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만은 기반시설이 아닌 ‘제5차 산업’이다”

남해안의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전남 광양은 제철소와 컨테이너 부두를 잇따라 유치하면서 21세기에 접어든 현재 세계적인 물류중심항으로 새롭게 발돋움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컨테이너 전용부두로 기록될 광양항은 현대화된 최신 장비 및 시설, 그리고 5만톤급 4선석의 부두에 96만 TEU를 처리할 수 있는 하역능력을 갖추고 있다.

특히 모든 화물과 선박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처리하는 최첨단 항만관제 시스템은 광양항의 자랑이다.

더욱이 2011년 개발사업이 완료될 경우 광양 컨테이너 부두는 총 33선석의 동시 접안시설에서 연간 하역능력 932만TEU를 처리하는 초대형 항만으로 도약할 전망이다.

이렇듯 지금은 비교도 안될 정도로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지만 사실 광양항의 출발은 당진과 거의 비슷했다.

어업과 농업으로 생계를 꾸려가던 작은 어촌마을에 제철소가 입주하고 이에 따라 원료와 제품을 하역하기 위한 항만시설이 들어서면서 무역항으로 발전한 것까지 광양과 당진은 놀랍게도 일치한다.

그러나 비슷한 여건에서 출발했음에도 불구하고 지금의 두 항구는 너무나도 큰 차이를 보이고 있다.

과연 어디에서 이 차이가 발생했을까?

바로 이 점에서 의문은 시작됐다. 이 의문에 대한 해답을 찾기 위해 ‘당진시대’는 지난 11월7일부터 2박3일간 광양시 현지를 취재하고 돌아왔다.

이번 기획이 ‘당진항’의 미래를 조망하는데 작은 도움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광양항의 미래, 컨테이너 부두

광양항의 출발은 여천 석유화학단지를 지원하기 위한 1969년의 삼일항 개항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당시는 인근의 석유화학단지를 지원하기 위한 목적이었기 때문에 항만은 지역사회에서 별 다른 위치를 차지하지 못했으며 주민들도 관심이 없었다.

그 다음으로 광양항의 역사에서 중요한 계기는 1986년 광양제철소의 물동량 수송을 위한 제철소 부두 개장이었다.

작은 어촌마을에 불과했던 광양은 1981년 11월4일 포항제철의 제2제철소 입지로 확정되면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게 된다. 제철소 단지가 본격 개발되면서 공장을 운영하기 위한 인력이 속속 유입됐고 지역경제는 새롭게 탈바꿈하기 시작했다. 광양제철이 가동되면서 원료와 제품을 하역하고 선적하기 위한 항만시설이 필요했고 이에 따라 제철소 부두가 1986년 개장했다.

그러나 이 당시 부두는 단지 제철소 운영에 필요한 물동량을 처리하기 위한 것이었던 만큼 주민들의 별 다른 관심을 끌지 못했다.

광양항이 본격적으로 알려진 계기는 1998년 컨테이너 부두의 개장이었다. 1987년 시작된 컨테이너 부두 개발사업은 광양제철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던 지역경제에 새로운 미래상을 제시했다. 국가시책으로 부산항의 물동량을 분산하고 물류중심지로 육성하기 위해 추진된 컨테이너 부두는 지역주민들을 비로소 항만에 대해 눈 뜨게 했다.

이제 컨테이너 부두는 주민들에게 지역을 대표하는 새로운 산업이자 미래를 보장하는 열쇠로 인식되고 있다.

천혜의 지리적 조건과 최첨단 시설

광양항에는 방파제가 따로 없다. 만(灣)이라는 지리적 조건에다 부두 앞 바다에 묘도라는 섬이 위치하고 있어 자연 방파제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광양항은 웬만한 악천후에도 정온수역을 유지할 수 있기 때문에 안전한 작업이 가능하다.

또한 남해의 난류 영향을 받은 양호한 기상조건과 함께 수심 20m의 천연수로로 인해 천혜의 지리적 조건을 갖춘 항만으로 평가받고 있다.

현재 운영중인 광양항 1단계 컨테이너 부두는 84만m²의 면적에 56만3천m²의 장치장, 그리고 안벽길이 1천4백m의 시설로 5만톤급 컨테이너 선박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다. 이 부두는 연간 120만 TEU(Twenty foot Equivalent Unit: 20피트 규모의 컨테이너)의 컨테이너를 처리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대한통운과 허치슨, 한진해운, 세방기업 등의 해운업체에서 운영하는 광양 컨테이너 부두는 Maersk-Sealand, CMA, APL, YangMing 등 27개의 세계적인 선사가 중국, 북미 및 유럽항로를 비롯한 전세계적인 네트워크 서비스망을 구축하고 있다. 또한 현대화된 최신장비 및 시설 그리고 최첨단 항만관제 시스템과 EDI System을 적용한 운영시스템으로 모든 화물과 선박에 대한 정보를 온라인으로 처리할 수 있다.

광양항 1단계 컨테이너 부두는 99년 42만 TEU, 2000년에 70만 TEU, 2001년에 90만 TEU의 컨테이너 화물을 처리하는 등 신설항만임에도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다.

승선체험도 마다않는 담당 공무원

신설항만임에도 이토록 짧은 시간에 전국의 항만도시가 부러워하는 제일의 컨테이너 항으로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일까?

이에 대해 대부분의 항만 관계자들은 시장의 마인드와 자치단체의 적극적인 지원과 투자를 꼽는데 주저하지 않는다.

과연 어떠한 노력이 있었기에 이와 같은 성장이 가능했단 말인가.

인구 14만명의 광양시민들을 책임지고 있는 광양시청. 제철소의 입주로 인근 골약면과 태금면, 옥곡면 일대가 한때 동광양시로 분리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으나 1995년 도·농통합에 의해 다시 광양시로 통합된 후 중동에 현재의 청사가 위치하고 있다.

취재를 위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시청 문화홍보실. 멀리 충남 당진에서 온 손님을 홍보담당인 이삼희씨는 반갑게 맞이했다.

약속된 취재를 위해 잠시 기다리고 있는 동안 이 담당과 얘기를 나누었는데 뜻밖에도 그는 항만정책담당 출신이었다.

이 담당은 “전국에서 항만을 낀 자치단체들은 한번씩은 꼭 방문한다”라며 “당진군에서도 방문한 바 있으며 특히 평택시의 경우 관계 공무원과 의원 등이 1년에도 몇 차례씩 방문하곤 한다”고 말했다.

본격적인 취재에 앞서 잠깐 들은 내용이지만 항만에 대한 광양시의 지원과 투자는 과연 전국 항만관계자들의 부러움을 살만했다.

실제로 이 담당만 해도 항만정책담당으로 재임할 당시 승선체험과 현지체험의 일환으로 직접 컨테이너 선을 타고 중국의 천진과 상해를 방문하기도 했다고 한다. 직접 배를 타고 화물의 선적과 하역과정을 지켜보면서 선사들의 입장에서 과연 무엇이 필요하고 어떠한 점이 요구되는지 피부로 느낄 수 있었다고 한다.

이윽고 본격적인 취재를 위해 방문한 항만물류과에서 항만에 대한 광양시의 인식과 의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었다.

전국 최초 항만행정계 설치

바쁜 업무시간임에도 황학범 과장과 윤영학 담당은 반갑게 맞아주었다.

그동안 항만관계로 전국에서 문의하러 온 손님들을 많이 접해본 까닭인지 타 자치단체의 사정을 비교적 잘 이해해줬으며 성의껏 설명하려고 애썼다.

광양에 대규모 항만이 들어서고 운영되기 시작한 시점은 광양제철이 입주하면서이다. 그러나 이 당시 제철소 부두는 단지 원료하역과 제품선적을 위한 시설이었으며 주민들도 부속 항만으로만 여겼기 때문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광양제철은 세계 제일의 제철소였기 때문에 한국에서 가장 많은 물동량을 처리했지만 주민들은 이를 피부로 느끼지 못했다.

항만에 대해 광양주민들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갖기 시작한 시점은 ’80년대 중반 광양을 부산항의 물동량을 분산하고 물류중심지로 개발하겠다는 정부의 발표가 있고 나서부터이다. 이때부터 광양시와 지역 상공회의소 등 지역 각계의 노력이 시작됐다.

처음에는 지역 상공회의소 등에서 주관해 광양항의 미래와 지역개발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연구용역을 의뢰하고 세미나를 개최하는 등 항만에 대한 기초 인식부터 시작해야 했다.

초기 항만관련 사업은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시작됐으나 지방자치가 출범하면서 자치단체가 전면에 나서게 됐다.

당시 광양항 개발에서 주요한 역할을 맡았던 이정태 현 해왕해운 부사장은 “처음 지역주민들을 설득하고 민간단체를 중심으로 활동했으나 민선시대에 이르러 자치단체가 앞장서면서 개발이 가속화되기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주민들에 의해 선출된 민선시장은 관선시장과 차원이 달랐다.

컨테이너 부두가 본격 개발될 경우 광양제철보다도 지역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클 것이라고 판단한 자치단체는 정부에 지역의 입장을 본격적으로 전달하기 시작했다. 이를 위해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전국 최초로 항만행정계를 신설하는 등 적극적인 의지을 갖고 지원책을 마련했다.

당시 항만행정계장으로 출발해 현재 항만물류과장을 맡고 있는 ‘광양항의 산 증인’인 황 과장은 처음 막막한 가운데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황 과장은 “처음 이 업무를 맡았을 때만 해도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하기만 했다”며 “항만업무가 전적으로 국가업무이기 때문에 자치단체에서 할 일은 거의 없어 보였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항만 관계자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어려운 전문용어 때문에 반 이상 알아듣지 못하는 경우도 허다했다고 한다. 또한 항만에 관한 업무를 관할하고 있는 중앙정부도 광양시의 이 같은 움직임에 대해 자신의 권한에 대한 도전이라고 생각했는지 전혀 도움을 주지 않았다.

여수지방해양수산청에서는 자치단체가 고유업무도 아니면서 항만업무에 관여한다며 견제하기 일쑤였다. 이 때문에 청장과 시장의 관계가 서먹해지기도 했다고 한다.

심지어는 정부관계자가 여러 사람이 모인 공식 석상에서 쓸데없는 소리를 한다며 시장에게 망신을 주기도 했다고 한다.

그러나 광양시는 포기하지 않았다.

항만에 관한 자치단체의 업무는 ‘항 세일즈’

항만업무는 기본적으로 국가업무이다. 따라서 지역에 항만이 건설된다고 해도 이와 관련된 자치단체의 행정적 업무는 거의 없다.

광양시에 전국 최초로 항만정책계가 설치됐지만 막상 해야 할 일이 떠오르지 않았다. 자치단체가 할 일이라고는 항만건설에 따른 도시계획상의 건물과 부지, 공유수면 매립, 상하수도 업무 정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정도의 업무는 이전의 다른 부서에서도 가능한 일이었다.

결국 전국 최초의 항만정책계는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낯선 업무를 기획해야만 했다. 난관에 부딪힌 항만정책계가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자치단체의 항만관련 업무는 행정적 수요에 따른 소극적 개념이 아니라 항만의 부가가치를 극대화할 수 있는 적극적인 개념이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항만 활성화를 위한 지원책과 함께 지역의 지도자들과 주민들을 네트워크로 구성하기 위한 방안 등이 구상됐다.

또한 항만을 주로 이용하는 선사나 화주 등 주요 고객의 고충과 요구를 적극 수렴해서 이를 전달하는 항만관련 기관에 대한 접촉창구를 자임하기도 했다.

이러한 끊임없는 도전과 실험정신으로 광양시 항만정책계에서 얻은 결론은 ‘Port Sales’(항 세일즈)라는 개념이었다.

서울 코엑스 부두설명회,

중국 항만 로드쇼 참가

광양시에서 시도된 ‘항 세일즈’라는 개념은 우리나라 항구 역사상 최초였다.

그 전까지만 해도 부산항이 남해안 전체 물동량의 95%를 차지했기 때문에 선사나 화주들은 다른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그러나 광양시가 ‘항 세일즈’ 개념을 도입하면서 적극적인 홍보에 나서자 상황은 급변하기 시작했다.

부산항으로 향할 상당량의 물동량이 광양항으로 방향을 바꾸기 시작했다. 이 때문에 부산항으로부터 많은 견제를 받기도 했지만 항만의 질을 한단계 높이고 선주나 화주에 대한 서비스를 향상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황 과장은 “자치단체의 항만부서는 정부가 하지 않는 일을 스스로 찾아야 한다”며 “무엇보다 ‘마케팅’ 전략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광양시는 지난 11월14일 서울 코엑스에서 컨테이너 부두 설명회를 개최했다. 또한 중국에서 열릴 예정인 항만 로드쇼에도 참가할 계획이다. 황 과장은 지난 11월15일 영남대에서 열린 동남아 물류기지 육성 관련, 세미나에 패널로 참여하기도 했다.

광양항을 관할하고 있는 해양수산부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항만은 더 이상 사회간접자본이 아니다

광양시에서는 항만을 더 이상 사회간접자본(SOC)으로 보지 않는다. 단지 산업단지를 지원하기 위한 기반시설이 아니라 스스로 막대한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주력산업으로 보고 있다.

황 과장은 항만을 별도로 ‘제5차 산업’이라고도 부른다.

1천500 TEU급 컨테이너 한 척이 부두에서 하역할 경우 4억5천만원의 부가가치가 떨어진다. 또한 직접적인 효과보다 간접 효과는 더 크다. 2·3차 산업에 미치는 영향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경제학적으로 보통 매출원가의 6.5~9%를 물류비용으로 보는데 우리나라는 현재 16.5%이다. 반으로 줄여야 경쟁이 가능하다는 얘기다.

중앙정부에 대한 끊임없는 설득작업 ‘결실’

좀처럼 권력을 놓지 않으려는 중앙정부에 대해 광양시는 항만개발을 위해 끊임없는 설득작업을 벌였다.

해양수산부에서 근무하는 직원들과 모두 안면이 있을 정도로 자주 방문해 광양항에 대한 예산지원을 건의했다. 그 뿐만 아니라 기획예산처와 재경부, 산업자원부, 건교부 등에도 수시로 방문해 지원을 요청했다. 실제로 컨테이너 항만의 배후부지 확보를 위해 광양시는 해양수산부와 5년간 치열한 신경전을 벌여야 했다.

또한 관세자유지역 지정을 위해 전문업체에 용역을 의뢰하고 이를 바탕으로 해양수산부 장관을 설득해 재경부장관에게 지정 요청을 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노력으로 결국 2001년 11월16일 관세자유지역으로 확정돼 올 1월1일부터 시행됐다.

지역의 지도자가 먼저 눈을 떠야

광양시 항만물류과 공무원들은 멀리에서 찾아온 기자를 위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이들은 항만발전을 위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지도자들의 마인드를 가장 먼저 꼽는데 주저하지 않았다. 우선 여론 주도층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의 지도자들이 눈을 떠야 올바른 항만정책이 가능하다는 것.

특히 자치단체의 경우 항만에 관한 업무를 소극적으로만 해석하면 중앙정부에 대한 건의 정도에 그칠 수 있다며 적극적인 사고가 중요하다고 충고했다. 이와 함께 주위의 적극적인 지지도 필수적이라고 강조했다.

자치단체가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항만업무에 전력할 수 있도록 충분한 사회적 합의를 형성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는 지적이다.

작은 어촌마을에서 제철소의 입주로 항만도시로 내딛기 시작한 두 자치단체는 비슷한 출발에도 불구하고 현재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이제 그 차이를 극복하고 도약할 것인가, 아니면 이대로 주저앉을 것인가의 선택은 우리의 손에 달려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