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법 밤바람이 쌀쌀해져 옷 속을 적신다. 오늘도 이집 저집 초인종을 누르실 어머니의 모습에 마음이 저려온다. 어머니의 어깨 가득히 들릴 무거운 책자만큼이나 나의 가슴은 무디어져, 눈물이 흐른다.
“다녀왔습니다.”
고요함이 흐른다. 예전처럼 어머니의 따스한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네모난 교실에 갖혀있던 날 반갑게 맞아주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갑자기 서러워져서 눈물이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친구 어머니께서는 간식도 해 주신다던데, 왜 나는 적막이 흐르는 집에 밤 늦게까지 홀로 있어야 하는지 억울했다. 그래서 수화기를 들어 다이얼을 돌리다가 그냥 끊어버렸다. 오늘도 나를 위해서 일하시는 어머니께 차마 투정을 부릴 수 없었다.
어머니가 없는 집을 홀로 지킨지도 벌써 수개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는다.
요즘들어 어머니의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진다. 차마 어머니께 전하지 못한 말이 있었다.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미안하다고 꼭 말하고 싶지만 입에서 맴돌기만 할뿐 차마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밤늦게 들어오셔서 피곤 하실텐데 일찍 일어나 아침을 차리시고, 온갖 투정을 부리는 나를 항상 걱정하시는 어머니, 그런 어머니와 나의 마음이 통하는 문을 열어줄 열쇠는 어떤 것일까? 한참을 고민한 뒤 그 열쇠는 ‘사랑’ 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언젠가 어머니와 함께 쇼핑을 간 적이 있었다. 버스에서 내려 지하도를 건너려는데 초라한 차림의 한 노인이 길거리에 쭈그리고 앉아 구걸하는 모습이 보였다. 어머니는 그 노인에게 다가가서
“힘내세요” 하면서 지폐를 쥐어주셨다. 그리고 나는 보았다. 그 노인의 얼굴에서 흐르는 물방울을..... 그 순간 나는 마더 테레사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이 가는 곳마다 사랑을 전파하세요. 먼저 자신의 집에서 그 일을 실천하세요. 당신의 자녀를, 당신의 아내와 남편을 사랑하세요. 그리고 그 다음엔 옆집에 사는 사람들을 사랑하세요. 어떤 사람이든지 당신을 만나고 나면 더 나아지고 더 행복해지게 하세요.
신의 사랑이 당신을 통해 표현 되도록 하세요. 당신의 얼굴에, 당신의 눈에, 당신의 미소속에, 그리고 당신의 따뜻한 말 한마디 속에 신의 사랑을 표현하세요.“
어머니는 마더 테레사의 말 처럼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했다. 서로 처음 보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고 따뜻한 한마디를 용기내어 할 수 있게 하는 ‘사랑’이란 이름의 열쇠를 나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이해했다.
흐르는 소리는 들리지 않지만 여전히 흐르고 있는 어머니의 사랑을. 어머니의 모습에서 상처를 주지않고, 소리없이 사랑을 전하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지를 배웠다.
여행을 하다 길을 잃으면, 북두칠성을 차고, 바다를 항해하다 길을 잃으면, 희망의 빛을 뿌리는 등대를 찾으면 된다. 그렇다면 우리가 마음의 길을 잃었을 때 무엇을 보고 길을 찾아야 할까?
회색 빛 재만 남은 우리의 마음속에서 도대체 무엇을 본보기로 해야하는 것일까? 나는 감히 어머니라고 말하고 싶다. 어머니라는 등대를 내 마음속에 세워두고서 아픈곳을 치유하고, 위로받고, 그 위대한 사랑을 배울 것이다.
어둔 밤바다 같은 인생에서 표류할 때마다 마음속에 세운 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빛을 바라보며 ‘세상’이라는 끝없는 바다를 항해하려 한다.
등대가 빛을 잃어가면, 내가 그 등대의 등대가 되어 사랑의 빛을 비출 것이다.
어머니! 힘들어도 조금만 참으세요. 제가 등대가 될 그날까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