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끄럽다는 타박에 기타를 들고 바닷가로 나가 기타를 치는 20대 청년. 지나가다 들리는 기타소리를 끝내 외면하지 못하고 멈춰서서 듣고야마는, 기타소리를 끔찍이 좋아하던 그 사람, 구자을씨(49)는 군입대도 뒤로 미뤄놓은 채 20대 초반을 보냈다.
가족과 주위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받으며 5년의 세월을 그는 서예와 바둑, 기타에 심취해 있었다.
느지막히 ‘당진여객’에 입사한 그는 86년도에 회사를 다니면서 현재 국민은행 자리에 화방을 차렸다. 화방이라고는 하지만 서예나 그림에 관계되는 화구나 액자만을 팔지 않고 기타, 대금, 단소 등 악기도 함께 팔았다. 20대 초반 그 질곡의 시간동안 빠져들었던 서예와 기타의 매력을 잊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학교에 다니면서 서예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는 구자을씨는 서예의 매력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글씨를 쓰는 동안은 모든 것을 잊고 정신을 집중할 수 있습니다. 흐트러진 마음을 다잡고 자기와의 싸움을 시작하는
것이지요.”
어쩌면 그가 가지고 있는 많은 재능들은 이런 집중력에서 나온 것일지도 모른다. 직업이 없었던 5년동안 그가 배운 것은 혼자서 몰입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몰두한다기보다는 구자을씨의 말을 빌면 “거의 미쳐서”한다는 표현이 더 적당할 것이다. 글씨가 안 써져 ㄱ자와 ㅅ자를 석달동안 쓴 적도 있다. 누가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기 때문에 책을 사다 혼자서 독학을 했다.
서예 뿐만 아니라 기타와 바둑도 모두 책을 사다가 혼자서 연습하면서 실력을 쌓은 것이다. 당시 당진에서는 전문서적을 구할 수 있는 곳이 없었기 때문에 구자을씨는 서울까지 가서 책을 사와야 했지만 하고싶은 일을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한다.
한빛화방에서 파는 물건들은 대부분 전문가들이 사용하는 고급 제품들이다. 당연히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 이곳을 주로 이용하는 손님들은 입시를 위해 미술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통신판매가 성황하고 있고 택배업이 발달된 지금, 값싸고 편리하게 공동구매를 할 수 있는 곳을 찾는 사람이 많고 큰 도시에서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수익이 적을 수밖에 없다.
17년 동안 이 일을 하면서 하루에 5천원 밖에 못되는 어려운 상황도 있었다. 회의감도 들고 해서 이 일을 그만두려고 생각한 적도 두 번이나 있었지만, 구자을씨는 어려운 현실보다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택했다.
당진에도 화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하나쯤은 있어야
하지 않겠냐는 생각에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이다.
이 일을 포기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꾸준히 찾아와 주는 사람들 때문이다.
“주위의 관심있는 분들이 당진에도 화구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곳이 있다는 것을 알아주고 들러서 격려해 줄 때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어요. 그리고 미술공부를 하는 학생들 중 대학 들어갔다고 인사도 오고 하면 이 일에 많은 보람을 느껴요.”
예전의 화방은 찾아와 이야기도 하고 구경도 하고, 바쁠 때는 내 물건처럼 손님들이 직접 찾아서 가져가기도 하고 하는 모습들을 볼 수 있었는데 지금은 그런 일들이 거의 없어서 아쉽기도 하다는 구자을씨,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산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한다.
“좋아서 하는 일이지만 전
장사에 소질이 없나봐요.”
장사수단이 없어서 실속을 챙기거나 이익을 많이 남기는 일에는 영 소질이 없다는 그는, “하지만 돈 벌려고 시작한게 아니라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니까 할 수 없다”며 하고 살포시 웃는다. 그 웃음 속에는 아내와 자식들에 대한 미안한 감정이 그대로 묻어나고 있었다.
그동안 생활비 한번 제대로 갖다준 적이 없고 아내에게 좋은 옷 한벌 못 사주고 아이들 용돈도 제대로 못 준것이 못내 가슴에 맺혀있다.
32살에 결혼해 고등학교 2학년인 아들과 초등학교 6학년 딸이 하나 있는데 가장으로서의 역할도 제대로 못하고 있지만 아이들은 대견스럽게도 불평없이 잘 자라주었다. 아들이 미술공부를 하고싶어 한다고 말하는 구자을씨는 은근히 자랑스러워 하는 눈치다. 자신이 그토록 애착이 가는 일을 아들이 좋아한다면 어느 누가 뿌듯하지 않겠는가.
기타연주를 청해도 되겠느냐며 부탁하자 쑥쓰러운 듯
클래식 기타를 집어들었다. 순간 눈에 들어 온 것은 코드를 잡는 왼쪽 가운데 손가락, 끝이 잘려나가 다른 손가락보다 두배정도 굵었다. 3년 전, 구자을씨는 액자를 만들다가 다쳤는데 기타코드를 잡을 때 손가락이 굵고 약해 소리가 제대로 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이야기 중 시작되는 연주는 화방에 퍼진 묵향냄새보다 진하게 퍼져 가슴을 파고 들었다.
구자을씨는 86년도부터 기타를 가르쳤는데 그에게 배워간 사람이 한달에 15~20명 정도, 지금까지 700명이 훨씬 넘는다. 타고난 재능보다는 노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그는 자신이 가르친 한 사람의 이야기를 해 주었다.
기타교습을 시작한 다음 해 농사를 짓고 있는 50대 남자분이 찾아온 적이 있었다. 처음 시작할 때는 음정, 박자는 물론이고 음악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분이었다. 주로 농한기인 겨울에 자주 왔고 평소에도 일이 없으면 틈나는 대로 와서 열심히 배웠다고 한다. 그렇게 시작한 공부가 10년, 오히려 그런 분에게서 많은 것을 배운다는 구자을씨는 빠른 시간에 많은 것을 얻기보다 차근차근 노력을 통해 얻는 것이 훨씬 보람되고 쉽게 잊혀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있다.
화방에서 나는 은은한 묵향냄새처럼, 가슴을 파고드는 기타 연주의 애잔한 울림처럼, 화려하거나 요란하지 않게, 그러나 자신의 일에 애정을 가지고 열심히, 그리고 묵묵히 최선을 다하는 구자을씨의 삶, 20대 초반 그 5년동안의 세월이 헛된 것이 아니라 내 인생의 대학이었다고 말하는 그의 얼굴에서는 진한 삶의 향기가 풍겨나오고 있었다.
이필용 기자






