격랑의 현대사 그 복판에 서서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이 서린 격랑의 세월 속에 민주주의와 사회진보를 향한 더딘 발걸음을 걸어왔던 한국 현대사. 그 거센 물줄기의 한복판에 서서 보다 더 나은 사회, 더불어 사는 사회를 꿈꾸며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들.

신철영(53세)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하 경실련) 사무총장의 인생은 역사의 한복판에서 결코 순탄치 못한 삶을 살아야 했던 수많은 사람들의 인생역정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유신독재의 폭압에 맞서 민주화를 부르짖던 학생운동과 고통받는 노동자들의 아픔을 함께 나누고자 했던 노동운동, 이제는 구체적 대안과 실천 속에 사회개혁을 추구하는 시민단체 활동. 30여년을 한결같이 살아온 그의 삶은 민주주의와 사회진보의 기나긴 여정을 걸어온 우리의 현대사이기도 하다.

그를 만나러 서울 신문로2가 경실련 사무실을 찾았다. 시민운동의 맏형 역할을 해왔던 경실련을 실질적으로 대표하는 사무총장의 집무공간은 상근자들의 다른 책상과 다름없이 책과 서류에 둘러쌓여 있는 사무실 한쪽 귀퉁이의 조그만 책상 하나였다.

원형탁자에 널려있는 신문들을 정리하고 손수 차를 내오는 그. 군데군데 서리가 내려앉은 듯한 머리결에 날카로운 인상과는 달리 편안하게 맞이해 주었다.

유신독재에 맞선 학생시절

그의 고향은 당진군 신평면 신송리. 그곳에서 태어나 10살까지 살다가 아산으로 이사한 그에게 당진은 어머니 품 같은 아득한 그리움으로 남아있다.

삽교호 방조제를 막기 전이라서 겨울철이면 논마다 가득 채워놓은 물로 온통 얼음판이던 들판에서 썰매타던 기억과 기러기나 고니를 잡던 일들, 남원포에서 똑딱선으로 인천을 왔다갔다 했던 기억들.

1970년 서울대 기계공학과에 입학한 그는 학생운동 서클인 ‘산업사회연구회’에 가입하면서 30년 사회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유신체제에 대한 사회적 반감이 커지면서 73년 11월 서울대 문리대를 시작으로 학생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됐고 이 과정에서 그는 서울대 공대의 학생시위에 함께 하며 유신독재체제에 저항했다. 학생시위가 잦아든 후 조직화된 학생운동을 고민하던 사람들과 함께 민청학련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하던 그는 이듬해 2월 영장을 받아 군에 입대했다.

외면할 수 없는 노동자들의 고통

‘조국근대화’라는 박정희식 개발독재의 강력한 산업화 정책은 농촌과 지방의 수많은 사람들을 서울로 내몰았고 이들은 사회의 밑바닥에 던져진 채 극심한 노동착취에 시달렸다.

자신의 몸을 불살라 개발독재의 그늘에 가려진 이들의 비참한 현실을 알린 전태일의 분신은 대학생과 지식인들의 각성과 현실 참여를 독려했다.

학생운동 시절 현실참여를 위한 노동운동을 지향했던 그룹에서 활동하며 공장실습도 하고 노동운동에 관심을 가지고 있던 그는 영등포산업선교회에 들어가 본격적인 노동운동의 길에 들어섰다.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7~80년대만 해도 저임금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는 노동자들이 대부분이었고 그 당시 노동조합은 주로 여성노동자들이 많았는데 노동조합에 대한 탄압이 심해 제대로 활동도 못했던 때였죠”

배운 것도, 가진 것도 없던 노동자들의 억압받고 소외당하는 현실을 목도한 그는 차마 그런 모습들을 쉽게 떨칠 수가 없어 이들과 함께 하는 삶을 결심하게 됐다.

88년까지 만 10년 동안의 영등포산업선교회 활동을 마무리 한 그는 87년 이후 전국에 우후죽순처럼 건설되던 노동조합들을 지원하기 위해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활동에 참여했다.

인생의 전환점, 국회의원 선거 출마

십년이 넘는 노동운동의 과정을 통해 노동운동이 제대로 되려면 노동자 정치세력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는 91년 민중당 건설에 참여해 현재 김문수(한나라당 국회의원)와 함께 민중당 노동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사실 민중당이 잘 될 거라는 생각은 별로 없었지만 사람은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생각했죠. 평소 노동자 정치세력화의 필요성을 말했던 바를 책임지기 위해 민중당 창당에 뛰어들었습니다”

민중당 창당에 뛰어든 그는 당을 책임지는 사람들이 선거에 나서기로 한 당의 결정에 따라 92년 부천에서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했으나 9.1%의 득표에 머물며 낙선했다. 민중당은 전국 50개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전국 득표율이 2%가 채 안돼 정당법에 따라 정당해산을 당하게 됐다.

줄곧 사회운동의 길을 걸어왔던 그에게 총선 출마는 새로운 경험으로 다가왔다.

“선거를 치르면서 여러 사람들을 만나보니 그동안 내 활동의 범위가 너무 좁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를 바꾸기 위해서는 좁은 울타리 안의 사람들 속에 갇혀있는 것보다 폭넓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활동해야 된다는 생각이 들었죠”

총선에서 현실의 벽을 절감했던 그는 사회를 바꾸려면 고담준론하면서 앉아있기보다 사고의 틀부터 바꿔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됐고 결국 국회의원 선거 출마는 그의 인생에서 새로운 출발점이 됐다.

구체적 현실에서 대안을 찾는다

총선 패배의 쓰라림 속에서 그는 노동운동, 민중운동보다 폭넓게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길을 찾아 헤매다가 대학서클 선배인 서경석 목사의 권유를 받아 경실련 활동을 시작했다.

경실련은 87년 6월 민주화운동을 계기로 빠른 속도로 발전하기 시작한 시민사회의 힘을 모아 사회개혁을 이루고자 하는 사람들에 의해 조직됐으며 시민들의 참여와 행동을 통해 ‘경제정의’를 실현하여 공정하고 부패없는 민주복지국가를 이루기 위한 시민운동으로 언론의 집중적인 관심을 받았다.

선거 이듬해 부천에서 경실련을 건설하는 일에 매달린 그는 94년 부천지역 경실련을 정식으로 결성하고 본격적인 시민운동에 나섰다. 그 뒤 95년 서경석씨 등이 주도한 개혁신당에 참여했던 몇 달 동안의 외유를 제외하고 그는 계속 시민운동단체에서 활동했다.

경실련 상근자로 활동하다 지난해 11월 경실련 내부의 공모와 상임집행위원회 경선을 거쳐 사무총장에 선출된 그는 “기존 운동에 만연한 거대담론 중심의 추상적인 논쟁은 생산성이 없는 공리공론에 그칠 가능성이 크다”고 문제를 지적하며 “실사구시의 정신으로 구체적 현실을 기반으로 구체적인 문제들에 대한 현실적인 대안을 제시하고 실현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가 경실련을 통해 꿈꾸는 사회는 거대자본이 좌우하지 않는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사회, 경쟁에서 탈락한 사람들도 정상적인 사회활동이 가능하게 만들어주는 사회, 환경적으로 지속가능한 개발이 가능한 건강한 사회, 남북관계의 평화적 해결을 바탕으로 통일로 나가는 사회, 부정부패가 없는 사회이다.

서로의 차이가 모여 전체를 이룬다

보다 더 나은 사회를 꿈꾸는 일을 멈출 수 없는 그. 앞으로도 시민단체 활동을 계속할 생각이라는 그는 일반시민들이 더 많이 참여하는 시민운동, 풀뿌리 시민운동을 만들어 나가는 것이 자신의 일이라고 말했다.

서로의 차이를 차이로 인정하지 못하고 옳다 그르다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인 토론과 마찰을 가져와 사회적인 낭비를 초래할 뿐이라고 말하는 그. 서로가 다르다는 것과 그런 차이들이 함께 모여 전체를 이룬다는 것을 인정하고 서로의 차이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남을 인정하고 배려할 수 있게 된다고.

화이부동(和而不同) ‘서로 어울리되 함부로 부화뇌동하지 않는다’. 더 나은 사회를 위한 꿈꾸기를 멈추지 않는 그가 항상 스스로에게 끊임없이 던지는 화두다.

신철영씨가 걸어온 길

■학력 및 이력

-1950. 5. 8. 당진군 신평면 신송리 출생

-충남 아산 배방초, 온양중, 천안고, 서울대 기계공학과 졸

-1978.7~1988.7 : 영등포산업선교회 노동상담·교육간사

-1989~1990.2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사무국장

-1990.2~1990.11 : 전국노동운동단체협의회 공동의장

-1991.2~1992.4 : 민중당 노동위원장

-1995.11~ : 부천생활협동조합 이사장

-1998.2~1999.2 :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조직위원장

-1999.3~ : 부천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대표

-1999.9~ : 제3기 노사정위원회 상무위원회 위원

-1999.10~ : 노사정위원회 노사관계소위 위원장

-2001.11~ : 제5대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사무총장

-2002.8~ : 방송위원회 선거방송심의위원(위촉)

■저서

-「만화근로기준법」, 1990

-「노동운동과 신사회운동의 연대」(공저), 1995

■논문

-독일에서 배워야할 몇가지 경제정의, 1994

-시민운동과 시정참여, 경인지역 산업화와 삶의 질, 1996

-실업대책에 있어서 NGO의 역할, 금융위기와 NGO의 대응(II), 19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