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은이 / 이청준

-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 가 격 / 5,000원

이필용

- 호수시문학회원

- 송악면 가학리

『당신들의 천국』은 학부시절 한창 소설에 빠져있을 때 읽은 책이다. 그닥 흥미로워 보이지는 않았지만 이 시대 최고의 글쟁이라는 ‘이청준’이란 작가의 이름만 보고 선뜻 고른 책이었다. 그러나 책을 몇 장 넘긴 후부터는 도저히 손에서 뗄 수 없을 만큼 빠져들고 말았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그 내용이 생생히 내 머릿속에 남아있는 것은 끔찍한 병을 소재로 다루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이야기를 풀어가는 작가의 뛰어난 구성력 때문이었다. 하늘의 저주와 형벌이라고 여겨져 온 나병. 그리고 그 나병에 걸린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섬, 소록도. 『당신들의 천국』은 이 소록도를 배경으로 전개된다.

이야기는 소록도에 새 원장이 부임하면서부터 시작된다. 현역 군인 원장인 조백헌은 불신과 배반으로 가득 차 있는 死者의 섬을 천국으로 만들 결심을 하고 섬사람들에게 자신도 낙원 건설에 신명을 바칠 것을 원생들(나병 환자들) 앞에 약속한다. 그러나 나병환자들의 반응은 냉담하기만 하다. 섬사람들은 전임자들의 ‘동상의 욕망’을 다시 생각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섬을 거쳐간 원장들이 모두 그랬듯이 전임 원장이었던 주정수 원장은 천국을 건설한다는 명분하에 섬사람들을 혹사시켰고, 자신의 동상까지 세우게 되었으나 그 동상 앞에서 살해되고 만다. 조원장은 자신의 동상을 위해 천국을 만들지 않을 것을 스스로 다짐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소박한 생각은 처음부터 잘못된 것이었다. 사실 조 원장의 그러한 신념자체가 주정수 원장의 동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또 낙원에 대한 그의 인식 자체도 섬 사람들과 크게 엇갈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조원장은 과거를 거울삼아 자신의 동상을 거두어두고 원생들의 원천적인 내면의 문제를 치료하기 위하여 일차적으로 축구를 활성화시킨다. 500여회의 시합을 통해 원생들의 열기는 고조되고, 군 선발팀이 되어 도 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축구시합에서 이겨 돌아왔을 때, 섬 사람들이 선수들과 한 덩어리가 되어 소록도의 노래를 목이 터져라 합창하는 감격의 순간에 그는 섬사람들과 어울리지 않았다. 노래를 부르며 한데 엉켜 울고있는 원생들의 정황에 섞이지 않고, 상기된 얼굴에 어렴풋이 미소를 짓고 있는 조원장의 모습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미 동상은 만들어지고 있었다.

조 원장이 소록도 나병환자들을 위해 일을 한다는 생각은 스스로가 이미 동상을 마련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다. 그것은 환자와 환자 아닌 사람간의 차이 의식에서 문둥이와 하나가 되지 못하는, 시혜자와 시혜를 받는 자와의 관계가 성립되었기 때문이었다. 조 원장이 이 섬을 위하여 더 많은 일을 하려고 하면 할수록 결국 그 자신의 동상을 세우는 일에 가까워지는 것이었으므로 이 사업은 처음부터 실패를 담보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결국, 그는 소록도를 떠나고 만다.

이 글에서는 뒷부분의 이야기와 몇몇 주요 인물들을 언급하지 않았다. 원장과 섬사람들의 갈등이 어떤 형태로 결말을 맺게 되며 어떤 문제를 시사해 주는지를 발견하는 일은 독자가 경험해야 할 몫이다. 또한 이청준의 소설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해피엔딩’(희망의 가닥을 남겨놓은 것 뿐, 진정한 의미의 해피엔딩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의 소설을 단순히 해피엔딩으로 읽지 말고 권력을 가진 자와 못 가진 자의 관계로 확대시켜 봄으로써 여전히 남아있는 근본적인 사회문제에 대하여 생각해 보는 것도 이 책을 읽는 독자들의 과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