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 기 원
신성대학 행정실무과 교수
최근 김대중대통령은 현대상선의 ‘4000억원 대북지원 의혹’에 대한 감사결과를 보고 받은 후 ‘현대상선의 일부자금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이라면 앞으로 남북관계의 지속적인 발전과 국가의 장래이익을 위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일종의 통치행위였다는 설명이다.
헌법에서 통치행위란 국정의 기본방향이나 국가적 차원의 정책결정을 대상으로 하는 고도의 정치적 성격을 띤 집행부의 행위로서, 사법적 심사의 대상으로 하기에 부적합할 뿐만 아니라 비록 그에 관한 판결이 있는 경우에도 그 집행이 곤란한 성질의 행위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는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견해가 지배적이며 판례도 통치행위의 관념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나, 통치행위의 범위를 지나치게 확대하면 사법권의 약화와 법치주의의 명목화로 말미암아 집행부 독점화의 우려가 있어 그 범위는 극히 제한되어야 한다. 특히, 헌법의 기본원리를 부정하거나 국민의 기본권보장을 유명무실한 것이 되게 하거나 실정법이 규정하고 있는 엄격한 요건을 외면하는 행위 등은 사법적 심사의 대상에서 제외해서는 안될 것이다.
현대상선의 대북 송금문제가 통치행위인가에 대한 논의는 헌법학자들 사이에서도 견해가 분분하겠지만, 앞에서 언급한 헌법적 논거들을 기초로 판단해 볼 때 필자는 최근 김대통령의 입장표명과 관련하여서는 몇 가지 문제점이 발견된다고 생각한다.
첫째, 현대상선의 대북송금과 관련하여 해당 행위가 통치행위인가의 여부는 사법부에서 판단할 일이지 대통령 본인이 ‘사법심사의 대상으로 삼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견해를 표명하는 것은 일의 선후로 볼 때 적절치 못했다고 할 수 있다. 차라리 대통령 본인은 ‘현대상선의 일부자금이 남북경제협력사업에 사용된 것으로 안다’라는 언급까지만 했어야 한다. 민주화가 진행되고 있는 시점에서까지도 ‘제왕적 대통령제’니 하면서 불안한 시선으로 정부를 바라보는 이유는 다른 데 있는 것이 아니라 통치권자들의 이러한 잘못된 권력관 때문이다.
둘째, 통치행위의 경우 보다 큰 국가적 법익을 위해서 보다 작은 국가적 법익의 손실을 감수할 수밖에 없다는 합목적적 이유가 있어야 하는데, 과연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을 통해서 얻은 ‘보다 큰 국가적 법익’이 과연 무엇인가? 라는 점이다. 치밀한 준비없이 지나치게 의욕만 앞세우고 독불장군식으로 추진한 목적이 무엇인가? 라는 것이다. 출발은 거창하였으나 결국은 실속도 없이 현재와 같은 긴장관계를 초래한 대북사업의 현주소가 이러한 의문을 갖게 하는 것이다.
셋째, 현대상선의 대북송금에 관한 정부의 개입을 사법부에서 통치행위로 판정한다고 하여도 과연 국민들이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인가? 라는 점이다. 사법적 판단은 사법적 판단이고 현재 국민들의 정부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다. 그동안 이 문제가 제기될 때마다 ‘부인(否認)’으로 일관했던 정부가 정권교체기 어수선한 시점에서 슬그머니 ‘반(半)만 인정’을 하고 무책임하게 넘어가는 처사에 대해 국민들은 현재 어이없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그동안 대통령들의 마지막이 볼썽사나웠다. 그리고 그 이유는 대부분 대통령 본인이 자초하였다. 특히, 재임중 통치행위를 남발한 대통령들의 경우 예외가 아녔다. 대통령이라고 해서 어떤 일이든 다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임기가 한정없는 것도 아니다. 자유민주주의를 수호하고 헌법과 법률의 틀 안에서 자신을 청와대로 보내준 국민들을 생각하면서 통치행위를 수행하는 ‘멋진 대통령’을 기다려본다. 또, 그런 대통령이 임기를 마치고 청와대를 나오면 하던 일을 멈추고 ‘ㅇㅇㅇ대통령 만세’라고 환호하며 뜨거운 박수를 쳐주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