행시켜준 것 같다는….

그래서 그는 영화 ‘챔피언’ 작업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는 배고픈 시대를 잊지 말자는 계몽영화를 찍고자 한 것은 아니었다. ‘헝그리 정신’이 미덕이었던 어려운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의 고생과 좌절, 그리고 도전 덕에 현재의 우리가 있지 않느냐고 자연스럽게 말하고 싶은 거였다.

곽경택 감독은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슬픈 영화에 80년대의 정서를 담은 풍경과 함께 그때의 유머와 사랑을 슬며시 끼워 놓는다. 12라운드 복싱 몽타주신이 챔피언을 꿈꾸었던 한 실존 복서의 꿈을 사실적으로 담은 리얼리티라면 살가운 러브스토리와 80년대를 담아낸 친근한 화면은 달콤한 그 옛날의 향수에 가깝다.

과연 순박한 물감 유오성과 감성의 화가 곽경택이 담아낼 화폭엔 어떤 그림이 펼쳐질 것인가. 곽 감독의 말처럼 ‘웃다가 보니 울고 있는’ 그런 즐겁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영화인지 관객들은 꼭 가서 확인할 일이다.

월드컵에 열광하는 지금처럼 그 옛날 가난한 시절에도 복싱에 열광하고 울고 웃었었다. 사람을 치고 박는 세련되지 못한 ‘무식한’ 스포츠라며 멸시하더라도 나는 아직도 권투를 좋아한다. 그 순박했던 시절의 열정과 도전이 몹시 그립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투를 벌이며 가난 속에서 꿈을 키웠던 챔피언들은 아직도 여전히 나에겐 챔피언들이다.

우리가 영화 ‘챔피언’에서 기다리는 건 아마 챔피언을 꿈꾸며 로드웍을 하던 ‘헝그리 복서’들을 영화에서나마 만나고 싶기 때문이 아닐까?

오마이뉴스(www.ohmynews.com)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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