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부상조의 길은 열립니다. 비록 타향에서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지만 고향의 공기를 마시며 함께 호흡했던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 의식 아니겠습니까.

인생의 황금기 대부분을 길거리에서

송산초등학교 43회 졸업생들과 송악중학교 18회 졸업생들, 그리고 전국의 한의사들 중에 이범용(47)씨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봐야 한다. 송산초등학교와 송악중학교의 총동문회에 꾸준히 참여했던 사람이라면 으레 “아, 그 선배”, 아니면 “아, 그 후배” 하고 그의 얼굴을 떠올릴 것이다. 30대 전후 인생의 황금기 10여년을 동창회와 한의사협회의 ‘제자리 찾기’에 쏟아 부은 사람, 그는 그렇게 한창 나이의 대부분을 길거리에서 보냈다.

그는 함께 사는 사회를 꿈꾸는 사람이다. 또한 ‘두레’와 같은 더불어 사는 삶의 가치를 존중하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가 이렇게 작은 모임의 일류화와 활성화에 열정적으로 기여하게 된 것은 10년 전, 1992년 10월13일 햇빛 좋은 가을날 세상을 떠난 전처의 유지(有志) 때문이었다.

“대추와 밤, 감 등 햇과일이 막 나올 때였습니다. 유방암이 폐암으로, 다시 골수암으로 번져 투병을 하던 아내는 한달간 서울을 떠나 석문면에 있는 초락도 기도원에서 마지막 시간을 준비하고 있었죠. 눈부신 가을햇살이 창문으로 짓쳐 들어오는데 얼굴이 부석한 아내가 저에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이제 어느 정도 기반을 닦았으니 고향의 선후배들이 모일 수 있는 자리를 마련해주라고. 그리고 웬만큼 자리를 잡으면 든든한 버팀목으로 뒤를 받쳐주라고 말이죠. 그 말을 남기고 10일 후에 아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정미면 덕마리에 적을 두고 있던 그의 전처 고 김수자씨는 5년간의 투병생활 끝에 그에게 의미심장한 말을 남기고 그렇게 눈을 감았다. 그의 아내 김씨는 그가 자신의 길에서 한 걸음 비껴 서서 남을 돌아보기를 원했던 것이다. 더 애쓰고, 더 올바른 가치관으로 여러 사람을 아우르는 공동체적인 삶을 그에게 희망했던 것이다.

아내의 유지를 받들어 공동체적 삶을 위해

아내의 장례를 치른 후 그는 매주 주말이면 당진의 송산면 도문리에 있는 아내의 무덤과 고향을 둘러보면서 지난날의 자신을 반추했다. 그리고 아내의 유지를 받들어 동창들의 구심점이 되겠다고 결심했다. 그 결심은 곧바로 송산초 43회 동창회와 송악중 18회 동창회를 창립하는 데에 이어졌고 1992년부터 8년간 송악중 18회 동창회장을 역임하며 건실한 동문회를 뿌리내렸다.

그의 관심과 열정은 그의 모교인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교와 경희대 한의과대학까지 뻗어나갔다. 그는 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교 제36회 동창회장과 총동문회 부회장을 각각 1999년부터 올해 5월까지, 1992년부터 현재까지 맡고 있다. 또한 1988년부터 2년간 경희대 한의과대학 28회 동창회 회장과 서울시 한의사회 23·24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함께 공부했던 사람들, 같은 땅에서 함께 고향의 흙을 등에 업고 자란 사람들이 이익과 거래가 아닌 순수한 마음으로 한 자리에 모이는 것은 지역이기주의나 패권주의와는 전혀 다른 의미가 있습니다. 서로의 얼굴을 보는 것만으로도 상부상조의 길을 열어주기 때문이죠. 비록 타향에서 뿔뿔이 흩어져서 살고 있지만 고향의 공기를 마시며 함께 호흡했던 사람들이 모이면 서로 돕고 살 수 있는 길이 열립니다. 그것이 바로 공동체의식 아니겠습니까.”

작은 사회의 활성화를 위한 노력

송산초 43회 졸업생들과 송악중 18회 졸업생들을 모두 찾아내 동문회에 가입시킨 후 그는 2001년 8월에 송산초등학교 졸업기념앨범을 제작했다. 이 졸업앨범엔 1969년 2월13일 졸업 당시의 앳된 동창들 사진과 현재의 사진이 나란히 실려있다. 이 졸업앨범은 동창회와 모임이 있을 때마다 그가 직접 찍어서 정리한 것들이다.

그가 만든 앨범 속의 30여년 세월의 무게가 지워진 소년들과 소녀들의 얼굴은 비만 오면 요란한 소리를 내곤 하던 양철지붕과 발이 닳도록 다녔던 비포장 등교길, 초가집 한쪽 벽면에 붙어있는 마지막 한 장의 빛 바랜 달력을 떠오르게 한다.

그의 작업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동네 이장과 각 기수회장들을 만나서 인천·경기지역에 거주하는 2천여명의 재경 동문들을 찾아내 주소록을 작성했다. 송산초교 재경 총동문회(회장 성용우) 부회장 겸 사무총장을 맡고 여러 해 동안 재경 동문들의 큰 울타리를 만든 것이었다.

또한 젊은 동문들의 참여를 이끌어내기 위해 ‘iloveschool.co.kr’싸이트에 모교의 각 기수별 방을 만들고 동문회의 여러 소식들을 올려놓았다. 가상의 공간을 통해 자신과 직접 관련 있는 고향과 사람들의 소식을 날마다 접할 수 있다는 장점은 그를 컴퓨터와 디지털카메라의 전문가로 만들기에 충분했다. 지난 8년 동안 그가 직접 제작하고 올린 동문회 소식이며 주소, 명단에서부터 사진과 동영상 등은 젊은층의 참여를 높이는 효과를 내고 있다.

“내년 4월27일엔 송산초 개교 80주년 기념행사를 모교에서 열 계획입니다. 10년간 애쓰면서 찾아낸 동문들이 한 자리에 모이겠죠. 잔치다운 잔치를 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 행사만 잘 끝낸다면 아내의 유지를 어느 정도 이뤘다고 생각합니다. 그 다음엔 후배들에게 잘 물려주고 든든한 버팀목이 돼야죠.”

다사다난한 삶을 좇는 사람

그는 1975년 경희대 한의대에 입학한 후 틈날 때마다 당진에 내려와 한방의료봉사를 지속적으로 실시하고 있다. 학창시절, 서울의 내노라 하는 학원의 부탁을 뒤로하고 고향의 학원에서 후배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기도 했다. 대학교 때는 학생운동에 참가해 민주화를 외쳤으며, 전국 9개 대학 3천여명의 한의대생들의 집단 유급사태가 불거지던 지난 1993년부터 4년간 약사법 개정 추진위원회 한의사협회 대표로 첨예한 분쟁의 현장에 있기도 했다. 1998년부터 지난해 5월까지 서울시한의사회 23·24대 회장과 대한한의사협회 차석부회장을 맡으면서 한방의 세계화를 위해 고심했고, 현재는 한방을 국가적 수출산업으로 육성시켜 국가적 이익과 전세계적 보건수준을 향상시키려는 비전을 품고 있다.

“일류는 따로 없습니다. 내가 일류를 만들면 나 자신이 바로 일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나라는 올바른 스승을 필요로 합니다. 참 스승과 큰 스승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습니다. 앞으로는 소외되고 박해받는 집단이나 사람들이 자립해서 일어설 수 있는 사회적 여건을 마련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저는 세계 제일의 복지국가를 꿈꿉니다.”

얘기가 깊어지던 중 그의 다른 면모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의 인생 행로를 따라가다 보면 그의 심연을 읽을 수 있다. 개인의 안위를 누리며 편히 살 수도 있었건만 굳이 다사다난했던 삶을 좇았던 그의 생각은 이렇다. 나’가 아닌 ‘우리’, 더 넓게는 세계를 위해, 더 높은 가치를 실현하고 더 넓은 범위를 아우르는, 작은 선구자로 큰 일에 초석을 쌓는...

그는 현재 서울 성북구 길음1동에서 유명한의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가족으로는 재작년에 재혼한 부인 김혜영씨와 자녀 이호수(22)·이호남(19)남매를 두고 있다. 그는 “가정보다는 밖과 사회생활에 무게를 두었던 자신을 이해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함을 전하고 싶다”며 긴 대화를 마무리했다.

이범용 원장이 걸어온 길

■학력 및 이력

-1956.7.17 : 당진 송산 출생

-송산초(43회)·송악중(18회)·중앙대학교 사범대학 부속고등학교(8회) 졸

-1981.2 : 경희대 한의과대학(28회) 졸

-1996.7 : 고려대 언론대학원 최고위과정 수료

-1998.2 : 경희대 학의학 박사 학위 취득

-1999.2 : 서울대 보건대학원 보건의료정책 최고위과정 수료

-2000.9~현재 : 경희대 한의과대학 외래교수

-2002.7~현재 : 포천중문 의과대학 한의학교실 외래교수

■일반 경력

-1988.5~1994.3 : 서울시한의사회 이사

-1996.4~1996.7 : 대한한의사협회 부회장 겸 비상대책위원장

-1998~현재 : 한의학 과학기술연구원 객원연구위원

-1999.5~현재 : 밀레니엄연구원 객원연구위원

-1998.4~2001.5 : 대한한의사협회 차석부회장, 서울시한의사회 23·24대 회장

-2002.4~현재 : 대한 한의사협회 부회장

-1999.7~2001.8 : 민주평화통일자문위원

-2001.9~현재 : 대한올림픽위원회 의무위원

■한의협 대표

-1993.3~1996.7 : 약사법 개정 추진위원회 위원, TV·라디오·신문사 기자회견·인터뷰 등 한의협 대표

-1999.4~현재 : 한의학 임상연구센타(한국한의학연구원) 설립 추진 위원

■동창회 경력

-1988.3~1990.2 : 경희대 한의과대학 28회 동문회 회장

-1992.12~1999.2 : 송악중 총동문회 부회장·18회 동문회장, 송악중 졸업 25주년기념식 준비위원장

-1992.2~현재 : 중앙대 사범대학 부속고교 총동문회 부회장

-1999.4~2002.5 : 중앙대 사범대학 부속고교 36회 동창회장·졸업 25주년 기념식 준비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